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에만 치중된 中企 정책
생산성 추락·좀비기업 양산
성장으로 패러다임 전환을
'쓴약' 처방할 대통령 없나
생산성 추락·좀비기업 양산
성장으로 패러다임 전환을
'쓴약' 처방할 대통령 없나

지난 12~16일은 '제37회 중소기업 주간'이었다. 용산 대통령실 잔디마당에서 대통령과 재벌 총수들까지 참석한 가운데 열렸던 지난 3년간 행사와 비교하면 시국이 시국인지라 활기찬 모습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메인 행사인 '차기 정부 중소기업 정책방향 대토론회'에는 원내 1·2당의 정책위원회 의장이 참가했지만 형식적인 발언만 오갔을 뿐이다.
한국 경제의 근간인 중소기업이 위기에 처해 있다. 정부의 지속적인 지원에도 불구하고 생산성과 경쟁력이 계속 내리막길이다. 지난해에만 25조원이라는 막대한 정책자금을 쏟아붓고도 중소기업 생산성은 대기업의 30~40%에 그치고 있다. 핀란드(73.6%), 영국(57.5%), 일본(56.5%) 등 선진국과 비교할 때 심각한 수준이다.
현 중소기업 정책이 보호에만 치중돼 오히려 자생력을 약화시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창업·금융·판로·수출을 비롯한 전 영역에 걸쳐 1600개 넘는 지원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지만 '상황이 안 좋은 기업에 돈을 더 주자'는 온정주의 정책 탓에 좀비기업만 늘어나고 있다.
6월 3일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각 정당 후보들이 중소기업·소상공인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구조적인 문제 해결보다는 당장 표를 얻기 위한 퍼주기식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근본적인 경쟁력 강화와 산업구조 개선이 아니라 당장의 금융 지원과 세제 혜택을 통한 생명 연장에만 치중돼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400쪽이 넘는 보고서에서 성장률 추락을 막기 위해 교육·노동·기업·금융 등 전방위적인 구조개혁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한국 경제는 생산 요소의 비효율적 배분이 생산성 둔화를 야기하고 있으며, 각종 제도적 장벽을 통해 생산성을 초과하는 경제적 보상을 향유해온 기득권 구조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기득권이 바로 중소기업은 아닐까.
KDI는 혁신기업이 새로운 시장을 열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하고 규제를 개선해 경쟁을 더욱 촉진하며, 임금체계 개편과 노동시간 규제 완화로 생산성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소기업을 망하게 생겼으니 무작정 보호하고 지원하는 대상이 아니라 성장 잠재력을 가진 경제 주체라고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 보호에서 성장으로 중소기업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중소기업의 자생력과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모두 평등하게 지원하는 대신 성장 가능성이 높은 기업을 집중 지원하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규제 혁신과 노동 유연화를 통해 중소기업의 경영 환경을 개선하는 것도 중요하다. 중소기업계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 △주52시간제 △최저임금제를 경직된 경영 환경을 만드는 요인으로 지목한다. 차기 정부는 중소기업의 특성을 고려해 유연한 정책 운용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중소기업에 과도하게 특혜를 주는 것이 오히려 경쟁력 저하를 불러온다는 비판에 귀 기울여야 한다. 중소기업이 커져 중견기업이 되면 수백 개의 정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중견기업으로 성장하지 않고 중소기업에 멈추려 하는 '피터팬 증후군'이 만연해 있다. 이는 한국 경제의 성장 사다리에 큰 걸림돌이 된다.
중소기업계가 차기 정부에 요구하는 최우선 과제는 '경제성장 견인'이다. '중소기업이 불쌍하니 도와주자'는 접근법에서 벗어나 '중소기업이 한국 경제의 성장동력이 되도록 경쟁력을 키우자'는 관점에서 정책을 재설계해야 한다. 그것이 중소기업을 진정 위하는 길이고, 한국 경제 재도약을 이끌 수 있는 전략이다. 당장의 달콤한 사탕이 아닌 미래를 위해 쓴 약을 처방할 대통령이 필요하다.
[고재만 벤처중소기업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