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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칼럼

보호무역주의 교훈…‘대체 화폐’의 부상 [홍익희의 비트코인 이야기]

홍익희 칼럼니스트
입력 : 
2025-04-12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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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트럼프 상호관세가 비트코인에 미칠 영향

2025년 4월 3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상호관세(reciprocal tariffs)’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관세 정책은 세계 무역 시스템 불확실성을 높이는 중이다. 특히 글로벌 공급망 불안정성과 관세 리스크를 반영한 생산기지 재편이 본격화될 가능성이 크다. 국제무역기구(WTO) 권위는 약화되고, 보호무역주의 악령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트럼프 상호관세 선언은 환율 시장에도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 달러 강세 기대감 속에 위안화·유로화·엔화 등 주요 통화 변동성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 불확실성이 커지는 환경 속에서 비트코인과 금 같은 대체 자산으로 자금 이동이 활발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2024년 10월 열린 제16차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금 기반 무역통화 ‘브릭스 유닛’ 화폐를 손에 들고 입장하고 있다. (X 캡처)
2024년 10월 열린 제16차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금 기반 무역통화 ‘브릭스 유닛’ 화폐를 손에 들고 입장하고 있다. (X 캡처)

트럼프 상호관세로 발발한 무역 전쟁

1930년 스무트-홀리 관세법과 ‘판박이’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천명한 ‘상호관세’는 1930년 6월 대공황 시기 미국에서 제정된 ‘스무트-홀리 관세법(Smoot-Hawley Tariff Act)’을 연상시킨다. 미국은 대공황 충격 속에서 자국 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2만개 이상 수입품에 평균 59%, 최고 400%에 달하는 고율의 관세 장벽을 세웠다.

스무트-홀리 법은 미국 경제를 보호하기는커녕, 유럽과 기타 무역 상대국의 보복관세를 불러왔다. 세계적인 무역 전쟁으로 비화하면서 오히려 미국 경제를 위축시켰다. 관세법 실행 이후 세계 무역은 물량 기준 약 30%, 금액 기준 60% 이상 감소했고 각국은 폐쇄적인 경제 체제로 회귀했다. 상대국 보복관세로 미국 수출 또한 60%나 줄어들었고 3%대였던 미국 실업률은 25%까지 치솟았다.

세계는 대공황의 심연 속에서 더욱 오랜 시간 허우적거려야 했다. 각국은 경쟁적으로 자국 통화 평가절하·금본위제 탈퇴 등 보호주의적 통화 정책으로 선회했고, 이는 세계대전 서막을 열어젖힌 경제적 원흉으로 평가받는다. 오늘날에도 이 법안은 ‘국가의 선의가 어떻게 세계 경제를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 사례로 회자된다.

그로부터 9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2018년 이후 본격화된 미중 무역 전쟁은 스무트-홀리 법안의 현대판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산 제품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했고, 중국은 미국산 농산물과 기술 제품을 중심으로 보복에 나섰다. 결과는 공급망 혼란, 신흥국 통화 약세, 그리고 글로벌 교역의 위축이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과 맞물리며 전 세계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무역 지형을 마주하게 됐다.

페트로달러 시대 종언…주목받는 대체 통화

위안화와 금 기반 결제…브릭스는 ‘비트코인 교역’

무역 전쟁은 단순히 관세 전쟁에 그치지 않는다. 더 근본적인 변화는 ‘통화 시스템’에서 벌어지고 있다. 미국의 신뢰 추락은 신용화폐 달러에 악재로 작용한다. 게다가 미국은 스위프트(SWIFT) 차단 등 달러를 무기처럼 휘두른다. 이에 반발한 신흥국과 일부 강대국은 ‘탈달러’ 움직임을 가속화하고 있다. 실제 브릭스는 자체 결제 시스템과 금본위 무역통화 도입을 논의 중이며, 중-러 양국은 에너지 결제를 달러가 아닌 자국 통화로 전환하고 있다. 과거 스무트-홀리 법이 금본위제 종말과 함께 새로운 통화 질서를 유도했다면, 오늘날의 보호무역주의는 달러 중심 세계 질서에 균열을 부르고 있다.

중국 위안화 부상은 주목할 만하다. 중국은 위안화 국제 결제 시스템 ‘CIPS’를 통해 위안화 결제 비중을 높이며 달러 의존도를 줄이고 있다. 블룸버그 산하 경제연구소 블룸버그인텔리전스가 중국 국가외환관리국(SAFE) 통계를 분석한 결과 이미 2023년 3월 중국 대외 거래에서 위안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48.4%를 기록했다. 2010년 0%에 가까웠던 위안화 비중이 10여년 새 빠르게 늘어난 것이다. 반면 같은 기간 달러 비중은 83%에서 46.7%로 감소했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페트로달러’ 시스템의 균열도 자리 잡고 있다. 오랫동안 석유 거래 표준이었던 달러는 최근 일부 산유국이 위안화나 루블 등 대체 통화로 거래를 시도하면서 점차 영향력을 잃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중국 간 위안화 석유 결제 논의는 대표적인 사례다. JP모건 분석 등에 의하면, 이미 전 세계 원유 20% 이상이 달러가 아닌 위안화 등 통화로 거래되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 6월에는 50년 만기 미국-사우디 양국 간 ‘군사 경제 협정(일명 페트로달러 협정)’ 연장이 사우디의 거부로 만료됐다.

위안화뿐 아니다. 브릭스 국가들은 금을 매집하고 금 기반 무역통화를 검토하는 등, 새로운 통화 체계를 모색하고 있다. 실제 지난 2년간 브릭스 국가 금 보유량 증가는 600t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국제 금값 상승을 견인하는 주요인 중 하나다. 금값 상승은 달러에 대한 불신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 하나 흥미로운 흐름은 브릭스 국가 사이에서 비트코인을 무역 결제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이다. 러시아, 브라질 등은 자국 통화의 불안정성을 극복하고 미국 금융 제재를 회피하기 위한 대안으로 비트코인을 적극 검토 중이다. 2024년 10월 러시아 카잔에서 열린 16차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비트코인을 회원국 간 교역에 사용하는 ‘크립토 교역 촉진’에 대해 협의한 뒤 푸틴은 브릭스가 암호화폐를 공식 투자 대상으로 채택했다고 밝혔다. 이후 러시아는 발 빠르게 자세를 전환했다. 그간 금지했던 비트코인 채굴을 합법화하고, 암호화폐 거래소도 설립하기로 했으며 기업 사이 크립토 무역도 허용했다. 이는 디지털 자산이 단순 투자 수단을 넘어 국제 결제의 실질적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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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통화’로 부상한 비트코인

흔들리는 달러 패권 속 새로운 선택지로

세계 화폐 질서 재편 속에서 비트코인은 상징성은 물론 실수요를 인정받고 있다. 비트코인은 국가 통제에서 벗어난 디지털 자산으로서, 지정학적 블록화가 심화될수록 그 존재 가치를 더욱 인정받는다. 또 금처럼 인플레이션을 회피할 수 있는 희소성과 탈중앙성이 결합된 자산으로 주목받고 있다. 실제로 미중 갈등이 고조되던 2019년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비트코인 수요가 단기 급등한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기축통화 권위가 흔들리는 이 시점, 비트코인의 역할은 블록체인 기술 혁신을 넘어선 새로운 통화 질서의 한 축으로 진입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비트코인은 세계 질서 변화 속에서 부상하는 ‘제3의 화폐’이자 ‘디지털 금’으로 기능하는 모습이다. 미국의 달러 패권과 중국의 위안화 확장, 그 사이. 비트코인은 중립적 위치에서 국제 투자자에게 새로운 선택지를 제공한다.

스무트-홀리 법이 낳은 세계적 충격과 그 교훈이 여전히 유효하다면, 우리는 오늘날의 보호무역과 그에 따른 통화 지형 변화 역시 면밀히 살펴야 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비트코인은 점점 더 자리를 넓히고 있다. 과도한 보호무역주의의 종말은 언제나 불확실성의 확대였다. 이제 세계는 다시 한번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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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희의 비트코인 이야기]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05호 (2025.04.16~2025.04.2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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