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무론'(열린책들 펴냄)에서 로마 철학자 키케로는 말한다. 키케로는 로마 공화정 말기에 카이사르의 독재 정치에 저항하고 삼두정치에 반대하다 군인들 손에 살해당했다. 그의 삶은 처참한 비극으로 끝났으나, 공화주의를 옹호하고 시민적 삶의 의무를 강조한 그의 사상은 르네상스 이후 현대 민주주의 정치 체계에 반영되어 영원히 살아남았다.
이 책은 키케로가 아테네에 유학 중이던 아들 마르쿠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개인을 억압하는 독재정을 타도하고, 소수 이익을 우선시하는 과두정을 저지하며, 민주정을 빌미로 일어나는 무질서와 분열을 극복하려면 자유 시민들이 어떤 의무를 져야 하는가를 묻는다. 공화를 생각하면서 사는 것이다. 공화(res publica)는 '공공의 것'이란 뜻이다. 공화정은 공동체에 속한 모든 시민이 마음껏 자유를 누리면서도, 국가의 공적 이성이 훼손되지 않는 정치체제다. 시민들이 각자 자기 자유를 추구하면서 공공선, 즉 공동체 전체의 '명예로운 평온'을 먼저 고려할 때 공화는 존재할 수 있다.
공인은 국가적 품위를 유지하고 법률을 수호하며 정의를 세우는 일에 앞장서고, 개인은 동료 시민과 동등하고 공정한 권리를 누리면서 굴종하지도 멸시받지도 군림하지도 않을 때, 민주와 공화가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이러한 공동체가 가능해지려면, 인간은 자기 이익에만 목매는 대신 최고선과 덕을 실현할 의무를 지고 살아야 한다. "의무를 다하는 데 인생의 모든 훌륭함이 있다."
키케로는 그 훌륭함을 네 가지로 집약한다. 진리를 성찰하고 꿰뚫어 보는 지혜, 공동체 유지를 생각하고 각자 몫을 각자에게 바르게 분배하는 정의, 공정하고 정당한 명령에만 복종하려는 용기와 강인함, 질서와 조화에 비추어 말과 행동의 적절함을 지키는 절제이다. 훌륭함을 공동체 속에서 실천하고 실현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올바른 인간이 될 수 있다.
공화국은 각자 훌륭함을 추구하는 다양성 속에서도 공동체 결속을 지켜가는 나라다. 자유의 추구가 분열과 대립으로 귀결되지 않고, 소수의 이기와 독단으로 치닫지 않으며, 명예로운 평온을 염두에 두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공동선을 이룩하는 우애의 공동체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헌법은 민주와 공화를 함께 실현하라고 우리에게 말한다. 광복절에 생각한다. 정쟁을 넘어서 선량한 시민들이 명예로운 평온을 이루는 공화의 이념은 어디로 갔는가.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