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5월 고(故)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후 러시아를 2년 연속 찾았다. 전년도 9월 공식 방문한 마당에 임기 중 러시아에 또 갈 가능성은 희박했다. 하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그해 5월 9일 치러진 2차 세계대전 승전 60주년 기념식(전승절)에 남·북한 정상을 동시 초청했다. 우리는 모스크바에서 남북정상회담을 기대하고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러 소식을 기다렸지만 그는 끝내 오지 않았다.
김정일을 만나지 못한 노 전 대통령은 귀국 후 왜 러시아에 갔느냐는 비난에 시달렸다. 이들 간 만남은 2007년 10월, 노 전 대통령의 평양 방문으로 2년 반 뒤에야 실현됐다.
러시아인들은 1812년 프랑스 나폴레옹과의 전쟁을 '조국전쟁', 2차 대전 때 독소(獨蘇) 전쟁을 '대(大)조국전쟁'으로 부른다. 특히 대조국전쟁은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 봉쇄, 스탈린그라드 전투 등을 겪으며 러시아인 2700만명이 숨졌다. 소련은 엄청난 희생을 치러 독일군을 몰아냈고, 베를린까지 진격해 1945년 5월 9일 항복을 받아냈다. 유럽에 해방을 가져왔다는 자부심에서 러시아는 매년 성대한 기념식을 열어왔다.
올해는 80주년을 맞아 김정은 국무위원장 참석 여부가 최대 관심사다. 지난해 6월 평양에 간 푸틴을 비롯해 방북한 러시아 인사들마다 김정은 초청에 공을 들였다. 얼마 전 푸틴은 "각국 군부대가 열병식에서 러시아 군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행진할 것"이라고 했다. 쿠르스크 수복에 공을 세운 북한군이 휴전된 행사일에 맞춰 붉은광장에 나타날 수 있다. 러시아 단골손님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올 행사에 참석하기로 한 만큼 김정은만 가면 북·중·러 첫 정상 회동도 이뤄진다.
하지만 김정은 방러는 그의 부친 때처럼 안갯속이다. 기차를 주로 타는 김정은이 행사일에 맞추려면 지금쯤 러시아 땅에 가 있어야 하는데 아직 소식이 없다. 국정원도 북한 고위직의 대참 가능성을 점친다. 그럼에도 푸틴의 친목 행사로 변질된 전승절에 김정은 참석이 거론되는 것 자체가 높아진 북·러 관계 현주소를 보여준다.
[김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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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칼럼
[필동정담] 北 지도자와 러 전승절
- 입력 :
- 2025-05-05 17:05:45
- 수정 :
- 2025-05-05 20:4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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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은 러시아를 방문했으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지 못해 비난에 직면했다.
올해는 2차 세계대전 승전 8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참석 여부가 주목받고 있으며, 이는 북·러 관계의 현주소를 나타낸다.
또한, 푸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참석하는 이번 행사에서 김정은이 함께한다면 북·중·러 정상 회동이 이루어질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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