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례없는 강력한 대출 규제에 따른 주택시장 침체와 전반적인 경기 침체로 건설 외에 특별한 일자리가 없는 수도권 외곽과 지방 도시의 중소상권이 무너지고 있고, 수십 개의 지방 중견 건설업체에 이어 수도권 대형 건설사까지 부도에 이르고 있다.
이런 상태가 올해 말까지 계속되면, 미분양과 중도금 대출이 막혀 공사대금을 받지 못해도 책임준공 때문에 공사를 계속해 나가야 하는 10대 대형 건설사까지도 미수금이 쌓여 하도급 공사비로 지급한 어음을 막지 못해 부도로 갈 가능성이 크고, 관련 금융사까지 위험해질 수 있는 심각한 상황이다.
집값은 경기와 금리, 주택 수급과 정부 정책 및 시장 심리에 영향을 받는다. 재작년 하반기부터 경기 회복과 금리 하락으로 주택시장이 회복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다가, 작년 상반기 중 시장금리가 하락하고 주택 공급이 급감하자 수도권 집값이 급등세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이에 정부는 부랴부랴 8·8 주택시장 안정 대책을 발표했지만, 당장 공급 확대 효과가 나타나지 않아 집값은 잡히지 않았다.
그러자 8월 말부터 금융감독원이 전방위적 주택담보대출 규제에 나섰고, 연이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시행으로 주담대 금리가 차등 인상되고 대출 한도가 축소되자 집값은 하락세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금융 안정을 위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책과 집값을 잡기 위한 더듬기식의 대출 규제가 동시에 시행되고 탄핵 정국까지 겹치면서 빠른 시장 침체로 인한 공급 감소로 집값 상승 에너지가 비축되고 있으며, 관련 금융기관까지 위험해지는 역설적인 상황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행과 금융당국은 가계대출의 심각성을 명분으로 내세우며 주담대 조이기에 동참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우리나라 가계대출 구조를 자세히 살펴보면 건전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 15년간 가계대출 중 주담대는 두 배가량 빠르게 늘었지만, 담보가 없는 신용대출은 증가세를 멈추고 점차 감소하고 있다. 우리나라 주담대의 담보 가치 대비 대출액 비율은 주요 선진국 평균인 70%에 크게 못 미치는 평균 40% 이하로 매우 안정적이다. 이는 집값이 절반으로 떨어져도 금융기관의 대출채권 회수에 큰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주담대 총액이 늘고 있는 것은 가구 수와 주택 수 증가, 자가 보유율 상승, 그리고 담보대출을 통한 내 집 마련 비율이 상승하기 때문인데, 이는 주택시장이 선진화되는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처럼 안정적인 주담대를 가계부채의 원흉으로 몰아가면서 집값을 잡기 위한 심산으로 주담대만 금리를 올리고, 인기가 높은 저리의 디딤돌대출과 주택금융공사의 장기고정금리 대출을 중단함과 동시에 금리가 1.5% 이상 높은 시중은행의 고정금리대출만 허용하는 등으로 작년 한 해 시중은행들은 40조원 이상 역대 최대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이는 결국 무주택 서민의 주머니를 털어 자기 식구들 배만 불려준 꼴이 됐다.
금융당국은 집값을 잡는다며 기준금리를 올리다 버블 붕괴를 촉발시켜 일본을 '잃어버린 30년'이라는 나락으로 빠지게 한 미에노 야스시 전 일본중앙은행 총재의 뼈아픈 실패 사례를 되새겨보고, 무리한 집값 잡기가 이닌 금융 논리에 맞게 금융 정책을 펴나가야 할 것이다.
[서종대 주택산업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