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얼음판’ 걷는 길 잃은 투자자들
계엄·탄핵 정국에 따른 정치경제 불확실성이 자산 시장을 덮쳤다. 우리 경제는 환율·관세·중국 공세 등 복합 충격에 계엄·탄핵 정국이라는 돌발 변수까지 더해졌다. 복합 충격파는 자산 시장을 전방위적으로 휩쓴다. 그렇지 않아도 글로벌 증시 대비 죽을 쑤던 코스피·코스닥은 매도 공세로 초토화됐다. 정치 뉴스에 연일 출렁이던 증시는 최근 변동성이 다소 잦아들었지만, 여전히 살얼음판을 걷는다. 시장 일각에서는 비상계엄 충격으로 우리 자본 시장을 등지는 ‘주식 이민’ 행렬이 가속화할 것을 우려하는 시선이 팽배하다. 미국 등으로 국내 투자자의 ‘주식 이민’ 가속화는 원화 약세를 더 부추길 것이라는 지적이 들끓는다. 부동산 시장도 다르지 않다. 대출 규제로 거래가 부진한 가운데 정치적 불확실성 확대로 투자자들은 일제히 관망세로 돌아선 분위기가 역력하다. 내년 부동산 시장을 바라보는 전문가 시각도 신중론이 대세다. 반면, 가상화폐와 금 등 대체 투자처로는 자산 포트폴리오 다변화에 나선 투자자들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대혼돈 속 ‘비상구’를 찾는 자산 시장을 진단한다.

트럼프 리스크에 계엄 충격까지 덮친 우리 자산 시장이 대혼돈 속으로 빠져들었다. 환율 변동성 확대 속 수출 부진 우려로 코스피와 코스닥은 지난 7월부터 11월까지 5개월 연속 월간 수익률 마이너스를 기록 중이다. 부동산 시장도 계엄 충격에 따른 여진이 이어지는 중이다. 대출 규제 강화로 거래마저 말라붙자 서울 아파트 월간 거래량은 뚝뚝 떨어진다. 원화 가치 약세를 ‘헤지(Hedge·위험 상쇄)’하려는 투자 수요가 몰리면서 가상화폐와 금 같은 대체 투자 자산은 상대적으로 쏠림 현상이 엿보인다. 전문가들은 자산 시장 혼란이 당분간 이어지겠지만, 섣부른 손절에 나서기보단 관망하며 분할 매수 기회를 노리는 가운데, 부동산·금 등 대체 투자처로 포트폴리오 다변화에 나설 것을 조언한다.

코스피, 다중 악재 노출
수익률 세계 ‘꼴찌’ 불명예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최근 코스피는 정치 불확실성을 소화하며 조금씩 반등 중이지만 변동성 확대 우려는 여전하다. 한때 2400선을 내줬던 코스피는 최근 2440선을 등락한다. 올해 코스피지수는 세계 주요국 증시 대비 매우 부진했다. 연초 대비 지난 12월 10일 기준 코스피는 8.5%, 코스닥은 23.1% 빠졌다. 신영증권에 따르면 블룸버그가 집계한 세계 주요국 93개 지수 가운데 코스피가 92위, 코스닥이 93위다. 최하위권이던 순위는 지난 12월 3일 비상계엄 충격으로 꼴찌로 주저앉았다.
국내 증시 악재 요인은 ▲비상계엄 사태로 촉발된 정치 불안 ▲트럼프 리스크 ▲수출 둔화 우려 등이다. 강현기 DB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주식 시장은 불확실성을 가장 싫어하므로 미래가 불투명하면 주가 부진은 피할 수 없다”며 “최근 한국은 정치적 문제뿐 아니라 대외 환경 측면에서도 불확실성이 상당하다”고 진단한다.
시장에서는 코스피 추가 하락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지수 2400선을 내줬던 지난 12월 6일과 9일 기준 코스피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83배였다. 2022년 이후 코스피 PBR 0.83배는 ‘진바닥’으로 작용했던 수준이다. 이 이하로 내려간 경우는 PBR 0.76배까지 빠졌던 2003년(카드대란 사태), 0.71배까지 밀렸던 2020년(코로나 사태) 딱 두 번뿐이다. 노동길 신한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코스피 비관론의 핵심은 결국 관세다. 트럼프 경제 정책의 세부안이 마련되지 않았지만 주식 시장은 이미 24%대 EPS(주당순이익) 하락을 주가에 선반영했다”며 “미국 기준금리 경로, 세계 경기 국면, 미국 제조업 경기 심리, 한국 수출 전망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지나치게 비관적”이라고 진단한다.
전문가들은 현시점에서 뒤늦은 손절보단 관망하며 향후 반등 국면에서 일부 현금화한 뒤 포트폴리오 리밸런싱에 나설 것을 권한다.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레버리지 없이 현금만으로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면 매도 구간은 이미 지났다. 지금은 섣부른 매도로 손절하기보단 관망하며 기다려야 할 때”라며 “현금 여력이 있는 경우 매수 시점 대비 1년 기대수익률을 고려하면 지금은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 봤다.
최근 수년간 유례를 찾기 힘든 수준의 복합위기인 만큼 전망에 관해선 시선이 나뉜다. 관망해야 한다는 신중론이 우세한 가운데 역사적 저평가 수준인 만큼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론도 일부 들린다.
박승영 한화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분위기에 경도된 대중의 공포가 주식 시장 하락을 가속시키고 있다. 지금은 파는 것보다 사는 게 더 적절한 대응”이라고 했다. KB증권은 ▲개인 매도가 집중된 낙폭 과대 종목 ▲주가 하락 상황에서 외국인 수급이 유입된 종목 ▲배당수익률이 높아진 종목의 경우 ‘하락 속 기회’로 꼽았다. 특히 성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우주, 바이오, 에너지 업종과 배당이 기대되는 증권, 은행, 에너지화학, 유틸리티 업종에 대한 관심을 권했다.
반면, 뚜렷한 반등 요인이 나타나기 전까진 우리 증시 전체가 상당 기간 저평가 구간에 갇히는 ‘밸류 트랩’을 우려하는 시선도 적지 않다. 김용구 상상인증권 애널리스트는 “현재 글로벌 경기 순환과 강달러, 높은 미국 금리와 관세 불확실성은 한국 시장에 특히 불리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며 “한국 시장 밸류에이션이 역사적으로 매력적인 수준에 도달했지만, 명확한 촉매제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저평가 상태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잔뜩 위축된 부동산 시장
포트폴리오 리밸런싱 움직임도
부동산 시장 역시 잔뜩 위축된 분위기다. 비상계엄 후폭풍이 탄핵 정국으로 이어지면서 그렇지 않아도 위축된 시장을 꽁꽁 얼어붙게 만들고 있다. 시장에선 당분간 ‘거래 절벽’이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12월 들어 지난 9일까지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량은 105건으로 집계됐다. 하루 평균 거래가 10건을 겨우 넘긴 것. 거래가 감소세를 보인 지난 10월과 11월에도 일평균 거래량은 이보다 9배 가까이 많은 90~100건에 달했다. 전·월세 시장도 마찬가지다. 같은 기간 신고된 아파트 전세 거래량은 1131건, 월세는 985건이다. 지난 11월 일평균 전·월세 각각 190건, 240건씩 성사되던 거래가 30~40건으로 대폭 줄었다.
향후 집값 전망을 두고 전문가 사이에서도 시선이 나뉘지만, 서울 부동산 가격이 하락할 가능성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데 의견이 모인다. 달러 강세로 원화 가치가 하락하는 가운데 이를 헤지할 수단은 결국 부동산 등 실물자산뿐이라는 논리다. 향후 민주당 주도 정국이 펼쳐질 경우 내수 진작을 위해 추경 편성 등 확장 재정이 펼쳐질 가능성이 높단 관측도 이런 시각에 힘을 싣는다. 재정 확대는 종국에는 인플레이션을 불러 원화 가치 하락을 부채질한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더불어민주당 집권 시 보유세가 대폭 뛸 가능성에 대비해 다주택자들이 ‘똘똘한 한 채’를 남기는 식으로 포트폴리오 리밸런싱에 나설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정치적 혼란으로 공급계획과 신축 아파트 입주가 줄줄이 연기돼 내년 서울 아파트 시장에서 ‘공급 절벽’ 현실화를 우려하는 시선도 읽힌다. 국회가 본격적인 탄핵 정국에 들어서면서 행정부가 사실상 ‘식물정부’로 전락해 윤석열정부에서 추진했던 주택 공급 관련 법안은 줄줄이 표류할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당분간 가상화폐와 금 등 대체·실물자산에 대한 투자자 관심은 이어질 전망이다. 특히 가상화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 대선 승리로 전통 금융 시장을 집어삼킬 기세다. ‘트럼프 효과’를 빠르게 선반영하면서 최근 가상화폐 시장 변동성이 커지고 있지만 전체 자산 포트폴리오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는 분위기다.
대표 안전자산 금과 달러에 대한 관심도 식을 줄 모른다. 한국거래소에 공시된 국제금시세 동향에 따르면 g당 금 가격은 지난 12월 3일 11만9000원대에서 4일 12만원을 넘어섰다. KB국민과 신한, 우리 등 금통장(골드뱅킹)을 취급하는 3개 시중은행의 누적 판매 중량은 지난 12월 5일 기준 6256㎏으로 집계됐다. 계좌 수는 270만423좌, 잔액은 7502억원 규모다. 달러 예금으로도 돈이 몰린다.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달러 예금 잔액은 지난 12월 5일 기준 605억7307만달러로 집계됐다. 지난 11월 말 589억6855만달러에서 12월 들어 16억452만달러, 우리 돈 2조3000억원 가까이 불어났다.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9호 (2024.12.18~2024.12.24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