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수경제는 살아날 기미가 없고, 주식시장은 붕괴하며, 환율마저 추락하자 한국경제에 대한 국민의 불안이 치솟고 있다. 이러다, IMF 시대가 다시 오는 것은 아닌가 하는 공포심도 생겨나고 있다. 한국경제,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한국경제의 이상 현상은 자유무역이 보호무역 기조로 바뀌면서 세계교역이 위축되고 있는 것과 연관이 크다.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에 매우 불리한 환경이다. 한국경제를 지탱하고 있던 기둥 산업이 경쟁력을 잃고 있는 것도 이유다. 중국기업의 약진 때문이다. 인구감소도 한국경제를 불안하게 한다. 설상가상으로 정치 불안이 지속되고 있어 한국의 미래전망을 더욱 암울하게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한국기업들이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음은 천만다행이다. 지금 세계는 환경보호, 자주국방의 강화, 인공지능과 전기차의 보급 등 대변혁 시대를 맞고 있다. 한국은 이런 환경에서 생존할 수 있는 첨단산업을 확보했고, 경쟁력도 글로벌 최고 수준이다. 첨단조선, 이차전지, 국방기술, 첨단 메모리반도체, 로봇, 소형모듈원전(SMR), OLED 디스플레이, 바이오산업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과거 40~50년 동안 한국은 철강, 저부가 선박제조, 석유화학, 석유제품, LCD, 중저가 반도체 등을 핵심산업 삼아 살아왔다. 이들이 중국기업으로부터 무차별 공격을 받고 있다. 한국경제가 요동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다. 그렇다고 한국기업이 손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차세대 산업을 태동시키고 있었다. 앞서 열거된 첨단산업이다.
이들은 기존 산업과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제품수명주기 상 도입기나 성장기에 속하는 고부가가치 산업이다. 기존 주력 산업들은 포화기나 쇠퇴기 직전의 저부가가치 산업이었다. 이들이 첨단산업으로 대체되고 있는 중이다. 다만, 일부 산업에서 도입기 특징인 케즘(일시적 수요정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차전지가 예다. 다행인 것은 한국의 이차전지 기술은 중국과 달리 고부가가치용이고 향후 가장 커질 미국 전기자동차 시장에서의 지위도 매우 높다.
또 다른 특징은 이들 첨단산업을 모두 가지고 있는 나라가 흔치 않다는 점이다. 기술 강국인 독일과 일본도 이들을 다 가지고 있지 못하다. 한국을 빼고는 중국이 유일하다. 하지만, 한국에는 보호막이 있다. 이들 산업에서 미국이 중국에 대해 강력한 제재를 하면서 한국과의 협력을 키우고 있다. 인공지능(AI)용 고대역폭메모리(HBM) 반도체와 이차전지에서는 미국기업들과의 동반관계가 깊어지고 있다. 미 해군함 유지보수(MRO) 사업에서도 협력이 시작되었고, 해군함 건조로 확대될 수 있다. SMR과 국방산업 그리고 바이오나 로봇산업에서도 미국은 부족한 제조역량을 보충하기 위해 한국과 협력할 가능성이 크다.
첨단산업 이외의 다른 곳에서도 빛이 보인다. 양대 시장인 중국과 미국에서의 어려움을 보완해줄 수 있는 시장이 열리고 있다. 베트남과 인도가 대표적이다. 동유럽과 중동은 한국의 주력 국방시장으로 크고 있다. 해외투자에만 몰두했던 한국기업들이 대규모 신규투자를 국내에 하고 있음도 긍정적이다. 바이오, 이차전지, 첨단 반도체에서 두드러지고 있다. 로봇화와 외국인 거주의 증가로 인구감소 충격이 완화될 가능성도 보인다. 한국기업은 산업용 로봇화에서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진척을 보이고 있고, 외국인 거주가 늘면서 실질 국내 거주 인구는 줄지 않고 있다. 이들을 통해 부족해질 일손을 보충받을 수 있다. 또, 한국은 과거와 달리 대외 부채보다 순 자산이 현격히 많은 국가가 되었다. IMF 시대를 다시 겪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럼에도, 한국의 정치 후진성은 염려된다. 국가별 번영지수를 산출하는 영국의 레가튬(Legatum)에 따르면, 한국의 경찰(124위), 정치인(138위), 금융 시스템(121위), 사법시스템(146위), 정부(146위), 군(146위)에 대한 국민신뢰는 평가대상 167개국 중(2023년 기준) 바닥 수준이다. 이들은 모두 정치와 관련된 것으로, 정치 후진성이 한국경제의 번영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임을 암시하고 있다.
요약해 보자. 한국경제는 털갈이 중이다. 기능을 다한 털은 빠지고 새털이 돋아나는 중이다. 털갈이를 하는 동물의 모습은 흉하다. 한국경제도 마찬가지다. 비록 지금은 모양이 흉하지만 털갈이가 끝나면 전혀 새로운 모습을 보일 것이다. 다만, 털갈이가 빠르게 진행되도록 정치가 도와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함이 안타깝다.
[이홍(광운대학교 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