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전 포인트 3. 양극재 ‘캐시 버닝’
셀 제조사 내재화 여파
전기차 수요 둔화에 따른 충격은 2차전지 셀 제조사보다 양극재 업체가 더 큰 양상이 짙다. 삼성SDI를 비롯한 셀 제조사들이 전방 시장 둔화 장기화에 대비한 양극재 내재화(Internalization)에 속도를 내고 있어 이들 업체에 양극재를 납품하는 양극재 업체의 체감 충격이 더 큰 것으로 분석된다. 현금 소진 속도가 빨라 자금력이 열위에 놓인 일부 양극재 기업의 경우 산업 재편 과정에서 인수합병이 이뤄질 수 있단 관측도 나온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와 2차전지 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을 비롯한 주요 셀 제조사는 지난해 영업이익이 급감했지만 연간 적자로 이어지진 않았다. 하지만 양극제 제조사는 긴장감이 팽배하다. 엘앤에프는 지난해 4분기 영업손실 약 1500억원, 연간 누적 영업손실 5102억원을 각각 기록했다.
문제는 매출 감소로 고정비를 감당하는 것조차 빠듯한 가운데 현금이 빠른 속도로 소진(Burn-out)되고 있다는 데 있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엘앤에프 유동부채 가운데 절반 정도가 1년 내 갚아야 할 단기 차입금으로 8290억원에 달한다. 이 기간 이자비용만 805억원이다. 부채비율 관리를 위해 발행하려던 2500억원 규모 영구전환사채(CB) 발행은 지난해 12월 투자자 모집에 난항을 겪다 취소됐다.
엘앤에프는 영구CB 대신 기존 발행한 CB를 매입·소각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지난해 12월 1700억원 규모 해외 CB를 만기 전 취득·소각한 데 이어 1000억원 규모 CB를 추가 매입·소각했다. CB 매입·소각은 지분 희석 효과를 줄여 주주 가치 제고를 기대할 수 있다.
에코프로그룹 핵심 계열사 에코프로비엠 역시 연간 영업손실 규모는 상대적으로 작지만, 재무 구조는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3분기 기준 총 차입금 2조1630억원 가운데 1년 내 갚아야 할 단기 차입금이 절반 정도로 1조원에 육박한다. 지난해 3분기 누적 이자비용만 653억원이다. 연간 기준 1000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이유로, 에코프로비엠은 지난해 10월, 30년 만기 사모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해 3360억원을 조달했다. 신종자본증권 역시 형식적으로 자본으로 분류될 뿐 잠재적 상환 부담과 일정 수준의 부채 성격이 내재돼 있다. 이 탓에 발행에 성공했더라도 ‘무늬만 자본’일 뿐 실질적인 차입 부담은 장부상 부채보다 높다는 것이 전문가 진단이다.
전기차 수요 둔화 충격이 양극재 업체에 유독 큰 것엔 삼성SDI를 비롯한 주요 셀 제조사가 양극재 내재화로 손익 통제력 확보에 나섰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전기차 총수요 감소에 대응하려 배터리 제조사가 양극재 내재화에 자원을 우선 배분하면서 양극재 업체가 체감하는 수요 감소가 훨씬 크다는 것. 양극재는 배터리 원가의 약 40%를 차지하는 핵심 소재로 이를 내재화하면 품질은 물론 원가 관리도 비교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 외부에서 조달하던 기존 양극재 물량을 100% 대체할 수는 없어도 내재화 역량 유무에 따른 가격 협상력은 천양지차다. 대부분 제조 기업이 핵심 부품·소재 공급망을 이원화된 구조로 운영하는 이유다. 가령, 삼성SDI는 최근 수년간 양극재 내재화를 목표로 기술 개발과 인프라 투자를 지속했다. 삼성SDI는 자회사 에스티엠(STM)을 통해 양극재 내부화에 속도를 낸다. LG에너지솔루션은 모회사 LG화학을 통해 내재화 비율을 높이려 한다.

정책 ‘골든타임’ 지났나
간접 지원 무용지물 지적도
2차전지 업황이 심상찮게 돌아가자 정부는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비상 대응에 나섰다. TF는 향후 친환경차·2차전지 경쟁력 강화 방안 등 정부 지원책에 대해 의견을 나눈다. 또, 정부는 황산니켈·황산코발트·황산망간·수산화리튬을 생산하는 기술을 국가전략기술 육성에 관한 특별법 및 조세특례법상 국가전략기술로 선정한다. 국가전략기술로 선정되면 공장시설 투자비의 15%를 세액공제 받을 수 있다. 정부는 원료 개발 및 생산에 대한 연구개발(R&D) 지원책도 마련한다.
다만, 산업계에서는 2차전지 산업 정책 대응이 ‘골든타임’을 넘긴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적지 않다.
미국과 중국 등이 국가전략기술 분야에 막대한 보조금을 직접 지원하는 것과 달리, 우리 정부 정책은 대부분 간접 지원 형태다. 미국은 전략 산업에 대해 각종 세액공제를 현금으로 직접 환급한다. 중국은 배터리 보조금은 물론 R&D 지원, 세금 감면 등 파격적인 정책 패키지로 불확실성을 줄였다. 한국은 세제 지원이 ‘법인세 공제’에 국한돼 영업이익이 적자인 경우 혜택을 받을 수 없다.
김승태 배터리산업협회 정책지원실장은 “법인세 세액공제 방식은 이익이 발생한 기업만 혜택을 보는 구조”라며 “적자 기업은 이익이 발생할 때까지 세액공제를 받을 수 없어 실질적인 지원 효과가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박지웅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직접환급제 또는 세액공제 양도를 통해 기업들이 조기에 자금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경민 기자 kim.kyungmin@mk.co.kr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98호 (2025.02.26~2025.03.0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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