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정규직 노동자는 800만명이 넘는다. 로봇 이용 비율도 여타 선진국에 비해 월등히 높다. 그러면서도 평균 근속 기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상당히 짧은 편이다. 기업은 기회만 있으면 희망퇴직 등으로 노동자를 정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 해고가 어렵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최저임금도 생산성을 반영하지 않고 높게 책정했다. 생산성은 낮지만 여전히 필요한 자영업 등은 강제 퇴출될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특별한 기술이 없는 단순 노동자의 취업 기회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 이들을 채용하기에는 최저임금 수준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특히 연로하신 분은 더욱 그렇다. 해고를 어렵게 하고 최저임금을 높게 책정하는 것은 기득권 노동자에게만 유리하다.
애쓰모글루 교수 등이 말한 동등한 기회 부여와 공정한 성과 배분이 이루어지는 포용적 제도로 가기 위해서는 약자 보호는 경제정책·제도가 아니라 사회안전망으로 하고 시장경제 원칙은 복원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네 가지 정책 패키지가 필요하다.
첫째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 의미 있는 사회안전망을 만들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만 유달리 세금을 더 많이 걷자는 게 아니다. 그저 선진국 수준으로 세금을 걷으면 된다. OECD 국가들의 평균 부가가치세율은 19%다. 우리도 그 정도로 부가세율을 올리면 된다. 만약 10년 전에 높였더라면 연간 세금 약 100조원을 더 걷었을 것이고 10년 동안 1000조원을 약자 지원에 쓸 수 있었을 것이다. 10년 후에 또 다른 1000조원을 후회하지 않으려면 지금 부가세율을 올려야 한다.
둘째는 복지제도를 전면 재설계해서 사회안전망을 제대로 구축해야 한다. 재난지원금 등으로 낭비하면 절대 안 된다. 약자를 체계적이면서도 지속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제도를 갖춰야 한다. 국민연금 하나만 보면 개혁 방안이 마땅치 않다.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 목표는 실현 가능한 수준으로 낮추는 대신 기초연금은 약자 지원 기능이 매우 강한 제도, 예컨대 저소득층에는 보조금을 지급하고 고소득층에는 정상적인 세금을 부과하는 부의 소득세제로 대체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수 있다. 보험료와 그 수익만으로는 달성하기 어려운 소득대체율 목표는 사회적으로 합의하기 어렵다. 누군가가 그 차이를 뚜렷한 이유도 없이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셋째,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 등 시장경제 원칙이 복원되어야 한다. 경제 활동에서 미국 정도의 자유화 조치를 취해야 한다. 역동성 측면에서 미국을 따라갈 나라가 없다.
마지막으로는 상속세율을 대폭 낮추면서 가족 이익 중심의 기업 지배구조를 정상화해야 한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이 네 가지를 패키지로 추진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경제는 다시 날아갈 수 있다. 다른 방법은 없다. 선진국이 다 해온 방식이다.
[변양호 전 금융정보분석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