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참 잘한 결정이네. 고맙다.’
버스 승강장에 서 있을 때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매연 하나 없는 버스 꽁무니를 보면서다.
어린 시절 버스는 검은 잉크를 뿌리듯 매연을 뿜었었다. 코를 풀면 시커먼 검댕이 묻어났고, 와이셔츠는 반나절 만에 옷깃이 새까매졌다.
이젠 천연가스(CNG) 버스가 다닌다. 매연이 확 줄었다. 이 결정을 한 행정가가 고맙다.
CNG 버스로 바꾸지 않았다면 시민들은 호흡기 질환을 달고 살았을 것이다. ‘가스실’로 불리는 중국 베이징, 인도 뭄바이가 남의 얘기가 아닐 뻔했다.
회사 앞 남산둘레길을 가끔 걷는다. 원래 차도였는데 일부를 막아 인도로 바꿨다. 우레탄까지 깔아 걷기가 좋다. 시각 장애인들도 많이 걷는다. 청계천도 비슷한 느낌이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 시민들이 쏟아져나와 휴식을 한다. 여유로운 선진국의 풍경이다.
인근 주민이나 회사원에겐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인프라다. 그러나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안 된다. 쉽게 주어진 것이 절대 아니다.
예를 들어 CNG 버스 도입은 당시 파격이었다. 비현실적이란 비판이 많았다. 비용도 컸지만 시내에 충전소 설치가 물리적으로 어려웠다. 무엇보다 삶의 질, 공기에 대한 논의가 지금처럼 절박하지 않았다. 김대중정부 시절인 2000년 김명자 환경부 장관이 결정하고, 고건 서울시장이 적극 도입했다. 10년 뒤를 바라본 그들의 혜안이 고맙다.
청계천은 2003년 이명박 서울시장이 결단했다. 하천을 시멘트로 덮고 고가도로를 세운 어두침침한 구간이었다. 철물점주 등 상인의 반대, 교통 혼잡 우려에 심지어 폭발 우려까지 제기됐다. 실제 미군은 통행을 금지했다는 소문도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장이 강단 있게 밀어붙인 결과가 지금의 아름다운 청계천이다. 포퓰리스트였다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
남산 산책로도 마찬가지다. 2005년 서울시가 순환로 일부를 막아 시민들의 보행로로 돌려주겠다고 했을 때, 교통이 복잡한데 길까지 막냐는 비판이 거셌다. 그래도 결단했다. 혜택은 지금 시민들이 누리고 있다.
이처럼 어딘가엔 대중의 ‘단견’을 무릅쓰고 미래를 위한 결단이 있었다. 그래서 다음 세대는 상쾌한 공기, 남산, 청계천을 누릴 수 있게 됐다.
이 같은 결단의 근간은 뭘까. 공통점이 있다. 바로 ‘긍정적인 몽상’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추진할 때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축에 들던 때였다. ‘차도 몇 대 없는 나라에서 고속도로를 왜 만드냐’는 것이 정치권과 전문가들의 의견이었다. 박 전 대통령도 현실은 알았다. 다른 점은 딱 하나. 한국은 반드시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뤄낼 것이란 확신을 가진 것이다.
박정희의 그 확신이 다음 세대를 세계 10대 경제 대국에서 살게 만들었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었다. 오직 ‘긍정적인 몽상가’만이 그 시간을 확신했다.
작은 조직이라도 리더는 10년 뒤, 20년 뒤 목표나 꿈이 있어야 한다. 꿈과 지향점이 없이 하루하루 닥친 일만 하면 절대로 변화를 이뤄낼 수 없다. 최근 몇 년간 율사(律士) 출신 대통령들이 검사와 변호사처럼 편 갈라 과거에 잘했냐 못했냐로 싸웠다. 미래를 위해 결단하는 ‘국가지대계’는 논할 여유도 없었다.
누군가 결단하고 준비하지 않으면 ‘좋은 미래’는 오지 않는다.
긍정과 낙관의 태도로 미래를 바라보는 통찰력. 리더의 조건이다. 우리가 그런 사람을 선택하는 건 무엇보다 미래를 위한 일이다. 10년, 20년 후 우리와 우리 다음 세대가 그에게 고마워할 것이다.

[주간국장 kim.seonkeol@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08호 (2025.05.07~2025.05.1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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