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망 된 ‘밸류업’…금투세도 불투명
6시간.
지난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했다가 해제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고작 6시간’이라고 하기에는 한국 경제에 미친 영향이 너무도 막대하다. 특히 금융 시장 전반에는 후유증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원화 가치 하락과 국내 투자 불확실성 증대에 따라, 한국에서 해외로 ‘머니무브’ 현상이 두드러진다. 증시는 떨어지고 환율은 치솟았다. 디지털자산(코인) 시장도 발작 증세를 보이며 신뢰에 금이 갔다. 짧지만 충격적이었던 계엄 선포 그 이후, 한국 금융 시장에 남은 상흔을 들여다본다.

증시 계엄 불확실성에 ‘흔들’
단기 충격 그쳤지만 ‘셀코리아’ 확산
12월 4일 아침, 투자자 시선은 여의도 한국거래소로 향했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벌어진 비상계엄과 계엄 해제안 의결 사태에 증시 개장 여부를 두고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한국거래소는 결국 개장을 선택했다. 오전 9시 정상적으로 장이 열렸고 다행히 파장은 예상보다 크지 않았다. 개장과 동시에 코스피지수는 약 2% 하락세로 출발했지만 점차 회복세를 보였다. 12월 4일 기준 코스피 종가는 2464포인트를 기록했다. 전날과 비교해 36.1포인트(1.44%) 떨어지는 데 그쳤다.
당장은 후폭풍이 단기에 그칠 것이라는 데 의견이 모인다. 코스피지수도 2400선에서 하방 지지력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비상계엄 해제가 신속하게 이뤄졌다. 비상계엄 선포부터 국회가 계엄 해제안을 의결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3시간 남짓이다. 계엄이 사실상 3시간 만에 무효화된 셈이다. 이경민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이번 사태 이후 국내 정치적 불확실성 확대가 불가피해 단기 변동성 확대가 예상된다”면서도 “비상계엄 선포 직후 국회가 빠르게 움직여 해제안을 의결했고, 이 과정에서 환율 등도 진정세를 보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금융 시장 충격 강도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밝혔다.
둘째, 이번 계엄이 기업 펀더멘털(기초체력)과 무관한 이슈라는 점이다. 주요 기업의 사업 역량이나 실적 등에 즉각적인 변화를 줄 요인은 아니라는 의미다. 나정환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단기적으로 외국인 투자자가 한국 주식 시장에서 이탈하면서 주가가 급락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도 “이번 이슈가 한국 주식 시장의 펀더멘털 변화 요인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길게 보면 ‘비관론’이 많다. 당장 비상계엄은 해프닝으로 일단락되기는 했지만, 정치적 불확실성이 여전히 남은 탓이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윤 대통령 탄핵 요구 목소리가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등 야 6당은 12월 4일 탄액소추안을 공동 발의했다. 탄핵 정국이 본격화하면 증시 변동성도 커질 수밖에 없다. 일부 증권가 관계자를 중심으로 외국인 투자자 ‘코리아 엑소더스(탈출)’가 가속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한 증권 업계 관계자는 “안 그래도 코스피 시장은 외국인 투자자 순매도세가 상당했는데, 더욱 가속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한국거래소 정보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코스피 시장에서 비상계엄 선포 직전 최근 한 달 동안 빠져나간 외국인 투자자 순매도액이 이미 3조8692억원에 달한다. 반도체와 이차전지 등 한국 핵심 산업이 부진한 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관세 정책’ 등으로 인한 경기 침체 우려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미국 무역 적자 해소를 위해 관세 10~20%를 수입품에 매기겠다고 밝혔다. 한국도 관세 인상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여기에 비상계엄에 이은 탄핵 정국 가능성까지 겹치며 외국인 투자자 매도세가 거세질 것이라는 게 증권가 전망이다. 실제 비상계엄 직후인 12월 4일 외국인 투자자 순매도액은 4088억원에 달했다. 직전일(12월 3일) 5650억원 순매수를 기록, 증시가 회복 조짐을 보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뼈아픈 결과다.
한국 증시 핵심 정책 과제인 ‘밸류업(기업가치 제고)’이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김윤정 LS증권 애널리스트는 “가뜩이나 정책 추진 동력이 돼야 할 법안 개정 필요 안건들이 계류 중이던 상황에서, 이번 사태로 현 정권의 리더십과 정권 유지 여부에 대해 빨간불이 켜진 상황”이라고 짚었다.
여야 합의가 이뤄지기는 했지만 탄핵 정국을 앞두고 금투세 폐지 이슈는 완전히 해결됐다고 보기 어렵다. 기대를 모았던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 지수 편입도 스스로 걷어찬 모양새가 됐다. MSCI 선진국 지수는 글로벌 펀드자금이 벤치마크로 추종하는 지수다. 선진국 지수에 편입되면 글로벌 자금 유입이 크게 늘어난다. 한국은 MSCI 신흥국 지수로 분류된 상태다. 2025년 선진국 지수 편입 가능성이 점쳐졌지만,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으로 물 건너갔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예상보다 외국인 수급 타격이 더 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국내 기업이 위기설에 빠진 상황에서 악재가 겹친 만큼 투자 유인이 적다는 분석이다. 박상현 iM증권 애널리스트는 “가뜩이나 트럼프 정책 불확실성과 중국 리스크 등으로 외국인 시각이 곱지 않은 상황에서 불거진 정치 불확실성은 국내 신인도의 추가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특히 일부 기업을 중심으로 유동성 위기설이 대두되는 상황에서 한국 경제에 대한 신인도 하락은 자금 조달 리스크를 키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2016년 탄핵 때와 비교해보니
“수습 속도가 증시 안정 결정”
과거 비슷한 정치 불안 상황서 증시는 어떻게 움직였을까.
유사 전례가 두 번 있었다. 2004년 3월 故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그리고 2016년 10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이다.
둘 중에서도 한국 증시가 마주한 상황은 2016년과 더 비슷하다. 내부에선 박 전 대통령 탄핵 정국이, 외부에선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으로 변화의 바람이 불던 때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 국면이 본격화된 2016년 11월 외국인 투자자는 한국 증시에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2016년 10월 한 달 동안 코스피에서 4297억원 순매수세를 기록한 외국인 투자자는 11월 한 달간 3194억원 순매도세로 돌아섰다. 변동성도 컸다. 박 전 대통령이 하야를 거부하며 정치적 불안도가 높아진 2016년 11월 9일에는 코스피지수가 장중 3.6% 급락, 1931포인트까지 떨어졌다.
이후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2016년 12월을 기점으로 증시는 안정세로 접어들었다. 한국을 떠났던 외국인 투자자도 돌아왔다. 2016년 12월 한 달 동안 1조원대 순매수세를 기록했다. 이웅찬 iM증권 애널리스트는 “결국 속도가 핵심”이라며 “외국인 자금 이탈 확대 가능성은 정치 리스크가 얼마나 빠르게 수습되느냐에 달려 있다. 일단 수습이 되면 증시는 안정된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2016년과 동일한 잣대로 볼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유명간 미래에셋증권 애널리스트는 “2016년 4분기와 2017년 1분기 당시 글로벌 경기는 회복 국면이었고 국내 기업 수출도 회복세를 띠었다”며 “하지만 현재는 국내 기업 수출 둔화가 감지되고 트럼프 2기 정부의 정책 불확실성이 상존하는 국면으로 대내외 펀더멘털 환경이 부정적”이라고 설명했다.
“공포에 사라”…저점 매수 의견도
방어 뛰어난 음식료·통신·배당주
중장기 관점에서 ‘저점 매수’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국 증시가 과도한 저평가 국면에 진입했다는 판단에서다. 코스피는 지난 10년 동안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 기준 10.4배 수준을 유지했다. 하지만 현재는 8.7배다. 선행 PER은 현재 주가를 12개월 뒤 주당순이익과 비교하는 형태다. 김대준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현 상황으로 인해 한국 증시 저평가 기조가 고착화된다면 극단적 저점 수준까지 내려갈 수 있다”며 “정치적 불확실성과 외국인 매매 동향이 부정적이기는 하지만 중장기 관점에서 저가 매수를 시도해볼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
업종별로는 내수 시장을 겨냥한 통신·음식료 등이 주목받는다. 김 애널리스트는 “외국인 입장에서 한국 내 생산 비중이 높은 제조업을 부정적으로 본다. 해외 수출 비중이 높은 제조업은 투자를 경계하는 게 좋고 현 정부 정책 기조와 맞아떨어진 원전 등은 단기 변동성에 노출될 것”이라며 “음식료나 통신 등 내수 중심의 방어적 특성을 보유한 업종이나 배당 매력이 높은 종목에 관심을 갖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채권 시장 영향 제한적이지만
정치 불확실성 커지면 국가 신용↓
윤 대통령 비상계엄 선포 직후 증시보다 불안감이 높았던 건 채권 시장이다. 대외 신인도와 관련 있는 만큼 채권 시장이 ‘카오스’에 빠지면 금융 시장 전반으로 위기가 번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면서다. 다행히 금융당국이 발 빠르게 조치에 나서며 채권 시장은 안정적 흐름을 찾았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12월 4일 국고채 3년 만기 금리는 전날보다 0.041% 오른 연 2.6%에 마감됐다. 3년 만기 AA- 등급 회사채 금리도 0.041%포인트 오른 연 3.21%에 장을 마쳤다. 변동성이 큰 편은 아니라는 점에서 안도할 만했다.
금융당국과 한국은행이 시장 안정 대책을 빠르게 내놓은 결과라는 평가다. 한국은행은 시장 안정화를 위해 2021년 6월 이후 3년여 만에 ‘임시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를 열었다. 2025년 2월까지 환매조건부채권(RP)을 무제한 매입해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국고채 단순 매입을 진행한다는 게 골자다. RP 매입은 금융기관이 발행한 채권(국채, 정부보증채, 금통위가 정한 기타 유가증권 등)을 되판다는 조건으로 한국은행이 사주는 방식의 유동성 공급 도구다. 한국은행이 채권을 담보로 금융기관에 돈을 빌려준다고 보면 쉽다. 금융기관은 이렇게 빌린 돈을 다시 필요한 기업이나 개인에게 대출을 실행해 유동성을 푸는 방식이다. 사전에 정한 물량뿐 아니라, 자금 수요가 있는 금융회사가 원하는 만큼 사들이는 ‘전액 공급’ 방식으로 한국은행이 RP를 매입하기로 했다.
한국은행이 금융 시장에 “걱정 말라”고 던지는 메시지인 동시에 어떻게든 시장 안정성을 유지해 신용등급 강등 등 최악의 상황은 막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신용등급이 떨어질 경우 국채 가격 폭락, 채권을 비롯한 금융 시장 전반에 위기감이 고조될 수 있다. 또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긴급 거시경제 금융현안 간담회에서 “채권 40조원, 증시 10조원 등 50조원 규모 시장 안정 펀드를 준비할 방침”이라고도 강조했다.
덕분에 채권 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대외 신인도 지표는 괜찮다. 국가 부도 확률과 관련 있는 5년물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 지표도 기존 수준으로 회복됐다. CDS는 부도 위험이 있는 채권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 부도가 발생했을 때 생기는 손실을 보상받을 수 있도록 설계된 파생상품이다.
12월 2일 33bp(1bp=0.01%포인트)대를 지키던 CDS 프리미엄은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직후 36.6bp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가결되자 차츰 내려 12월 4일 기준 34bp대를 기록 중이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S&P는 비상계엄 사태가 당장 한국 국가신용등급에 미칠 실질적 영향이 없다는 평가를 내놨다. 킴엥 탄 S&P 전무는 “비상계엄이 몇 시간 만에 해제됐고 한국의 제도적 기반이 탄탄한 것으로 판단한다”며 “현 상황에서는 한국의 지금 신용등급(AA)을 바꿀 이유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만 S&P는 비상계엄 등 정치적 불확실성이 계속 이어질 경우 외국인 투자 자금이 빠져나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경우 신용등급 강등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 또 다른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도 “정치적 갈등이 장기화해 경제 활동에 영향을 끼치면 신용도에 부정적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환율 금융위기와 맞먹는 수준
‘1400원 뉴노멀’ 되나…우려 증폭
계엄 사태로 가장 불안감이 커진 곳 중 하나가 ‘외환 시장’이다. 무엇보다 원달러 환율이 급등한 게 뼈아프다. 서울 외국환거래에 따르면 윤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고 4시간 정도 지난 12월 4일,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최고 1446.5원까지 치솟았다. 전날 시가(1395.1원)와 비교하면 50원 넘게 폭등한 수치다. 이날 하루 환율 저·고점 변동폭만 40원에 달한다.
계엄 해제 이후 안정세를 되찾기는 했지만 12월 5일 기준 여전히 1410원대를 유지 중이다. 전년 동기 시가(1301.8원) 대비 100원 넘게 올랐다. 금융 시장 전문가들은 원달러 환율 1420원대 진입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안 그래도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글로벌 달러가 강세를 나타내고 있는 와중에 국내 리스크까지 겹치며 원화 가치가 급격히 떨어지는 중이다. 환율 상승은 금융 시장 혼란은 물론 수출·물가·소비 등 실물 경제에도 심대한 타격을 줄 수 있는 만큼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최근 원달러 환율이 얼마나 높은 수준인지 짐작 가능하다. 12월 4일 장중 한때 기록한 1446.5원은 글로벌 금융위기 여진이 남아 있던 2009년 3월 16일(1488원) 이후 약 15년 8개월 만에 최고치다. 가장 최근 1440원대를 기록했던 건 2022년 10월 25일(1444.2원)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미국이 통화 긴축으로 금리를 공격적으로 올리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격화와 미중 통상 갈등 심화로 글로벌 정세가 극심한 불안을 맞이했을 때다. 그만큼 지금이 심각한 상황이라는 얘기다.
기존 달러 강세에 더해 환율 급등을 이끈 건 갑작스러운 계엄령 선포였다. 국내 불확실성 증가로 원화 가치가 하락하며 ‘달러 쏠림’ 현상이 두드러졌다. 실제 계엄령 선포 직후인 12월 3일 늦은 11시부터 다음 날 이른 2시 사이, 신한은행 ‘쏠뱅크’에서는 평소보다 10배 많은 환전 거래가 발생했다. 무료 환전 서비스를 제공하는 하나카드는 ‘트래블카드’ 환전액이 4일 오전에만 일평균 수치의 두 배 가까이 치솟았다고 설명했다. 원화 가치가 떨어지고 달러값이 더 오를 것이라고 판단한 개인이 투자 또는 해외 송금 목적으로 달러를 대거 사들인 모습이다.
원·달러 환율이 널뛰기하면서 국내 여러 금융사에선 환전 서비스가 일시적으로 중단되는 해프닝도 있었다. 카카오뱅크는 4일 오전 2시부터 8시까지 해외계좌 송금 보내기 서비스를 일시 중단했다. 환율 급등에 따라 해외 송금 수요가 확대되면서 선제 대응에 나섰다. 토스뱅크 ‘외환 사고팔기’ 서비스는 이용자 폭증으로 4일 오전 9시까지 ‘일시적으로 환전을 할 수 없다’는 문구가 나오는 등 먹통 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
더 큰 문제는 계엄 이슈와 무관하게 이미 원화 가치가 거센 하방 압력에 직면해 있었다는 점이다. 한국 외환보유액은 환율 방어를 위한 외환당국 달러 매도에 빠르게 줄어들고 있던 중이었다. 그 와중에 계엄 불확실성 리스크까지 더해진 셈이다.
최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1월 말 기준 외환보유액은 4153억9000만달러로 전월 말(4156억9000만달러) 대비 3억달러 줄었다. 올해 10월(42억8000만달러 감소)부터 두 달 연속 감소세로, 올 7월(4135억달러) 이후 잔액이 최저치를 기록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으로 달러 강세에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에 진입, 외환당국이 달러 매도에 나서면서다. 외환보유액 대부분을 차지하는 미국 국채와 정부기관채, 회사채 등 유가증권이 3723억9000만달러로 전월(3732억5000만달러)보다 8억6000만달러 줄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달러 강세로 운용수익과 금융기관 예금이 늘며 외화예수금이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했지만, 기타자산 외화 환산은 줄어드는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최근 금융당국이 꺼내든 ‘무제한 RP 매입 카드’가 원달러 환율에는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RP 매입은 유동성을 공급해 시장을 안정시키는 것이 목표이지만, 환율 상방 압력은 커진다. 원화가 풀리는 만큼 그 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는 데다, 시장에 풀린 원화로 보다 안정적이고 금리가 높은 달러를 사들이는 ‘캐리 트레이드’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금리 인하와 효과가 비슷하다.
물가 상승과 가계부채 증가 등 경제에 부정적인 효과가 연쇄적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 수입 물가가 오르며 소비 심리에 타격을 줄 수 있다. 환율이 오른다고 수출 경쟁력이 높아지는 것만도 아니다. 철강·정유 등 원자재 수입 비중이 높은 업종은 원가 부담이 커지면서 부정적인 영향이 불가피하다. 한 금융 시장 관계자는 “한국은행이 환율 안정을 위한 외화 RP 매입도 함께 진행하기는 하지만, 무제한 RP 매입이 환율 상방 압력을 높이는 건 분명하다”며 “시장에 풀린 유동성이 달러로 크게 쏠리거나 가계부채 증가로 이어질 경우, 오히려 실물 경제 불안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코인 ‘발작’ 일으킨 국내 코인
비트코인 순간 낙폭 5000만원 달해
계엄 선포 직후 단기간 가장 큰 폭으로 요동친 건 ‘코인 시장’이다. 글로벌 시세에는 영향이 크지 않았지만 문제는 국내 시장이었다. 개인 투자자가 너도나도 ‘패닉셀’에 나서며 주요 코인 가격이 급락했다. ‘코인 현금화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공포감에 무더기로 코인을 던지면서다.
1억3000만원 수준에서 거래되던 비트코인 가격은 계엄 선포 직후 순식간에 8800만원까지 떨어졌다. 이후 15분 만에 해외 거래소 가격과 비슷한 수준으로 가격을 다시 회복했다. 국내 거래소와 해외 코인 거래 가격 차이를 뜻하는 ‘김치 프리미엄’이 -32%에 달했다.
국내 투자자 비중이 높은 리플과 솔라나 등 알트코인 시세는 ‘반 토막’ 나기도 했다. 3400원대에서 거래되던 리플은 10분 만에 1623원까지 폭락했고, 35만원대에 가격이 형성됐던 솔라나도 18만원대까지 하락했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여타 코인 가격은 20분 만에 모두 원래 수준을 회복했지만, 그 와중에 업비트·빗썸 등 국내 주요 거래소 애플리케이션 접속이 막히는 등 극도로 혼란스러운 장세가 펼쳐졌다. 계엄 사태가 터져 나온 12월 3일부터 4일까지, 국내 주요 거래소 24시간 거래량은 50조원을 넘어섰다. 유가증권 시장 일 거래액 4배에 달하는 액수다.
글로벌 시세에는 영향이 없었지만 한국 코인 가격만 발작을 일으킨 이유는 각 거래소마다 가격이 별도 형성되기 때문이다. 한국거래소에서 일괄 관리하며 모든 증권사 종목 가격이 동일한 주식 시장과는 달리, 코인 시장은 각 거래소마다 투자자 수급이 다르다. 거래량도, 이에 따라 형성되는 코인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차익을 노린 투자자들이 다른 거래소로 코인을 옮겨 파는 과정에서 가격이 수렴하기는 하지만, 이번 계엄 선포 때처럼 거래량이 급등하거나 접속 장애가 발생하면 가격 차이가 극심해진다.
현재 국내 코인 가격은 모두 글로벌 수준으로 회복되기는 했다. 다만 한국 코인 시장을 향한 국내외 투자자 신뢰도가 떨어졌다는 점은 리스크다. 탈중앙화 화폐로 비교적 ‘안전자산’으로 여겨졌던 비트코인 경쟁력이 퇴색됐다는 점도 문제다. 비트코인은 그 특성상 중앙에서 통제가 불가능하지만, 이번처럼 거래소 서비스 자체가 막힐 경우 투자자 입장에서 손쓸 길이 없다는 사실이 증명된 꼴이다.
한 코인 거래소 업계 관계자는 “한국 거래소는 원화 거래를 주로 지원하는 탓에, 안 그래도 여타 글로벌 거래소 대비 매력이 없었다”며 “굳이 위험 부담을 감수하고 한국에서 코인을 거래할 이유가 있는지 회의감이 번지면 해외 거래소로 자본 유출이 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나건웅 기자 na.kunwoong@mk.co.kr, 최창원 기자 choi.changw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8호 (2024.12.11~2024.12.17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