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人事)는 기업 방향성을 가장 명확히 드러내는 메시지다. 인사가 만사(萬事)인 이유다. 주요 대기업의 2025년 인사가 마무리된 상황. 올해 인사 키워드를 요약하면 ‘비상등(S·I·R·E·N)’이다.

조직 슬림화(Slim down)
삼성·SK·LG 승진 규모 확 줄였다
불황을 앞둔 기업의 선택지는 ‘긴축’으로 쏠린다. 최근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진행한 ‘2025년 기업 경영 전망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5년 경영계획을 수립한 기업 중 49.7%는 내년 경영 기조를 ‘긴축경영’으로 정했다고 답했다. 이 같은 방향성은 정기 임원 인사에도 반영됐다.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인공지능(AI) 반도체 부문에서 어려움을 겪으며 ‘위기론’이 불거진 삼성전자는 임원 승진 규모를 감축했다. 삼성전자는 2025년 정기 임원 인사에서 부사장 35명, 상무 92명, 마스터 10명 등 총 137명을 승진 발령했다. 지난해 143명이 승진한 것과 비교하면 규모가 소폭(6명) 줄었다. 특히 부사장 승진 규모가 예년 대비 큰 폭으로 줄었다. 부사장은 전년 대비 16명 감소했다. 재계 관계자는 “초임 임원인 상무급은 전년 대비 15명 정도 늘고 부사장 승진자는 확 줄었다”며 “내부적으로도 쇄신 고민이 상당한 것 같다. 조직의 머리를 무겁게 하지 않고 초임 임원인 상무 인사를 늘려 기민한 대응을 이어가겠다는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LG그룹도 마찬가지다. LG그룹 2025년 정기 임원 인사에서 임원 승진 규모를 121명으로 밝혔다. 지난해(139명)와 비교하면 18명 줄어든 숫자다. 특히 배터리 업황 둔화와 경쟁 심화로 실적 부진을 겪는 LG에너지솔루션의 경우 임원 승진자가 14명에 그쳤다. 지난해(24명)와 비교해 10명 줄어들었다.
부회장 승진자도 나오지 않았다. 재계에선 조주완 LG전자 사장과 정철동 LG디스플레이 사장의 부회장 승진 가능성이 거론됐지만 예상이 엇나갔다. 범LG가 LS그룹도 불확실한 경영 환경에 대비하기 위해 승진 규모 최소화와 조직 안정에 방점을 둔 임원 인사를 실시했다. 부회장 승진을 포함해 총 승진자는 22명으로 최근 3년 내 가장 적었다. 특히 41명이 승진한 지난해와 비교하면 절반가량 줄었다.
리밸런싱(사업 구조 재편)을 추진 중인 SK그룹도 승진 규모를 최소화했다. 부회장 승진자는 없고 사장 승진자도 2명에 그쳤다. 손현호 SK수펙스추구협의회 전략지원팀장이 SK디스커버리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됐고, 안현 SK하이닉스 N-S 커미티(Committee) 담당이 사장으로 승진, 개발총괄(CDO)까지 맡는 정도다. 신규 선임 임원 수도 75명에 그쳤다. 지난해(82명)와 비교하면 7명 정도 줄었다. 인사폭을 늘렸던 2년 전(145명)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유동성 위기설에 휩싸인 롯데그룹은 창사 이래 최대 규모 쇄신 인사를 단행했다. 롯데는 앞서 2022년 12명, 지난해 14명의 CEO를 바꾼 데 이어 올해 18명의 CEO를 한 번에 바꿨다. 특히 그룹 전반의 불확실성을 촉발한 화학 부문은 CEO 13명 가운데 10명이 동시 교체됐다. 롯데 화학군을 이끌었던 이훈기 사장도 1년 만에 물러났다.
[최창원 기자 choi.changw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9호 (2024.12.18~2024.12.24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