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에 대한 으름장이
오히려 더 잘 먹혀
의존과 충성은 약점
'메뚜기와 닭의 싸움'
프레임에 빠져선 안 돼
오히려 더 잘 먹혀
의존과 충성은 약점
'메뚜기와 닭의 싸움'
프레임에 빠져선 안 돼

어떤 철학자가 말했다. 닭과 다투는 메뚜기는 언제나 틀렸다. 힘이 곧 정의인 싸움이니까.
도널드 트럼프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에게 말했다. 당신에게는 카드가 없어. 전쟁이 버거운 지도자에게 뼈아픈 말이었다. 블라디미르 푸틴이 약속을 깨고 땅을 빼앗으려 하면 어쩔 건가. 광물을 캐러 우크라이나에 온 미국인들을 지나쳐 얼마든지 진격할 수 있지 않은가. 그 전에 왜 침략자의 편을 들며 희생자를 몰아세우는가. 젤렌스키는 그렇게 따지고 싶었으리라. 하지만 카드가 없었다.
백악관의 트럼프는 언제나 카드 게임을 한다. 상대는 미국의 적이거나 동맹이다. 여기서 하나의 역설을 볼 수 있다. 으름장은 늘 동맹에 더 잘 먹힌다는 것이다. 상대가 동맹에 목을 맬수록 지렛대효과는 극대화된다. 사실 미국은 늘 이 지렛대를 썼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이집트의 수에즈운하 국유화를 응징하려던 영국 총리에게 "당장 사이드항에서 나가지 않으면 파운드화가 제로로 떨어지게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트럼프의 지렛대는 훨씬 거칠다. 그는 그린란드를 팔라고 덴마크를 압박한다. 매출이 이 나라 국내총생산(GDP)의 10%에 이르는 제약사 노보노르디스크는 미국 시장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이런 의존성은 트럼프식 게임에서 가장 큰 약점이 된다. 동맹의 중요성이나 대미 의존성을 따진다면 우리보다 취약한 나라가 몇이나 될까.
한국을 보는 그의 눈은 단순하다. 2017년 평택 미군기지에 갔다가 서울로 돌아오던 트럼프는 헬기에서 삼성 사옥을 내려다보고 말했다. "이 나라는 부자야. 저 높은 빌딩들을 보라고. 저 고속도로를 봐. 기차를 봐. 우리가 이 모든 걸 지불했지. 그들이 모든 것에 돈을 내야 해." 두 번째 임기 내내 이 말은 무한 반복될 것이다. 그는 미국에 의존한 번영의 대가를 요구한다. 얼마나 어떻게 내야 할지도 그가 정하려 든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은 세계의 경찰이었다. 가장 큰 시장도 제공했다. 그 대신 패권을 인정받았다. 미국이 달러 패권 덕분에 절약하는 이자만 한 해 1000억달러에 이른다. 해외에 16조달러를 투자한 미국 기업들은 최대의 자유를 누린다. 각국은 지구촌 곳곳에 진주알처럼 꿰여 있는 미군기지의 유지 비용도 분담한다. 트럼프는 느닷없이 그 셈법을 바꾸려 한다. 그가 보기에는 모두가 미국을 벗겨 먹는 무임승차자일 뿐이다. 동맹을 믿고 충실히 따르며 오랫동안 투자한 나라일수록 그의 위협에 더 화들짝 놀라 움직인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몇 가지 원칙은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첫째, 절대 메뚜기와 닭의 싸움이라는 프레임에 말려들어서는 안 된다. 그가 한국의 조선과 반도체에 군침을 흘린다는 건 그만큼 좋은 카드들이 우리에게 있다는 뜻이다. 오랜 동맹은 윈윈 게임이다. 당연한 말을 알아듣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눈높이는 트럼프에게 맞추더라도 한없이 가벼운 말과 행동을 따라 해서는 안 된다. 피로 얼룩진 가자지구를 보면서 부동산 개발을 생각하고, 북한 핵을 말하다 아름다운 해변에 눈길을 먼저 주는 그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든다는 건 단순히 위(胃)의 크기를 말하는 것은 아닐 터다. 한국이 더 높은 차원에서 미국 안보와 경제의 이익에 기여할 수 있음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셋째, 국내 정치 셈법에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 미국을 대하는 복잡미묘한 정서나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기보다 냉철한 숙고를 통한 실용주의를 추구해야 할 시점이다. 국내 정치가 위기일수록 대미 협상은 대승적이어야 한다. 가뜩이나 위기를 맞은 우리에게 트럼프는 어쩌면 가장 냉혹한 시험대가 될 수도 있다.
[장경덕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