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레이스 앞서 뛰는 李
포퓰리즘 대신 실용주의로
중도보수 의구심은 여전해
형용모순 스스로 경계해야
포퓰리즘 대신 실용주의로
중도보수 의구심은 여전해
형용모순 스스로 경계해야

집권 여당의 자멸로 치러지는 21대 대선의 풍경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는 '경우의 수'를 찾기가 어려워 보인다. 보수 진영은 남은 한 달 동안 대이변을 꾀하고 있지만 탄핵의 강을 건너기에는 물살이 빠르다.
국민의힘 경선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유승민 전 의원이 출마를 포기하며 초반부터 맥이 풀렸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출마론을 너무 일찍 띄우는 바람에 경선에 바람이 빠졌다. 봉숭아 학당 같은 토론회를 지켜보는 것은 고역에 가까웠다.
보수 진영 사람들조차 민주당으로 줄을 선다. 이재명 캠프는 책사를 자처하는 인물들로 불야성이다. 민주당 내부에선 벌써부터 55% 득표율을 기대하고 있다고 한다. 역대 최고 득표율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51.5%, 진보 진영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48.9%였다. 좋든 싫든 오늘의 시점에서 보면 이번 대선은 '이재명 대(對) 이재명'의 싸움처럼 보인다.
이 후보는 '형용모순'이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국민의힘을 향해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처럼 형용모순적 행동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형용모순을 뜻하는 영어 단어 옥시모론(oxymoron)의 어원은 '날카로운 어리석음'이다.
하지만 이 후보 행보에도 형용모순이 존재한다. 반도체 경쟁력을 외치며 노동시간 규정 예외는 외면했다. 재정 투입을 말하면서 증세는 거론하지 않는다. '기본 시리즈'에서 뼈대는 그대로 둔 채 간판을 바꿔 달고 있다.
민주당 A의원은 "이재명은 시장경제를 존중하는 리버럴한 사람"이라고 했다. B의원은 "여의도 문법과는 거리가 멀다. 효율을 중시하는 유능한 행정가"라고 평가했다. C의원은 "광을 파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했고, D의원은 "타고난 마키아벨리스트"라고 말했다. 네 사람의 이야기 속에도 형용모순이 숨어 있다.
이 후보는 수락 연설에서 정치의 사명은 국민통합이라고 했다. 이념과 사상, 진영에 얽매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공존과 소통의 가치를 복원하겠다고 다짐했다. 아름다운 말이지만 이미 공허한 수사를 경험했다. 전기 원가는 치솟는데 원전을 막아세우고, 부동산을 규제로 잡겠다며 집값만 올려놓은 어느 정부에서다.
부분이 참이라고 해도 전체가 참이 되는 게 아니다. 그것이 '구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다. 한 도시에서 통한 지역화폐가 전국에서 통할 수는 없는 것과 같다. 상법 개정과 노란봉투법도 각각은 유의미하지만 오남용 우려가 있다.
민주당은 국회 다수당에 오른 뒤 합법의 테두리 안에만 있다면 권력을 무제한 사용하는 힘의 정치를 했다. 더 큰 악이 있다고 작은 악이 선이 되지는 않는다. 그런 미시적 폭력을 지켜본 중도보수가 이 후보가 내세운 통합의 기치를 신뢰하지 못하는 것은 탓할 일이 아니다. 점퍼에 새겨진 기호 1번 모서리에 빨간색을 살짝 넣는다고 금세 돌아설까. 게다가 민주당이 집권하면 최소 3년간 행정부와 입법부를 완전히 장악한 거대 정권이 탄생하게 된다. 급격한 정책 전환이 있어도 견제할 장치가 없다.
로마 공화정의 퀸투스 키케로는 형 마르쿠스에게 "선거에서 이기려면 모두에게 모든 것을 약속하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지금 정치에는 '모든 것을 하겠다'는 말보다 '이것만은 하지 않겠다'는 용기가 필요하다. 실용주의를 말하려면 포퓰리즘과 결별하고, 통합을 말하려면 완장을 차려는 사람들부터 걸러내야 한다.
[신헌철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