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남은 마지막 금싸라기 땅’ 용산정비창이 100층짜리 랜드마크가 들어서는 국제업무지구로 변신한다. 서울시는 세계 최초로 45층 높이 건물을 연결하는 보행전망교(스카이트레일)를 설치하는 등 친환경 수직 도시로 조성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내놨다. 무려 10여년 만에 용산 개발 사업이 재개되면서 인근 부동산 시장에 어떤 영향을 줄지 관심이 뜨겁다.

용산에 100층 국제업무지구
세계 최대 수직 도시 만든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월 5일 용산역에서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계획’을 발표했다. 대상지는 코레일이 과거 정비창으로 쓰던 용산역 뒤편 부지 49만5000㎡다.
서울시는 용산정비창 부지를 세계 최대 규모의 수직 도시(콤팩트시티)로 만든다는 구상이다. 미국 뉴욕 맨해튼 최대 복합개발지인 허드슨 야드의 4.4배, 일본 도쿄 롯폰기힐스의 4.5배 규모 수직 도시가 서울 한복판에 들어선다. 한 지역에 업무·주거·상업·녹지 등 다양한 용도를 함께 적용하도록 하는 제도인 ‘비욘드조닝(Beyond Zoning)’을 활용해 최대 용적률 1700%의 초고밀 개발을 유도한다. 업무, 주거, 여가 문화 등을 도보권에서 해결할 수 있는 콘셉트다.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용산국제업무지구 중심부인 국제업무존에는 100층 안팎 랜드마크 건물이 들어선다. 프라임급 오피스, 호텔, 광역환승센터 등을 조성하고 최상층에는 전망시설과 어트랙션 등 복합 놀이 공간도 구축할 계획이다.
국제업무존을 중심으로 배후에는 업무복합존, 업무지원존이 배치된다. 업무복합존에는 정보통신기술(ICT), 인공지능(AI), 빅데이터 관련 업무시설이 자리 잡는다. 업무복합존 건축물 고층부(45층)에는 9개 건물을 잇는 1.1㎞ 스카이트레일이 들어선다. 고층에서 걸어서 서울시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보행전망교다. 세계에서 가장 긴 스카이 브리지가 될 전망이다. 업무지원존에는 공공주택 3500가구와 오피스텔 2500가구를 포함한 6000가구 주거시설과 교육, 문화 등 지원시설이 예정돼 있다. 이들 존을 포함한 전체 사업지구 평균 용적률은 900% 수준이다.
국제업무존 저층부에는 콘서트홀, 아트뮤지엄, 복합문화도서관 등으로 구성된 서울아트밴드(가칭) 등이 들어선다. 한강공원, 노들섬까지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강변북로 상부 덮개공원을 조성한다. 국제업무지구 정중앙에는 미국 뉴욕 허드슨 야드 근처에 들어선 ‘베슬’이나 미국 시카고 밀레니엄파크 ‘클라우드 게이트’ 같은 상징 조형물을 설치해 명소로 만든다. 서울시는 랜드마크 건물에 지어질 초고층 전망대(100층)와 실내 보타닉가든, 스카이트레일 등을 시민에게 개방할 예정이다.
지상부터 공중까지 입체적으로 활용한 대규모 녹지 공간도 용산국제업무지구의 자랑거리다.
서울시는 전체 사업 부지 면적과 맞먹는 50만㎡ 규모의 녹지 공간을 기획했다. 지상공원뿐 아니라 축구장 11개 크기의 공중 녹지(그린스퀘어), 순환형 녹지(그린커브), 선형 녹지(그린코리더) 등 수직·수평 녹지를 확보해 용산공원~한강공원~노들섬으로 이어지는 녹지 보행축을 유도할 방침이다. 폭 40m, 연장 1㎞에 이르는 U자형 ‘순환형 녹지’는 국제업무지구 내 어디서나 접근할 수 있는 개방형 녹지로 조성되고, ‘선형 녹지’는 주변 시가지와 용산국제업무지구를 이어주는 보행·통경축 기능을 하게 된다.
또한 최첨단 환경, 교통 기술을 도입해 ‘탄소 배출 제로(0) 지구’로 운영된다. 용산역에서 출발하는 공항철도와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노선 등을 추가해 대중교통 분담률을 기존 57%에서 70%로 끌어올린다. 교통혼잡특별관리구역 지정 등을 통해 교통량은 절반 수준으로 줄인다. 자율주행 셔틀, 도심항공교통(UAM) 등 친환경 교통수단을 도입하고 내연기관 차량 운행은 단계적으로 제한한다.
서울시는 올 상반기 도시개발구역 지정과 개발계획 고시를 끝내고, 내년 기반시설 공사에 나설 계획이다. 이르면 2030년대 초부터 입주할 수 있다.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이 완료되면 14만6000명의 고용 창출, 32조6000억원의 생산 유발 효과가 기대된다. 오세훈 시장은 “서울 도심 한가운데 미니 신도시급 입지라는 점을 활용해 ‘세계 최고, 세계 최초, 세계 유일’ 요소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세계가 주목하는 핫플레이스가 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용산국제업무지구는 서울시의 야심 찬 프로젝트로 ‘제2 한강의 기적’ 신호탄으로 개발될 여지가 높다. 세계 대도시 중에서도 50만㎡에 이르는 대규모 도심 융복합 개발이 이뤄진 사례는 흔치 않다. 이번 개발이 완료되면 ‘도시 공간 대개조’의 핵심 프로젝트로 용산 위상이 더욱 높아질 것이다.” 윤재호 메트로컨설팅 대표 의견이다.

우여곡절 겪은 용산 개발
자금난에 좌초…집값 폭등에 보류도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은 그동안 숱한 우여곡절을 겪어왔다.
용산 개발이 처음 추진된 것은 20여년 전인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정부가 4조5000억원 규모 코레일 부채를 해결하기 위해, 용산정비창 부지를 개발해 역세권에 초고층 건물을 만든다는 계획을 내놨다.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은 용산 일대와 서부이촌동까지 묶어 개발하는 ‘한강 르네상스 마스터플랜’을 추진했다. 용산여객터미널을 짓고 국제업무지구를 한강변까지 연결하는 총 사업비 31조원 규모 프로젝트였다. ‘단군 이래 최대 개발 사업’ ‘한국판 롯폰기힐스’로 불렸다. 2007년 삼성물산 등 30여개 기업이 출자한 ‘드림허브금융투자회사(PFV)’가 용산 개발의 민간 시행사로 선정됐다.
하지만 사업은 순탄치 않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부동산 경기가 침체돼 개발계획이 삐걱댔다. 30여개 기업이 전체 구역의 도시기반시설부터 개별 건축물까지 모든 계획을 세우다 보니 개발 부담금, 공사비 등을 놓고 순조로운 합의가 어려운 구조였다.
급기야 드림허브는 2013년 채무불이행을 선언했다.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은 새 시행사를 구하지 못하고 용산국제업무지구 해제를 결정했다. 첫 삽도 뜨지 못한 채 사업이 좌초된 것. 드림허브에 참여했던 기업들과 코레일은 사업 무산 책임을 두고 소송전을 벌였다.
2018년 박원순 서울시장이 용산 개발계획을 내놓으면서 또다시 불씨가 피어올랐다. 용산정비창 부지와 여의도를 묶어 개발한다는 ‘여의도·용산 통개발’ 구상이다. 서울을 대표할 국제업무·상업 복합지구를 짓겠다는 포부였지만 용산, 여의도 일대 아파트값을 자극하면서 박 시장은 결국 “집값이 안정될 때까지 사업을 무기한 보류하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문재인정부는 2020년 용산정비창 부지에 공공임대주택 등 주택 8000여가구의 미니 신도시를 짓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2021년 보궐선거로 당선된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듬해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가이드라인’을 내놓으면서 이곳을 주거지가 아닌 국제업무지구로 조성하겠다는 과거 계획을 되살렸고 구체적인 개발 방안이 발표됐다.

부동산 시장 영향은
서부이촌동 아파트 호가 ‘들썩’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이 윤곽을 드러내면서 인근 부동산 시장도 들썩이는 모습이다.
당장 용산정비창 주변 재개발 사업이 속도를 내는 분위기다. 용산전자상가와 가까운 신용산역 북측 2구역은 관리처분인가를 준비 중이다. 최근 현대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했다. 재개발을 통해 지하 7층~지상 33층 규모 아파트 340가구로 탈바꿈한다. 신용산역 북측 1구역은 지난해 말 사업시행인가를 받았다. 38층 규모 324가구 단지가 들어선다.
용산정비창 주변에서는 전면 1구역이 2021년 조합설립인가를 받은 후 시공사 선정을 준비 중이다. 35층, 1313가구 단지가 들어설 전망이다. 앞서 용산정비창 전면 2구역과 3구역이 각각 2017년 용산푸르지오써밋(650가구), 래미안용산더센트럴(782가구)로 탈바꿈한 만큼 1구역 개발을 두고서도 부동산업계 기대가 크다.
지하철 4호선 신용산역 초역세권 주상복합단지 래미안용산더센트럴 매매가는 꾸준히 상승세를 보이는 중이다. 전용 48㎡는 최근 8억7000만원에 실거래됐다. 2021년 1월 매매가(7억원) 대비 1억7000만원 올랐다. 임대 매물은 보증금 5000만원, 월세 190만원 수준에 거래된다.
인근 단지도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40층짜리 주상복합단지 용산파크타워 전용 140㎡는 지난해 말 31억원에 주인을 찾았다. 거래가 드물지만 2021년 7월 실거래가(27억2500만원) 대비 4억원가량 뛴 시세다. 용산센트럴파크 전용 102㎡는 최근 26억4000만원에 주인을 찾았다. 지난해 10월 신고가(30억2000만원)와 비교하면 3억원 넘게 떨어졌지만 집주인들이 내놓은 호가는 대부분 30억원 안팎이다.
용산 A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부동산 경기 침체로 거래가 드물지만 워낙 입지가 좋아 매수 문의는 꾸준하다. 용산 개발 사업이 차근차근 추진되면 투자 수요가 더 몰리지 않겠나”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뿐 아니다. 서부이촌동(이촌2동) 주택 시장도 기대에 부풀었다. 때마침 서울시가 이촌 아파트지구를 지구단위계획구역으로 전환하는 내용의 ‘이촌아파트지구 지구단위계획안’을 마련해 호재가 몰렸다. 지구단위계획은 토지 이용 효율성을 높이고 지역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수립하는 ‘개발 밑그림’이다. 주거 기능만 담당할 수 있었던 주거 용지에 상업, 비주거 용도 도입이 가능해지고 높이 규제도 완화된다. 이를 통해 서부이촌동 현대한강, 동아그린 등 주요 단지들이 수혜를 입을 전망이다.
특히 이번 지구단위계획에는 한강변에 위치한 현대한강, 동아그린아파트가 통합 재건축하면 3종일반주거지역에서 준주거지역으로 용도지역을 상향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 경우 용적률을 최대 500%까지 적용받을 수 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서울시가 용산정비창 개발에 속도를 내면서 서부이촌동 내 노후 주거지 재정비 사업이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덕분에 집값도 들썩이는 분위기다. 이촌 현대한강 전용 59㎡는 올 1월 14억2000만원에 주인을 찾았다. 2022년 5월 매매가(16억5000만원)와 비교하면 2억원 넘게 떨어졌지만 지난해 9월 실거래가(14억원) 대비로는 2000만원 올라 반등에 시동을 걸었다. 이촌대림 전용 84㎡ 매매가는 지난해 3월 17억원에서 10월 19억3000만~19억5000만원까지 뛰었다가 11월 18억3000만원으로 소폭 하락한 상태다. 이 단지는 1994년 입주한 638가구 단지다.
용산 B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용산 개발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면 이촌대림 매매가가 다시 20억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한강 조망권이 좋은 매물의 경우 집주인들이 호가를 22억~23억원으로 높이거나 매물을 거둬들이는 분위기”라고 들려준다.
인근 빌라 투자 문의도 늘어나는 모습이다. 대지지분 15㎡ 안팎 투룸형 빌라의 경우 호가가 12억원 수준이다. 토지면적 135.5㎡의 5층짜리 근린생활시설은 최근 70억원에 거래됐다. 3.3㎡당 약 1억5000만원 수준이다. 다만 서부이촌동 특별계획구역은 토지거래허가구역이라 2년 이상 실거주를 해야 한다는 점이 변수다.
용산역 일대 교통 호재도 눈여겨볼 만하다. 용산역에는 인천 송도국제도시에서 남양주 마석을 잇는 GTX B노선이 2030년 개통될 예정이다. 서울 신사에서 강남, 양재, 판교를 지나 경기도 광교신도시까지 이어지는 신분당선도 2026년 용산역까지 연장된다. 용산국제업무지구 입주 시점인 2030년에는 용산역이 지하철 1, 4호선과 경의중앙선, 신분당선, KTX, GTX B노선이 지나는 교통의 요지로 변신할 전망이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용산은 아직까지 서울 강남 3구(강남, 서초, 송파구)에 비해 입지가 떨어진다는 평가가 많아 집값도 낮지만, 용산국제업무지구가 완공되면 강남 못지않은 투자 수요가 몰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려의 목소리도
‘초고층의 저주’ 오나…단계적 개발 필요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이 본궤도에 올랐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적잖다.
워낙 규모가 거대한 만큼 사업비가 만만찮다. 공공과 민간을 합쳐 총 51조1000억원에 달한다. 2010년 계획안(31조원)과 비교해 무려 20조원가량 늘었다.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을 위해 공공이 14조3000억원, 민간이 36조8000억원가량을 투자해야 하는데 부동산 경기 침체로 자금 조달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국공유지인 땅값(8조9000억원)을 제외하고 공공에서 기반시설 조성을 위해 마련해야 할 돈만 5조4000억원이다. 서울시는 “SH공사에서 회사채를 발행해 3조원가량 투입하고, 나머지는 토지 분양 대금으로 충당하겠다”는 입장이지만 토지 분양이 순조로울지는 의문이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리스크로 서울, 수도권 인기 지역 개발 사업마저 난항을 겪는 상황이라 용산 개발 사업 역시 자금 조달 리스크에 휘말릴 수 있다는 시선이다.
한태욱 전 동양미래대 경영학부 교수는 “용산국제업무지구는 워낙 초대형 프로젝트라 원활한 사업비 조달이 우선돼야 한다. 코레일과 SH공사가 시행사로써 제대로 된 사업 수행 능력을 갖췄는지 우려되는 만큼 사업 추진에 앞서 명확한 마스터플랜을 마련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개발 사업의 핵심인 100층 랜드마크를 두고서도 말이 많다. 막대한 PF 부담과 공사비 증가로 사업이 흔들릴 경우 자칫 ‘초고층의 저주’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2010년 당시 개발 사업을 추진할 때도 일명 ‘트리플원’으로 불린 111층짜리 랜드마크가 계획안에 포함된 바 있다. 초고층 빌딩을 지으려면 일반 건축물과 다른 자재, 공법을 적용해야 해 사업비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다.
이 때문에 용산 개발이 성공하려면 용산국제업무지구를 한꺼번에 하는 통개발이 아닌 단계적 개발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워낙 규모가 큰 만큼 몇 개 지구로 나눠 개발하면 사업자 부담이 줄어들고 실현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윤재호 대표는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은 구역을 나눠 차근차근 진행하되 부족한 사업성을 채우려면 주거 비중을 높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폭 오른 공사비와 고금리 금융비용을 감안해 주거 비중을 적어도 70% 이상으로 상향 조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용산국제업무지구 토지 매각 시 용도 규제를 최소화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한다.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과정에서 주변 토지를 수용할 때 과도한 보상 요구가 사업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과거 사업 무산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서울시뿐 아니라 정부, 민간 기업도 함께 나서서 민관산학 협동 개발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일본 도쿄 복합상업지구인 롯폰기힐스, 미드타운 등 해외 개발 성공 사례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 의견은 눈길을 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47호 (2024.02.21~2024.02.27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