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생법 첫걸음, 과제는
비용↓ 접근성↑ 데이터 최대한 쌓아야
첨생법 개정안이 본격 시행되면서 국내 바이오·제약 업계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지만 개정안이 성공적으로 안착하려면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치료비 부담 완화, 품질 관리 체계 강화, 전문 인력 양성, 규제와 진흥 간 균형 등이 주요 과제로 꼽힌다.
우선 환자 입장에서는 부담이 큰 고액 치료비가 가장 큰 걸림돌이다. 첨단재생의료는 비급여 항목으로 분류돼 있어 환자가 치료비 전액을 부담해야 한다. 의료계에 따르면 ‘줄기세포 원정
치료’를 떠나는 한국인은 한 해 약 3만명으로 추산된다. 1회 비용은 600만~800만원 선. 단순 계산으로도 연간 2000억원 가까운 돈이 일본에서 지출되는 셈이다. 그렇다고 치료비 산정 방식을 지나치게 규제하면 기업 입장에서는 연구개발(R&D)에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첨단재생치료 대중화를 위해 정부의 ‘조건부 건강보험 적용’ 검토, 기업의 생산 단가 절감 노력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양은영 차바이오그룹 글로벌BD본부장은 “예를 들어 임상 2상 또는 3상 단계에서 유효성과 안정성이 입증된 치료제에 대해 건강보험을 적용하면 환자의 치료 접근성을 높이는 동시에, 신약·기술개발 기업도 안정적인 수요와 시장을 확보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바이오 업계의 고질적인 인력난도 첨단재생의료 기술 개발과 상용화가 속도를 내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다. 첨단재생의료는 치료제 개발부터 안정적인 시술까지 고도의 기술이 집약된 분야인 만큼 숙련된 전문 인력이 필수다. 하지만 한국은 그간 규제에 가로막힌 탓에 해외나 대기업으로 이탈하는 연구 인력이 적잖았다. 첨생법 개정안이 시행돼도 기술 개발 자체가 더딜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치료제 개발 전문 인력을 채용하는 데만 수개월에서 1년 넘게 걸리는 기업이 적잖다”며 “바이오 전문 인력을 양성할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정부가 주도해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구체적으로는 산학 협력 프로그램을 비롯한 해외 전문가 초빙, 글로벌 기업과 협력을 통한 기술 역량 강화 등이 언급됐다.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한편, 기초연구가 중개연구(기초연구 성과가 제품으로 이어지는 단계)로, 중개연구가 임상시험으로, 최종적으로는 첨단바이오 의약품 개발까지 순조롭게 이어지도록 제도적 체계를 마련해달라는 목소리도 나왔다.
첨단재생의료 산업이 커지려면 세포와 유전자전달체 등 제조와 관련된 혁신 기술을 확보하고 생산 비용을 낮추는 게 급선무인데 제약·바이오 업계에서는 임상을 거쳐 제품화시키는 과정이 ‘데스밸리(Death Valley·죽음의 계곡)’라고 불릴 정도로 넘기 힘들다는 것.
특히 중소 바이오 기업으로서는 품질 인증 절차를 위한 비용이 100억원가량 소요되는 만큼 재정 압박이 큰 게 현실이다. 정부가 중소기업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품질 인증 절차를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해달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박소라 재생의료진흥재단 원장은 “첨단재생의료 분야에서 원천 기술을 확보하지 못하면 세포·유전자치료제 생산 비용 대부분을 외국에 지불하게 될 것”이라며 “세포치료제 제조에 필요한 배지, 배양기, 자동화기기, 운송기기, 바이러스 전달체 등 여러 기술이 신속히 국산화되도록 R&D 투자 확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앞으로 임상·치료 대상 기준을 보다 완화해야 한다는 주문도 존재한다. 첨생법 개정으로 나아지긴 했지만 세포·유전자 치료제는 항체의약품 등과 비교하면 임상·치료 기준이 여전히 까다롭고 치료 대상도 중대·희귀·난치 질환자에 한정돼 있다는 것.
한승연 애널리스트는 “첨단재생의료는 국내에서도 이미 20여년 전부터 연구돼온 분야고 상당히 높은 기술력을 보유한 기업이 있다”며 “안전성을 철저히 검증하되 임상·치료 기준을 조금씩 더 풀면서 기술력을 보유한 국내 기업이 경험을 쌓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장 어떤 질병·약품·임상이 첨생법상에서 인정이 될지 보건복지부에서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달라는 제언도 새겨들을 만하다.
투자와 관련해서도 너무 ‘장밋빛 전망’에 기대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첨생법 수혜에도 불구하고 연구개발 불확실성이 있어서다. 당장 연구개발 비용 확보가 쉽지 않다. 차바이오텍은 최근 2500억원 규모 유상증자 계획을 밝히며 근본적인 자금 조달 목적은 신약 개발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2027년까지 1000억원을 연구개발에 쓴다는 방침이다. 신주 상장 예정일은 당초 4월 29일에서 5월 14일로 지연됐다.
법제화해놓고 ‘자유 진료’ 허용
일본은 첨단재생의료 분야에서 선진국으로 손꼽히는 국가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재생의료 안전성과 접근성을 법제화한 법률을 만들었고, 재생의료치료제 허가 절차를 줄이는 한편 지금까지도 현장 목소리를 반영해 필요한 부분을 손보고 있다. 빠르고 유연한 정책은 세포 치료, 유전자 치료 등 혁신 기술 상용화를 크게 앞당겼다. 이 덕분에 일본에서 줄기세포 치료는 규제가 거의 없는 ‘시술’ 수준 의료 행위다. 국가 차원 지원이 활발해 연간 약 10만명이 재생의료 치료를 받는다. 일본 의약품의료기기종합기구(PMDA) 승인을 받은 세포·유전자치료제만 해도 13개나 된다. 이 중 6개가 일본 자국 제품이다. 국내의 경우 식품의약품안전처 문턱을 넘은 치료제는 4개에 불과하며 이마저도 모두 외국 제품이다.
또 현재 일본에서는 약 1700개 이상의 병·의원에서 재생의료 치료가 진행되고 있다. 반면 한국은 2019년 ‘첨생법’ 제정 이후 엄격한 규제 속 기업이나 대형 병원 중심의 연구 인프라 구축이 이뤄져왔다.
2010년만 해도 일본에는 첨단재생의료 관련 규제가 없었다. 후생노동성이 승인하지 않은 치료나 의약품이라도 환자와 의료기관 간 동의를 거치면 의료기관이 자유롭게 진료 내용과 비용을 결정하는 ‘자유 진료’가 가능했다.
그러다 원정 치료차 일본을 방문했던 환자가 줄기세포 투여 후 폐동맥 색전증으로 사망하는 일이 발생하자 무분별한 자유 시술의 실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에 일본 후생노동성은 2013년 임상 연구와 자유 진료를 관리하는 목적의 ‘재생의료안전법’을 제정해 2015년 11월부터 시행에 나섰다. 줄기세포를 제조·배양하는 곳은 관련 ‘제조허가’를, 시술 병원은 ‘치료허가’를 받을 경우 줄기세포 시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식이다. 자유 진료를 여전히 허용하면서도 이를 법의 테두리 안으로 들여와 연구·치료 신고 체계 등을 마련해 관리하는 것이다.
또 국내에서는 줄기세포를 의약품으로 허가를 받고 사용하려면 수년의 임상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일본의 재생의료법은 시급한 질환 치료를 위해 안전장치가 마련된 상황에서 보다 빨리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치료제가 출시되기까지 임상 1·2·3상의 단계를 거치던 것을 임상 2상 시험 후에 최대 7년간 시판을 허용하면서 임상 3상을 진행하는 조건부 승인 제도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대신 5~7년 후에도 유효성이 검증되지 않으면 시장에서 퇴출하는 식이다.
2022년부터는 재생의료 연구개발과 제조 기반 등에 2000억원을 투자하는 ‘재생·세포의료·유전자치료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국가 차원의 지원이 활성화됐다. 지난해 6월에는 재생의료안전법 내 범주 외의 ‘생체 내(In vivo) 단계’의 유전자 치료도 정부당국이 심의 사항에 대해 현장점검할 수 있도록 개정, 심의 공정성과 안전성을 보완 중이다.
“세포 치료, 개원의에도 기회 줘야”

첨생법 개정안 시행으로 해외 원정 치료에 의존해야 했던 환자들에겐 국내 치료 접근성이 높아졌지만 일각에서는 규제 장벽이 여전히 높고 추가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학회 의견은 어떨까. 김응석 대한줄기세포치료학회장(라파셀의원 원장)에게 개정안 시행의 의미와 향후 과제를 들어봤다. 대한줄기세포치료학회는 2009년 재생의료 분야에 관심 있는 전문의들이 모여 결성한 학회다.
Q. 첨생법 개정으로 줄기세포 치료 시장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A. 국내 세포유전자치료제(CGT) 시장이 활성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특히 연구·판매 과정이 유연해지면서 국내 CGT 기업들 신약 개발 속도가 빨라지고, 해외 의존도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항노화나 미용 목적 환자군이 배제된 점, 연구 목적과 설계에 따라 허가된 질환이라도 특정 정의에 의해 제외되는 사례가 발생할 가능성은 여전히 한계로 지적된다. 대형 병원이나 제약사가 아닌 개원의들이 세포 치료에 참여하기 위한 진입 장벽이 지나치게 높다는 점도 개선할 점이다.
Q. 재생의료가 국민 건강에 직결되는 만큼, 규제를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A. 첨단재생의료 분야는 환자 생명과 직결되는 고위험 치료법을 포함해 적절한 규제와 안전 관리는 필수다. 하지만 지나치게 엄격한 규제는 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환자의 치료 기회를 제한할 우려가 있다. 특히 자가세포 치료 중 혈소판풍부혈장(PRP)이나 지방유래줄기세포(SVF)와 같은 중·저위험 치료법은 개원의들이 충분한 전문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제도를 보다 유연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 안전성과 혁신성 간의 균형을 맞추면서 규제를 점진적으로 완화하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
Q. 줄기세포 치료의 비용 부담 완화와 대중화를 위한 정책적 지원 방향은.
A. 우선 고위험 세포치료제는 대기업 위주로만 진행되는 것보다 좀 더 간소화된 적정 배양 시설을 완비한 개원 의원에서 만들어 임상에 곧장 사용하는 것이 더 안전하고 효율적일 것이다. 개원의들이 합리적인 기준을 갖춘 세포 추출·배양 시설을 운영하고 관련 교육을 이수하면 대기업보다 낮은 비용으로 양질의 세포 치료제를 공급할 수 있다. 정부 차원에서 이 부분에 대한 정책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한국도 일본처럼, 개원의가 환자 상태에 따라 자율적으로 세포 치료를 시행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면 한국 재생의료 시장의 경쟁력이 더욱 강화될 것이다.
[박수호·정다운·최창원·조동현 기자 김연수 인턴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99호 (2025.03.05~2025.03.1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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