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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팩토리’·리쇼어링…K제조업 재도약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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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껴서 옴짝달싹 못 하는 상태를 가리키는 단어로, 최근 경영학계에서 한국 제조업이 처한 상황을 두고 일컫는 말이다. 단어 뜻 그대로 한국 제조업은 주요 국가 사이에 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생산력과 기술력 측면에서는 후발 주자인 중국에 쫓기는 중이다. 그나마 남은 생산 시설은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는 미국에 뺏기는 중이다. 그야말로 절체절명 위기다.

다만 아예 살아날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국내 회귀형 투자 유도(리쇼어링) 정책의 현실화와 함께 연구개발(R&D), 스마트팩토리 중심의 산업 구조 개편, 지정학적 해법 효과로 제조업 부활을 노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정부는 이른바 ‘국내 복귀 기업 지원 제도’를 2013년부터 도입했지만, 2024년 산업통상자원부가 국내 복귀 기업으로 선정한 곳은 20여곳에 그친다. 사진은 반월국가산업단지 전경. (매경DB)
정부는 이른바 ‘국내 복귀 기업 지원 제도’를 2013년부터 도입했지만, 2024년 산업통상자원부가 국내 복귀 기업으로 선정한 곳은 20여곳에 그친다. 사진은 반월국가산업단지 전경. (매경DB)

재도약 조건 1. 리쇼어링 현실화

‘국내 투자=이득’ 공식 만들어야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부분은 리쇼어링 정책의 현실화다. 외국에 투자하는 국내 기업이 한국에도 투자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하는데, 현재 투자 지원 정책이 기업들 기대에 못 미친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일찌감치 리쇼어링을 촉진하기 위한 법률을 마련, 시행해왔다. 이른바 ‘국내 복귀 기업(이하 유턴기업) 지원 제도’를 2013년부터 도입했다. 매년 개정을 거쳐 지원 범위를 확대했고, 혜택을 늘려왔다. 2024년 보조금 예산을 570억원에서 1000억원으로까지 높이며 정책 안착에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아직 괄목할 만한 성과가 없다. 2024년 산업통상자원부가 국내 복귀 기업으로 선정한 곳은 20여곳에 그친다.

전문가들은 리쇼어링 법안 현실성이 부족한 데다 효과가 미미하다고 지적한다. 법안 도입 당시 기대효과는 대기업 ‘복귀’였다. 규모가 큰 대기업이 해외 공장을 철수하고 국내 투자를 확대해 고용 증진과 내수 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하는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글로벌 경쟁력이 약하고 상대적으로 영세한 기업들이 주로 리쇼어링을 선택한 것으로 드러났다.

법안의 문제점은 크게 2가지다. 우선, 지원 조건이 까다롭다. 리쇼어링 기업으로 선정되려면 해외 사업장을 청산하고 국내로 돌아와야 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오랜 기간 투자한 해외 사업장을 포기해야 한다. 국내로 복귀했을 때 이익이 해외 사업장 포기 비용보다 커야 한다. 이익이 보장되지 않는데, 굳이 무리하게 복귀할 이유가 없다. 미국 등 해외 국가는 해외 사업장 청산 요건을 달지 않는다. 기존보다 국내 투자를 늘리면 리쇼어링 기업으로 선정, 국가에서 각종 지원책을 내놓는다.

정성훈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산업 경쟁력이 있고 국내 경제에 대한 기여도가 높은 기업은 국내와 해외에서 모두 투자가 활발한 확장형 기업이다. 이런 기업들이 국내에 투자하도록 유도하되 국제 무대에서의 활동을 굳이 제한하려고 하지는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 번째는 리쇼어링 혜택이 적다는 점이다. 국내 지원책은 개별 기업을 대상으로 한 세제 감면 정도에 그친다. 제조업은 특성상 공급망이 중요하다. 전·후방 산업이 함께 들어와야 시너지가 생긴다.

예를 들어 가죽 의자를 만든다고 치자. 나무 가공 업체, 가죽 가공 업체, 의자 제조 업체가 한곳에 모여 있어야 비용 절약과 효율적인 생산이 가능하다. 그런데 나머지 업체는 해외에 있는데 천 가공 업체만 국내로 돌아오면, 오히려 물류비용만 상승하는 효과가 발생한다. 개별 기업이 아닌 산업 생태계에 속해 있는 기업 전체가 국내로 돌아오도록 파격적인 지원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개별 기업 단위가 아닌 생태계 단위의 리쇼어링을 추진해야 한다. 필요한 경우 정부가 보조금을 강력하게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스마트팩토리 솔루션이 적용된 경남 창원 LG스마트파크 냉장고 생산라인의 모습. (LG전자 제공)
스마트팩토리 솔루션이 적용된 경남 창원 LG스마트파크 냉장고 생산라인의 모습. (LG전자 제공)

조건 2. ‘스마트팩토리’ 도약

단순 제조 공정 아닌 첨단 공정으로

과거처럼 노동집약적인 단순 제조업 형태에서 첨단 제조업으로 산업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눈여겨볼 만하다. 현재 한국 제조업 인프라는 한계에 도달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높은 인건비, 강성 노조, 규제 등으로 경영 환경이 어려워졌고, 내수 시장은 정체됐다. 여기에 생산 인구 감소라는 구조적 문제까지 겹쳤다. 중국, 동남아시아는 물론 선진국과 비교해도 국가 경쟁력 자체가 떨어진다.

제조업 난항을 돌파할 해법으로 ‘스마트팩토리’ 전환이 떠오른다. 인공지능(AI) 기반 자동화 시스템, 로봇 기술, 빅데이터, 5G 등 첨단 기술을 생산 공정에 결합한 개념이다. 공장 지능화를 통해 생산성과 효율성을 동시에 높일 수 있다.

남상욱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국내 인건비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리쇼어링 정책이 한계를 맞았다”며 “국내 공장은 글로벌 생산기지 중 중심축 역할을 하는 ‘마더 팩토리’로서의 역할을 강화하고, R&D 중심 체계로의 전환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실제로 첨단 기술을 도입한 스마트 공정은 한국의 매력도를 높이는 요인 중 하나다. 일례로, 상당수 중국 기업이 미국의 경제 제재를 피할 생산기지로 한국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남아시아 경제가 발전하면서 인건비가 예전 같지 않다. 출산율이 낮은 한국과 일본은 다른 나라 대비 무인 공정이 잘 도입됐다. 생산 비용이 동남아시아와 그리 차이가 나지 않는다. 비슷한 금액이면 국가 브랜드가 높은 한국이나 일본을 선택하려는 중국 기업이 꽤 있다.” 중국에서 활동 중인 무역 업계 관계자가 전하는 분위기다.

물론 첨단 기술 도입만으로는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 기술과 함께 시장, 정책, 인력이라는 3박자가 함께 맞물려야 한다. 예컨대 자율 제조 시스템을 제대로 운영하려면 이를 설계하고 유지할 수 있는 고급 기술 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한국 제조 업계는 고급 엔지니어 부족과 청년층 제조업 기피라는 이중 난관에 직면해 있다. 이에 정부의 정책 방향이 보다 입체적으로 설계될 필요가 있다. 김용진 교수는 “제조업 AI 전환 정책 지원,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통한 외국인 투자 활성화, 외국인 노동력 확보 관련 정책이 필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 조선업은 미국이 조선·해운 산업 부활을 위해 한국을 최종 파트너로 낙점한 이후 승승장구하는 모양새다. 사진은 울산 동구 HD현대중공업 조선소 전경. (HD현대중공업 제공)
한국 조선업은 미국이 조선·해운 산업 부활을 위해 한국을 최종 파트너로 낙점한 이후 승승장구하는 모양새다. 사진은 울산 동구 HD현대중공업 조선소 전경. (HD현대중공업 제공)

조건 3. 지정학적 틈새 활용

산업 주권 전쟁시대, 韓만의 역할 고려

한편에서는 한국의 지정학적 갈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해 산업 내재화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모든 산업을 자국 내 생산으로 돌릴 수는 없다.

미국이 중국에 패권을 넘기기 싫어하는 산업 중에서 역량 부족으로 자국에서 떠맡지 못하는 산업을 찾으라는 조언이다. 실제로 지정학적 갈등의 수혜를 받는, 조선·방산·항공우주 산업은 제조업 부진에 아랑곳하지 않고 질주 중이다.

일례로 조선업은 미국이 조선·해운 산업 부활을 위해 한국을 최종 파트너로 낙점한 이후 승승장구하는 모양새다. 미국 정부는 중국산 선박의 입항 금지, 항구 이용료 추가 부과 등 규제를 적극 가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해운사들이 선박 발주 대체재로 한국과 일본 조선사를 찾는 모습이다. 규제 소식이 알려진 이후 대만 최대 해운사 에버그린은 지난 3월 중순 한화오션에 친환경 컨테이너선 6척을 발주했다.

방위·항공우주 산업도 지정학적 이점을 활용, 산업이 성장세를 타고 있다. 미국은 세계적인 첨단무기 제조 국가지만, 기술 유출을 우려해 무기를 적극적으로 수출하지 않는다. 일본, 한국, 호주 등 동맹국 중심으로만 자국 최신 무기를 수출한다. 동남아, 유럽, 중동 등 국가까지 챙기진 않는다.

그렇다고 이들 국가가 중국산 무기로 무장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한국이 이들 국가에 무기 세일즈에 나설 것을 권하는 이유다. 방산 업계 관계자는 “미국은 전통적으로 산업별로 ‘허브’ 국가를 지정한다.

방산업에서는 한국이 아시아의 허브가 되길 원하면서, 한국 무기 수출이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영달 뉴욕시립대 방문교수는 “전 세계는 이미 산업 주권 전쟁시대에 돌입했다. 미국과 일본이 산업 주권 동맹관계를 맺고, 중국을 적극 압박하는 형국이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한국이 잘할 만한 산업을 찾아 제대로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해외 주요국은 어떻게 극복했나
美·EU처럼 ‘제조 생태계 전체’ 되살려야

산업 공동화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은 산업 공동화로 인한 위기를 여러 번 겪었고, 다양한 대응 전략을 펼쳐왔다. 이들 국가는 어떻게 문제를 극복했을까.

미국은 강력한 인센티브와 관세 규제로 투자 매력도를 높이는 정책을 취했다. 트럼프 1기와 바이든 정부, 그리고 트럼프 2기까지 정권이 바뀌어도 해당 기조는 계속 진행 중이다.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 등을 통해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 전략 산업에 대규모 보조금을 투입하며 산업 공동화에 대응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1기 때부터 인센티브와 관세 규제를 번갈아 사용하며 기업의 과감한 미국 투자를 유도하는 중이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관세와 더불어) 최근 효과적인 정책은 막대한 현금 보조금 지급으로, 이는 일본을 포함해 많은 국가가 시행하는 정책”이라고 평가했다.

유럽연합(EU)은 ‘유럽 반도체법(European Chips Act)’ 등을 통해 첨단 제조업 부활에 집중했다. 독일과 프랑스는 자국 내 제조업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특정 산업에 대한 보조금을 늘리는 한편, 공급망 다변화를 위한 유럽 단위의 공동 투자 펀드를 조성하고 있다.

유럽과 미국의 공통점은 ‘제조 생태계 전체’를 되살리는 데 주력한다는 점이다. 단순한 생산공장 유치가 아니라 R&D, 물류, 인력 양성까지 포함한 전방위적 산업 기반을 다시 세우는 데 초점을 맞췄다. 김용진 교수는 “미국은 지식 서비스, 영국은 금융 서비스 중심으로 산업 재편을 시도했지만 한계가 뚜렷했고, 이제는 모두가 제조업 재건으로 회귀하고 있다”며 “조만간 모든 국가가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중심으로 생산 역량 강화를 시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진욱 기자 ban.jinuk@mk.co.kr, 조동현 기자 cho.donghyu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04호 (2025.04.09~2025.04.1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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