美선 교차이사직 활발
권력집단화 부작용도
SK·카카오처럼 한 기업 이사가 다른 기업 이사회에도 참여하는 것을 ‘교차이사직(Interlocking Directorates)’이라 부른다. 국내 재계에서는 낯선 풍경이지만, 미국에서는 이사회 운영 전략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애플 CEO인 팀 쿡(Tim cook)은 2005년부터 현재까지 나이키(Nike) 이사회에서 사외이사로 활동 중이다. 글로벌 자동차 기업 제너럴모터스(General Motors) CEO인 메리 바라(Mary Barra)는 2017년부터 월트디즈니컴퍼니(The Walt Disney Company) 이사회에서 사외이사로 참여해왔다. 빌 & 멜린다 게이츠 재단의 공동 의장 멜린다 게이츠는 2004년부터 2021년까지 워런 버핏의 버크셔해서웨이(Berkshire Hathaway) 이사회에서 사외이사로 활동했다. 디즈니 수석부사장 겸 최고재무책임자(CFO)인 휴 존스턴은 마이크로소프트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 또, 엔비디아 사외이사인 아트 레빈슨은 구글 모회사 알파벳의 생명공학 계열사 캘리코 CEO로 재직 중이다. 이외에도 사례가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가 힘들 정도다. 다만, 직접 경쟁 기업 간 교차이사직은 이해 상충 우려로 다수 국가가 이를 규제하고 있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 교차이사직이 활발한 배경을 학계에서는 몇 가지 이유로 분석한다.
첫째, 외부 자원 확보 및 감시 기능(Monitoring) 제고를 위한 목적이다. 가령, 기술 기반 기업이 설비투자 재원 마련을 위해 사모펀드를 통해 자본 조달을 했을 경우 해당 PEF 인사가 이사회에 합류하는 경우다. 기업 입장에서는 재무 구조 안정화를 꾀할 수 있고 사모펀드 인사는 이사회에 참여해 자산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역할을 맡는다. SK온 이사회에 김마이클한규 한투PE 대표가 참여 중인 것이 대표적이다. 둘째, 긍정적 신호 발산이다. 평판 높은 기업에서 뛰어난 이사를 이사회에 영입해 투자자 등 이해관계자에게 신뢰와 품질을 전달할 수 있다. 셋째는 인적 자본 확보다. 여러 사업부를 두고 있는 복합기업일수록 고학력에 풍부한 경력을 갖춘 인물을 이사로 영입하는 것을 선호한다는 분석이다.
교차이사직은 경영 성과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첫째, 전략적 유연성 확보다. 다른 산업과 기업 정보를 내재화해 외부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높일 수 있단 분석이다. 둘째, 전략·정책·관행의 확산(Diffusion of Practices)이다. 혁신이나 전략적 선택, 지배구조 등에 대한 모방·벤치마킹이 활발하게 이뤄진다는 의미다. 셋째, 혁신과 학습 촉진(Innovation through Knowledge Spillover)이다. 가령, 연구개발(R&D) 중심 바이오 기업 이사회에 타 기업 CTO 또는 기술 전문가가 이사를 겸직할 경우 특허 출원, 신약 개발, AI 등 신기술 전파 등에서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단 평가다.
평판과 정당성 강화(Reputation & Legitimacy) 효과도 빼놓을 수 없다. 전 대법관, 교수, 고위 정부 관료가 이사로 선임되면 해당 기업의 사회적 평판 및 정부 대응력 강화를 기대할 수 있다. 과거 편법 승계 등으로 지배구조 논란을 겪었던 삼성전자가 이런 경우다.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된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은 금융위원장과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 의장 등을 거친 국제 금융·재무 전문가다.
다만, 교차이사직이 활발한 미국에서는 부정적인 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사직을 여러 곳 겸직할 경우 실질적인 경영 조언에 소홀하게 되는 ‘바쁜 이사(Busyness)’ 문제, 특정 그룹이 교차이사직을 독식하면서 새로운 시각·다양성이 부족해지고 종국에는 혁신이 저해되는 정책 동조화(homogeneity) 현상 등이 대표적이다. 소수 집단이 기업 엘리트(Coporate Elite)로 권력화해 기업 경영진과 이사회 구성원 사이 부적절한 담합을 야기할 수 있단 우려도 제기된다.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최창원 기자 choi.changw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04호 (2025.04.09~2025.04.1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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