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 우리나라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내부 분열과 외부로부터의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국내외로부터의 도전 과제는 현재 반도체 산업에서 경험하고 있듯이 풀어가기가 매우 어렵다. 미래 산업 환경은 급변하고 매우 불안한 실정으로, 메모리 분야 세계 1위의 반도체 산업도 이제까지 축적했던 자산들을 한 번에 날려버릴 수도 있는 위기에 처해 있다.
한국 반도체 산업의 성공은 다음의 3박자가 절묘하게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첫째는 올바른 전략 방향이다. 대기업의 축적된 자본을 바탕으로 적시에 제품 개발과 시장 진입을 시도했다. 둘째는 과감하게 도전하는 기업가 정신과 한마음으로 단결하는 조직문화가 만들어낸 강력한 실행력이다. 셋째는 국가전략산업으로 선정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한 정부의 지원 정책이다. 정부 자체가 반도체 산업의 특성과 중요성을 잘 이해했고, 다양한 정책들을 동원해서 반도체 산업을 육성·지원했다.
그러나 최근 세계 반도체 시장이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변함에 따라 한국 반도체의 위상이 흔들릴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특히 우리와 경쟁하는 미국과 대만의 반도체 기업들이 빠른 속도로 사업 영역을 넓히며 기술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반도체 산업의 패러다임이 AI(인공지능) 중심으로 전환하고 있고, 이러한 전략적 변화를 인지한 반도체 강국들이 단순 지원을 넘어 이해 당사자로 변신하여 적극적인 육성 정책을 수립 집행하고 있다. 자칫 한국 반도체의 위상이 한꺼번에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매우 크다.
국가 간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우리 반도체 산업은 ‘기술 주도력’을 유지하면서 위기 돌파구를 마련해야 하는 쉽지 않은 상황에 놓여 있다. 이러한 쉽지 않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성공을 만들어낸 3요소(전략적 방향, 실행력, 정부의 정책지원) 중심으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첫째, 전략적 방향에 있어 메모리 반도체의 시장 지배력을 유지해야 한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전체 반도체 시장의 1/3이나 되는 만큼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굳건하게 지켜야 한다. 이와 함께 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첨단 공정 능력을 활용해 파운드리 산업을 강화하고, 팹리스 설계기업들을 집중적으로 육성·지원하여 시스템 반도체 산업을 성장시켜야 한다.
둘째, 실행력을 확보해야 한다. 특히 탁월한 경영자의 역할과 구성원들 간 단결력이 중요하다. 혁신은 최고 경영자로부터 시작해서 각 분야로 확대되어야 한다. 그리고 내부 인력 간 소통과 단결은 과거에 그랬듯이 미래에도 반도체 산업의 승자를 결정할 것이다.
셋째, 반도체 산업은 한 기업의 이해를 넘어 국가의 경제와 안보를 좌우하는 국가적 핵심 요소가 되었다. 각국 정부들은 자국의 반도체 생산 시설을 강화하고 반도체 제품의 자급을 추구하는 데 국가적 역량을 쏟아붓고 있다. 정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기술 인력 확보와 반도체 산업의 육성 필요성을 공감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다.
넷째, 위 3요소와 함께 강조해야 할 것은 대외 전략이다. 지금 선진 각국은 국가 차원의 육성과 국제적 블록화에 나서고 있다. 특히 자국 반도체 산업의 육성을 위한 미국과 중국 간의 경쟁이 격화됨에 따라, 반도체 강국인 한국은 대단히 미묘하고 불안한 입장에 처해 있다. 기술 우위를 통한 선두 유지 전략을 근간으로, 격류를 가르며 항해하듯 적극적인 자세로 전략적 협력 체제를 주도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고 있는 AI는 향후 반도체 산업의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다. AI의 부상으로 반도체 시장은 시스템 반도체가 주를 이루는 시장으로 변해가고 있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시장이 단순한 시스템 반도체가 아니라 메모리 기능과 기술이 내재화된 메모리성 시스템 반도체 시장으로 변해간다는 점이다. 한국 반도체는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성공할 수 없다는 비관적인 시각을 깰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AI가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이제 한국 반도체 산업에서 메모리 반도체 수성과 시스템 반도체 육성은 선택 사항이 아닌 필수 사항이다. 위기를 회피하기보다는 이를 기회로 반전시키는 혁신을 통해 종합 반도체 강국으로 도약해야 한다.
[최수(글로텍 회장, ‘K-반도체’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