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텍스트힙 열풍과 함께, 지난해 서울국제도서전의 기대 이상의 성과,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이 연달아 이어지며 ‘문과라서 죄송하지 않아도 된다’라는 말이 유행어로 떠올랐을 때였다. 글을 업으로 하는 직업을 가지며, 문장이 이루는 힘에 대해 이만큼 큰 시너지를 얻어본 적이 있었나 싶었다. 이런 유행이 오래가길 바라면서도, 한편으론 걱정도 되었다. ‘텍스트’가 주목받고 있지만, 너무나 빠른 유행 속에서 하루에도 새로운 단어들이 탄생과 소실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기자는 ‘느좋’이라는 단어가 등장했을 때, ‘킹받는다’가 등장했을 때만큼의 충격을 느꼈다. 오타인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느낌이 좋다’는 말의 줄임말이라고 한다. ‘럭키비키’, ‘추구미’까지는 신조어 학습이 된 상태였지만 ‘느좋’이라는 단어를 어느 순간에, 어디에 써야 할지 좀처럼 감이 잡히지 않았다. 순수 한글이나 외래어 표현도 아니다 보니 한눈에 이해가 안 가고, 무엇보다도 어감이 좋지 않았다. 또 이 단어가 내 동년배나 선배 세대, 부모 세대에게 의미가 전달이 될지(언어적 소통이 가능할지)도 의문이었다. 그와 반면, 1020의 젊은 세대의 경우 ‘느좋’의 이상한 어감이 오히려 재미있어서 이를 사용한다고 한다. 1020세대 사이에서는 가벼운 유머를 선호하고, 짧고 반복적으로 쓰기 좋은 어감, 어휘들을 주로 사용하고 인기를 얻는다. 그렇다면 어느 순간 유행을 선도하는 세대에 맞춰 ‘느좋’도 ‘킹받는다’처럼 일상적인 말로 쓰이게 될까?

전 대치동 국어 강사이자 일상 속 교양, 지식 등을 알려주는 유튜버 ‘밍찌채널’에서는 평소 흔히 쓰는 단어, 유행어를 ‘어른스러운 어휘’로 대체하는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일례로 가볍게 호감을 표시하는 ‘플러팅’이라는 단어의 경우 ‘수작을 부리다’ ‘너를 꾀다’ ‘추파를 던지다’ ‘구애 행동’ 등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알려주는 식이다.
최근 밍찌채널에선 ‘느좋’을 어른스럽게 표현하는 방법이라는 콘텐츠를 소개했다. 밍찌는 ‘감도되다’ ‘홀리다’ ‘곱다’ 등의 단어들이 있고, ‘운치 있다, 풍류 있다’를 요즘 유행어 어감처럼 줄인 단어 ‘운있풍있’을 제안했다. 이 영상이 한차례 인스타그램 릴스와, 유튜브 쇼츠에서 화제가 되었는데, 실제로 최근 개인이나 일부 유통 브랜드, 카페 등의 공식 SNS 채널 콘텐츠에서도 ‘운있풍있’ 등을 사용하는 경우를 발견할 수 있다.
말과 어휘는 타인이 나를 평가하는 수단 중 하나이다. 자신의 평소 언어 습관을 점검하고, 내 말의 코어(핵심적인 힘)가 되는 문장력을 키우는 습관이 ‘나를 지키는 하나의 방법’이 되고 있다. 떠올려보자. 신뢰가 가는 경연자, 저널리스트, 유튜버들의 경우 어휘력과 문장력을 테크닉으로 지닌 경우가 많다. 반면 어휘력이 낮다면 문장에서 같은 단어와 표현을 반복하고, 미사어구 등이 많기 때문에 표현이 다소 미숙하다는 인상을 주기 쉽다. 도서 『품격을 높이는 말의 기술』(북스힐)에서도 신뢰와 호감을 얻는 커뮤니케이션 비결로 ‘어휘력 향상’을 꼽는다. 그리고 이를 기르기 위해서는 독서를 하고, 신문이나 책을 읽을 때 사전을 찾으며, 수시로 메모를 하라고 권한다.

텍스트힙 열풍이 불며 올해초부터 문장력 향상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예스24에 따르면 2025년 1월 1일 기준, 종이책 베스트셀러 순위에는 어른들을 위한 어휘력 찾기 필독서 『하루 한 장 나의 어휘력을 위한 필사 노트』(유선경 저 / 위즈덤하우스 펴냄)가 4위를 기록했다. 교보문고 종이책 베스트셀러 순위(2025년 2월 12일 기사 작성일 기준)에도 문해력 습관을 기르는 방법으로 화제가 된 이주윤 작가의 『더 나은 어휘를 쓰고 싶은 당신을 위한 필사책』(이주윤 저 / 빅피시 펴냄)이 7위를 기록했다.
도서 『더 나은 어휘를 쓰고 싶은 당신을 위한 필사책』의 경우 대한민국이 사랑하는 작가 김애란, 양귀자, 클레어 키건부터 시대를 초월하여 사랑받는 박완서, 박경리, 알랭 드 보통, 헤르만 헤세까지 글쓰기 대가들이 남긴 작품과, 문장들을 직접 필사하는 책이다. 이를 통해 어휘력, 문해력을 기르고 나아가 자신의 감정, 의도하는 메시지를 표현할 수 있도록 단어를 확장시키는 단계를 거치게 된다.
글과 순수 문학이 재도약하는 요즘, 한번쯤 우리가 평소 쓰는 어휘에 대한 자가적인 점검, 그리고 순환하는 과정을 거쳐보는 것은 어떨까. 그를 통해 우리는 디지털 콘텐츠로 점철된 ‘썩은 뇌’(Brain Rot, 영국 옥스퍼드대 출판부가 선정한 2024년 올해의 단어)의 진정한 해독 효과를 효과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글 시티라이프부 이승연 기자 lee.seungyeon@mk.co.kr]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 참고 도서『품격을 높이는 말의 기술』(후지요시 유타카·오가와 마리코 저 / 북스힐 펴냄)]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68호(25.2.2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