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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저성장 극복 위한 ‘5대 제언’

전문가 57인 꼽은 2025년 정책 우선순위는?

저성장 극복 위한 ‘5대 제언’

제언1. 결국 ‘테크’가 답이다

‘기술 혁신’으로 생산성 업그레이드

경제 성장을 결정짓는 두 가지 요소는 ‘노동’과 ‘자본’이다. 더 많은 노동력, 그리고 더 많은 자본이 투입될수록 경제 생산량은 커진다. 하지만 현재 한국 경제에서 노동·자본 투입이 더 늘어나는 건 기대하기 어렵다. 저출생·고령화와 근로 시간 단축으로 노동력 자체가 줄었고 경제가 성숙기에 접어들며 자본 투자 속도가 둔화됐다.

하지만 ‘기술 혁신’이 더해지면 얘기가 다르다. 노동과 자본 투입이 늘지 않더라도 생산성이 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기술을 갖춘 노동자는 혼자서도 기존 두 사람 몫을 해내고, 효율적인 기술 공정을 도입한 공장은 똑같은 돈을 투자해도 생산량이 커진다.

전문가들이 찾은 저성장 극복 방안도 결국 ‘기술 혁신’에 있었다. 전체 응답자 57명 중 절반이 넘는 40명(70.2%)이 ‘기술 혁신’을 최우선 순위 정책으로 꼽았다. 특히 AI 분야에 대한 정부와 기업 투자가 꼭 필요하다는 데 이견이 없었다.

기존 산업 생산성을 높이는 것뿐 아니라 ‘미래 먹거리 발굴’ 차원에서도 기술 혁신은 중요하다. AI 등 고부가가치 기술 경쟁에서 밀릴 경우 한국 경제 한 축인 ‘수출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고태봉 iM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디지털 전환(DX) 시대에 뒤처져 장기 저성장 국면을 맞이한 일본 사례를 반면교사 삼을 필요가 있다”며 “한국이 경쟁에 밀리지 않기 위해서는 알고리즘·컴퓨팅파워·데이터 등 인공지능 전환(AX) 시대 ‘3대 인프라’를 조속히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첨단 기술 분야에 대한 투자 필요성도 강조된다. 기술력을 가진 스타트업 육성을 비롯해 연구·개발(R&D) 투자 예산 확충에 대한 목소리가 높다. 김우찬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는 “현 정부는 실체도 없는 과학기술계 이권 카르텔을 척결한다는 명목으로 역사상 처음으로 국가 R&D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며 “대한민국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수많은 이공계 대학원생이 일자리를 잃었다.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이 낮을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꼬집었다.

기술 혁신 생태계가 자리 잡은 미국 선례를 참고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영달 뉴욕시립대 방문교수는 “미국은 20세기 유효했던 ‘요소·효율 주도’ 성장을 지나 이제는 ‘혁신 생태계 주도’로 경제 구조 자체가 진화했다”며 “경제 주체 간 유기적인 상호작용이 중요한 미국식 혁신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부 정책과 법·제도, 문화가 세심하고 정교하게 작동해야 한다. 행정부와 입법부를 아우르는 국가 리더십이 전제돼야 가능한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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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 2. 노동 생산성 높여라

노동 시장 유연화…여성·고령층 참여↑

부족한 노동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것도 저성장 극복을 위한 우선 과제에 꼽혔다.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경직된 노동 시장을 유연화해 노동 효율을 높이고 둘째, 생산인구 자체를 늘리는 방향이다.

먼저 노동 시장 개혁이다. 정규직 근로자를 향한 과도한 보호, 산업별 고려가 없는 일괄적인 근로 시간, 거듭되는 최저임금 인상 등 노동 경직성을 높이는 요인을 줄여가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천장현 머서코리아 부사장은 “현재처럼 노동 시장 경직성이 심각한 상황에서는 기업의 국내 생산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며 “효율을 추구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한국을 떠나는 선택지를 집어들 수 있다. 해외 자본이 국내 기업 투자를 꺼리는 주요인도 노동 시장 경직성에 있다”고 평가했다.

경직된 노동 시장이 산업 경쟁력과 기술 혁신을 방해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조수홍 NH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 역시 “거칠게 표현하면 한국은 인력 100명이 주 52시간 일해 연구개발을 하지만, 중국은 1000명의 인력이 주 80시간 연구에 뛰어든 상황”이라며 “노동 경직성 문제 해결 없이는 신성장동력 발굴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정부의 ‘중소기업 위주 정책’이 노동 시장 수급 불균형을 초래했다는 지적도 있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대학 교수는 “기술 혁신과 상생이라는 포장 아래, 한국에서는 유독 소기업 위주 성장·지원 정책이 지속되고 있다”며 “그 결과 대기업 등 양질의 일자리는 점점 부족해졌고 인적 자원 축적이 어려워지는 부작용도 나타났다”고 꼬집었다.

인구 절벽에 따른 부족한 생산인구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나온다. ‘저출생 해결’이 근본적이면서도 확실한 방안이지만 문제는 ‘속도’다. 정책 노력으로 출생률이 점진적으로 회복된다 해도 해당 인구가 노동 시장에 본격 진입하기까지 수십 년이 걸린다. 일·가정 양립 등 정책으로 여성 경제 참여를 늘리고, 고용 연장에 따른 고령층 생산인구를 확보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뛰어난 외국인 인재를 적극 유치하자는 의견도 많다.

전문가들은 단기 성과에 연연하기보다는 장기적 관점에서 지속성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노정석 사이몬쿠처앤파트너스 대표는 “미래를 이끌 혁신은 결국 사람으로부터 나온다. 인구는 급감하는데 정부와 사회 인식은 아직도 절실함이 부족해 보인다”며 “국가 경제와 산업 성장 근간이 되는 인구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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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 3. ‘친기업’으로 경제 활력 UP

기업이 국내 투자할 유인 만들어야

경제 활성화를 위해 ‘친기업 정책’이 필수라는 의견도 적잖게 나왔다. 응답 전문가 57명 중 26명(45.6%)이 ‘기업 친화적 정책과 세제 개편’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다. 저성장 극복 핵심으로 꼽히는 ‘기술 혁신’이 기업 위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친기업 정책이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근 탄핵 국면으로 입법 리더십이 실종된 가운데, 그간 추진돼온 친기업 정책은 사실상 중단 상태에 놓였다. ‘반도체 특별법’이 대표적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한국 반도체 관련 인센티브 규모는 세액공제 등을 모두 포함해도 1조2000억원 수준이다. 미국의 5분의 1, 일본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반면 중국은 최근 대규모 반도체 산업 지원 펀드를 조성하며 국가 차원에서 공격적으로 반도체 육성에 나서고 있다. 한국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관련 법안의 조속한 통과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아직 소관 상임위 문턱조차 넘지 못한 상태다.

반도체뿐 아니다. 첨단 산업에 속한 국내 기업 체감 규제 수준 역시 높은 편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바이오·배터리·반도체 등 첨단 기업 433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첨단전략산업 규제체감도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첨단 산업 규제 수준이 경쟁국보다 과도하다고 인식하고 있는 기업이 53.7%로 응답 기업 절반을 넘는다. 규제 이행 시 부담 여부에 대해서는 전체 72.9%가 ‘부담된다’고 답했다.

법인세 인하 등 세제 개편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추진할 법인세 인하 정책을 감안하면 더 그렇다. 트럼프는 유세 과정에서 법인세율을 15%로 인하하겠다고 공언했다. 미국 법인세 인하안이 의회를 통과하게 되면 한미 세율 차이는 3%포인트에서 최대 9%포인트까지 벌어지게 된다. 한국 법인세 최고세율은 24%(과세표준 3000억원 초과 기준)로 2023년 기준 주요 7개국(G7) 평균인 21.4%를 웃돈다.

전문가들은 규제 완화와 세제 개편을 통해 기업이 자율적으로 혁신과 투자를 확대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을 강조한다.

김승현 유안타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주력 산업 분야 기업 육성을 위해 보다 적극적인 세제와 금융, 보조금 지급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역시 “기업 신산업 확대를 위한 규제 완화를 통해 신성장동력을 찾을 수 있게끔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친기업 정책이 단순히 규제 완화나 세제 혜택에 그쳐선 안 된다는 의견도 새겨들을 만하다. 결국 정부와 기업이 상호 협력해 장기적인 성장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허문구 경북대 경영학부 교수는 “저성장 국면을 극복하기 위해 혁신을 통한 기업 경쟁력 강화가 필수적”이라며 “기업 혁신 노력과 함께 고용의 유연성과 규제 완화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동원 한국경제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산업 구조 개편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면서도 기업 스스로가 혁신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나건웅·문지민·조동현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91호 (2025.01.01~2025.01.0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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