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도에서 궤도 간 간격을 궤간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를 포함해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 표준 궤간은 1435㎜다. 표준궤를 중심으로 이보다 넓으면 광궤, 좁으면 협궤라 부른다. 표준궤는 마차 궤간에서 유래했다는 추측이 일반적이다. 마차 기술자들이 마차 설비를 그대로 가져다 기차의 축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마차 폭은 어떻게 정해졌을까. 시간은 고대 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마제국은 말 두 마리의 엉덩이 폭을 기준에 두고 모든 길을 만들었다. 주력 부대의 전차를 이끄는 두 말이 서로 부딪치지 않고 편하게 달릴 수 있는 엉덩이 폭이 바로 4피트8.5인치, 즉 1435㎜였던 것이다. 오늘날 서울 지하철이 달리는 선로가 2000년 전 말 두 마리의 엉덩이 폭에 맞춰 정해졌다니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의 의미를 곱씹어보게 한다.
세계 철도의 약 60%가 표준궤를 채택하고 있지만, 국가마다 사용하는 선로의 표준이 협궤와 광궤로 분화한 배경에는 정치·전술적 이슈가 크게 작용했다. 한때 수원~인천을 잇던 수인선 협궤열차는 군사적 목적으로 존재했다. 일제강점기였던 1937년 운행을 시작한 수인선은 표준궤의 절반 수준이었다. 열차는 소래포구의 소금을 싣고 인천항으로 달렸고, 소금은 일본으로 넘어가 전쟁물자가 됐다. 러시아는 광궤가 놓인 대표적 나라다. 러시아는 프랑스군이 재침공하면 기차로 전쟁물자를 나를 것이라 판단하고, 표준궤를 쓰는 프랑스 기차가 러시아에서 다니지 못하도록 궤간을 달리했다고 전해진다. 궤간이 다르면 기차를 옮겨 타야 해 물건을 하나하나 싣고 내리기에 시간이 오래 걸렸던 까닭이다.
환승을 생존 방책으로 삼았던 러시아의 상황은 서울의 현실과 닮아 있다. 서울 지하철은 확장을 거듭하며 수도권 전역으로 뻗어가고 있지만, 연장 노선에 대한 유지관리 비용의 증가는 가뜩이나 심각한 재정난에 기름을 부었다. 건설비는 노선이 지나는 지자체가 분담하지만, 나머지 운영비 등을 떠안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에 서울시는 신설되는 서울 시계 외 노선에 평면환승 적용 원칙을 발표하게 된다. 평면환승은 계단을 오르내릴 필요 없이 같은 승강장에서 환승할 수 있어 불편을 덜 수 있고, 차량 고장 시 전 노선의 정체를 피할 수 있는 등 이점이 많아 독일 등 다수 국가가 도입하고 있는 제도다. 무엇보다 운영기관의 재정 부담을 줄여 장기적으로 높은 효용을 얻을 수 있다. 말 엉덩이가 지하철 선로의 기준이 됐듯, 평면환승이 훗날 국제 표준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역사는 반복되니까.
[백호 서울교통공사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