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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외칼럼

[매경춘추] 전세사기 단상

입력 : 
2025-01-19 17:10:11
수정 : 
2025-01-19 17:10:25

뉴스 요약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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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세제도가 전세사기 문제로 존폐 논란에 직면해 있으며, 이는 과거 소득 상승과 주택 구매의 어려움에서 비롯된 제도적 특성 때문이다.

최근 정부의 전세금 미반환 건에 대한 대응이 과도하다는 비판이 일며, 이러한 조치가 임대사업과 주택 공급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주택 정책은 복잡한 요소를 조율해야 하는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비전문가들이 접근하며 시장을 왜곡하는 경향이 우려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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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0여 년 동안 한국 주택 임대차 시장의 주류를 이뤄왔던 전세제도가 전세사기 문제로 또다시 존폐 논란에 처해 있다. 남미 볼리비아나 인도 일부 지역에서 제한적으로 운용돼왔던 전세가 유독 한국에서만 보편적인 제도로 자리 잡은 것은 고려 시대부터 시작된 부동산 전당제도가 한말 개화기에 가옥전당으로 발전돼오다가 1960년대 이후 소득 상승과 대도시 인구 집중으로 내 집 마련 수요가 급증했지만 외환위기 이전까지는 서민들이 시중은행에서 돈을 빌려 집을 사기가 불가능했던 게 가장 큰 원인으로 보인다. 또한 과거 서민들의 재산 형성 수단이던 '계'가 동네를 벗어난 생활권 확장으로 사고가 잦아지면서 안전한 내 집 마련 사다리로도 활용이 가능한 전세로 자연스럽게 이동되었던 게 원인으로 작용했다.

필자 세대 대부분은 결혼 후 월세나 전세로 시작해서 돈이 모이면 가까스로 내 집을 장만하고 평수를 늘려가면서 보람과 행복을 느끼며 살았다. 내 집 마련 전에 전세는 필수 코스였으며, 자금 원본이 없어지는 월세보다는 내 집 마련 징검다리가 돼주는 전세를 당연하게 여겼다. 다른 한편으로 아파트 기준으로 전세금은 집값의 60% 내외에 불과해서 내 집이나 월세 대비 실질 주거비용이 60~80%에 불과하고, 집주인 입장에서는 부족한 구입 자금을 융통하고 집값 상승 차익으로 수익성을 맞출 수 있었던 부분도 작용했으리라 생각된다.

요즘처럼 집값이 폭락해서 전세금에도 못 미쳐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깡통전세' 현상은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직후에도 있었는데, 이때는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집주인과 세입자가 조금씩 양보하고 집값이 회복되면서 대부분 자연스럽게 해결됐다. 물론 과거에도 집 한 채를 사거나 빌려서 수십 명에게 전세금을 받고 도주한 사기 사례가 종종 있었고, 이번 건축왕이나 빌라왕 사례처럼 중개업자나 감정평가사와 짜고 집값을 부풀려 세입자가 피해를 본 경우도 없지 않다. 이런 경우는 사기가 분명하고 응분의 처벌을 받는 게 마땅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부 고위당국자가 집값이 떨어져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경우를 모두 '사기'라고 규정하면서 문제가 커졌다. 전세금 미반환 3건 이상 해당자들은 사기 의도가 없더라도 모두 형사고발하고,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을 담보 가치 심사도 없이 무조건 100% 보증해주면서 보증기관도 지급 불능 상태로 가고 있으며, 매수세가 사라져 비아파트 공급이 급감하는 등 여러 가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차제에 전세제도를 아예 없애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주택 정책은 비전문가가 알기 어려운 건설과 공급 제도뿐만 아니라 복잡한 세제와 금융, 거시경제와 시장 심리 등을 종합적으로 조율해야 하는 매우 어려운 분야다. 그런데도 일부 정치인들은 지역구 일을 잘 챙길 수 있다거나 정치에 도움이 되는 사람을 많이 만날 수 있다는 등의 이유로 주택 정책을 관장하는 자리에 가고 싶어한다. 그러다 보니 투기꾼만 잡으면 집값이 잡힌다는 비시장적인 판단을 밀어붙이다가 정권을 내주기도 했고,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하면 무조건 사기라고 몰아서 임대사업과 주택 공급을 위축시켜 무주택 서민을 더욱 어렵게 하는 경우도 생겼다. 앞으로 충분한 준비나 전문지식 없이 사심이나 공명심으로 주택 정책을 펼치고자 하는 분들은 피해 볼 국민들을 생각하며 자제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서종대 주택산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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