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2015년 9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미중 정상회담차 방미했다. 중국이 여러 가지로 코너에 몰려 있던 때였다.
시 주석은 곧장 워싱턴DC로 향하지 않았다. 시애틀로 가서 보잉(Boeing)을 방문, 300대의 항공기를 사겠다고 발표했다. 380억달러 규모였다. 마이크로소프트를 방문해 빌 게이츠도 만났다.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미국 언론들이 연일 시진핑의 경제 행보를 대서특필했다. 분위기는 부드러워졌다. 이틀 뒤 시 주석은 워싱턴에 입성했다.
결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예상보다 긍정적 성과를 얻었다. 문제가 됐던 중국의 사이버범죄 제재 수준을 낮췄고, 배제됐던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서 협력 여지를 열어놨다.
정상회담은 이런 식이다. 주는 게 있어야 받을 게 있고 특히 ‘경제 선물’ 주고받기는 핵심 중의 핵심이다.
지난달 현대차가 백악관에서 투자를 발표한 얘기를 칼럼으로 썼다(2303호). 칼럼을 본 지인이 연락을 했다. “행사에 ‘한국’이란 단어는 거의 안 나오더라.”
글로벌 기업 현대차가 투자를 발표하는 자리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역시 ‘돈이 쏟아져 들어온다’고 자화자찬했다. 양측이 굳이 한국을 드러낼 유인은 없었다.
이틀 뒤 조지아주 현대차 공장 준공식에서 기자가 관세에 대해 물었다. 정의선 회장은 “관세는 국가 대 국가 문제다. 한 기업이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정답이다. 아무리 큰 기업이라 한들 국가 간 관세를 좌우할 순 없다. 최중경 국제투자협력대사(전 지식경제부 장관)는 현대차의 백악관 방문에 대해 “오죽 절박했으면 그랬을까 싶다”고 말했다. 미국의 압박이 그만큼 심했을 것이란 뜻이다. 그는 관세 같은 국가 간 협상은 정부 대 정부, 산업 대 산업의 균형 있는 구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백악관 행사가 열리던 바로 그 시간, 한국은 대통령이 공석이었다. 탄핵으로 직무정지 상태였다.
기업은 각자도생. 혼자 뛰어야 했다. ‘오죽 절박했으면’이라는 말이 명확한 현실이다. 국가란 뒷배 없이 단기 필마로 뛴 기업이 얼마나 쓸쓸했을까.
정상회담을 몇 차례 취재한 경험이 있다. 화려한 외교의 꽃이다. 그런데 안보 문화 교류 등은 수십 년의 전통을 벗어나기 힘들고, WTO와 같은 다자기구의 질서는 이미 굳어져 있다.
새로운 이슈를 찾기 힘들다는 뜻이다. 결국 가장 힘 있는 소재는 투자, 고용, 수출입 등이다. 기업이 나서야 가능한 것들이다. 양국 정상이 기업과 함께 ‘라운드 테이블’을 열어 ‘톱다운’으로 투자나 무역에 합의하는 경우가 많다.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입장에선 얼마나 효율적인 행사인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대통령이 공석인 나라에서 기업들은 홀로 뛰고 있다. 그러나 한계가 있다. 한국은 현대, 삼성을 앞세워 대통령이 ‘세일즈 외교’를 할 수 있는 나라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이 비기(秘技)를 쓰지도 못하고 당하고 있다.
정부가 존재하는 이유를 돌아보게 된다. 한국은 세계 10대 경제 강국이고 BTS나 블랙핑크가 있는 K컬처 보유국이다.
며칠 전 베트남이 한국산 아연도금강판에 15%가 넘는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다. 미국도 아니고 베트남이다. 동네북이 된 느낌이다.
이제야 한국 통상대표단이 미국과 협상을 시작한다고 한다.
국민과 기업이 세금을 내는 이유는 명료하다. 국익을 지켜달라는 뜻이다.
국가란 방패 없이 전장에 나선 한국 기업이 안쓰럽다. 거기에 국내엔 발목 잡는 사람들도 많으니.

[주간국장 kim.seonkeol@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06호 (2025.04.23~2025.04.2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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