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서울 강남권을 비롯해 수도권 곳곳에서 공사비를 둘러싼 갈등이 터져나오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원자잿값과 인건비가 크게 오르면서 공사비 부담이 커진 가운데 정비사업을 진행 중인 주요 단지마다 고급 특화 설계 경쟁까지 과열되면서 공사비 인상을 부추긴다는 분석이다.
공사비 인상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사업장은 오는 6월 입주를 앞둔 서울 서초구 ‘메이플자이(신반포4지구 재건축)’가 대표적이다. 건설 업계에 따르면 메이플자이 시공사 GS건설은 최근 신반포4지구 재건축 조합에 총 4859억원의 공사비 증액을 요청했다. 이 요청이 받아들여지면 당초 3.3㎡당 499만원에 책정됐던 공사비가 797만원으로 60%가량 뛰는 셈이다. 조합원 1인당 평균 1억5000만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GS건설은 증액분 중 2288억원은 커뮤니티와 운동시설 등 설계 변경·특화에 따른 추가 공사비며, 나머지 2571억원은 물가 상승에 따른 인상분이라고 설명했다.
신반포4지구 조합은 한국부동산원에 공사비 검증을 신청해 추후 부동산원 검증 결과를 보고 수용 여부를 결정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물가 상승 등에 따른 인상 요구분 2571억원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냈다.
공사 중단 사태까지 이르지는 않았지만 GS건설은 조합 측에 공사 대금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서울시 코디네이터가 중재에 나섰지만 시공사와 조합이 입주 전 원만하게 합의점을 찾을지는 미지수다.
GS건설 관계자는 “요청한 인상분은 최근 공사비 증액에 합의한 잠실진주 재건축(3.3㎡당 811만원), 청담삼익 재건축(765만원), 반포주공1단지1·2·4주구 재건축(792만원) 등 강남권 정비사업 단지 공사비와 비슷한, 합당한 수준”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신반포4지구 조합은 공사비 증액 사항 중 “납득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 시공사가 ‘공사비 부풀리기’를 했는지 검증해봐야 한다”면서도 “준공·입주를 코앞에 두고 시공사와 합의를 찾지 못하면 피해가 막심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사비 분쟁이 있는 곳은 이곳만이 아니다. GS건설은 최근 경기도 광명시 철산주공8·9단지 재건축(철산자이더헤리티지) 조합과도 공사비 증액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다. GS건설은 철산주공8·9단지 조합에 공사비 1032억원 추가 지급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철산주공8·9단지 조합 관계자는 “이미 두 차례 공사비를 인상했기에 거액의 증액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5월 입주가 얼마 안 남은 상황에서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는 것은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치사한 전략”이라고 토로했다.
실제로 입주를 압박하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공사비 인상에 합의한 사례도 있다. 성북구 장위동에 ‘장위자이레디언트’를 짓는 장위4구역 재개발 조합은 지난 2월 18일 시공사와 공사비 305억원 인상 합의서를 작성하며 14개월 만에 협상을 마쳤다. 갈등조정위원회를 통해 여섯 차례나 협상한 결과다.
장위자이레디언트 시공사인 GS건설은 착공 이후 급격한 물가 상승, 돌관공사 발생 등으로 490억원의 추가 공사비를 요구했지만 조합은 설계 변경 금액인 150억원만 지급하겠다며 맞섰다. 이에 지난해 여름, 시공사가 공사장 펜스에 공사 중단 예정 현수막을 걸며 갈등이 본격화했다. 장위자이레디언트는 예정대로 오는 3월 입주를 시작한다.
이 밖에 ▲잠실진주(삼성물산·HDC현대산업개발, 3.3㎡당 847만원) ▲청담삼익(롯데건설, 765만원) ▲반포주공1단지1·2·4주구(현대건설, 792만원) ▲반포주공1단지3주구(삼성물산, 786만원) 등 강남 일대에는 공사 선정 당시보다 3.3㎡당 공사비를 크게 인상한 재건축 현장이 여럿이다. 지난해 조합 내분과 비용 인상으로 공사가 5개월가량 멈췄던 서울 은평구 대조1구역(힐스테이트메디알레) 재개발 조합 한 조합원은 “분담금을 생각하면 당초 예상했던 투자 금액보다 2배 이상은 각오해야 할 것 같다”고 토로했다.
건설사 매출 원가율 90% 넘어
‘변동 기준 의무화’ 해결책 될까
최근 정비사업장 분쟁은 예년보다 크게 늘었다. 한국부동산원에 접수된 공사비 검증 신청은 2020년 13건에서 2023년 32건으로 증가했다. 지난해에는 역대 최다인 36건에 달했다. 2019년 공사비 검증 제도가 도입된 이래 가장 많은 규모다. 현행법상 주택 소유자 또는 조합원 5분의 1 이상이 검증을 요청하거나 공사비가 10% 이상 증액되는 경우에는 정비사업 지원기구에 공사비 적정성 조사를 요청해야 한다. 국토교통부 산하 공기업인 한국부동산원은 이 업무를 맡는 주요 기관 중 하나다.
건설사도 이 같은 상황이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공사비를 놓고 소송을 벌일 경우 이미지에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향후 정비사업 수주에서 불리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공사비 증액을 강행하는 건 큰 손해를 보고 아파트를 짓는 것보다는 낫다는 판단에서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주거용 건설공사비지수는 129.08로 3년 전보다 약 27% 올랐다. 철근, 레미콘 등 자잿값이 급등한 데다 인건비도 급등했기 때문이다. 금리 인상으로 건설사 금융 비용 부담도 커졌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커튼월룩, 스카이브릿지, 커뮤니티시설 등 고급 마감재와 특화 설계를 해달라는 조합 요구로 추가 비용뿐 아니라 공사 기간까지 늘어났다”며 “그사이 공사 원가율이 치솟으면서 지을수록 손해가 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고공행진하는 공사비는 지난해 건설사 실적 부진에 영향을 미쳤다. 현대건설은 지난해 매출 원가율이 100.6%를 기록했다. 2023년 94.3%보다 6.3%포인트 높아졌다. 매출 원가율은 매출액에서 원자잿값, 인건비 등 공사비가 차지하는 비율이다. 업계에선 80%대를 적정 원가율로 보고 있다. 현대건설은 지난해 1조2209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23년 만에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했다. 국내 10대 건설사 중 현대건설을 포함한 상장사 6곳의 지난해 평균 매출 원가율은 92.2%로 집계됐다. 현대건설이 가장 높고 GS건설(91.3%), 대우건설(91.2%), HDC현대산업개발(90.9%)도 90%를 넘었다. DL이앤씨(89.8%)와 삼성물산 건설부문(89.4%)도 높은 수준을 보였다.
새해 들어서도 조합과 시공사 간 공사비 분쟁이 끊이지 않자 국토교통부는 제도 개선에 나섰다.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건설사 입찰제안서에 ‘공사비 변동 기준’을 포함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2월 중 이 같은 내용의 ‘정비사업 계약 업무 처리 기준’ 일부개정안을 행정예고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계약서에 공사비 증액에 대한 내용을 보다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갈등 소지를 줄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계약 당사자끼리 기준을 합의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물가지수, 건설공사비지수 등 구체적인 지표를 기준으로 못 박아 논란을 줄여야 한다는 의미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지자체나 공공기관이 제공하고 있는 공사비 검증 제도는 강제성이 없기에 지금으로서는 계약 당사자끼리 합의점을 찾는 수밖에 없다”면서도 “물가 변동 기준을 폭넓게, 다만 명확하게 산정하는 법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다운 기자 jeong.dawo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98호 (2025.02.26~2025.03.0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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