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수사건 중 탄핵은 1만분의 3
탄핵심판 능력에 의구심 남겨
재판관 정파성 줄일 개선 필요
![헌법재판소. [사진=연합뉴스]](https://pimg.mk.co.kr/news/cms/202504/03/news-p.v1.20250403.61bd62b5a71a4c5dbc4a62b1d4b477ba_P1.jpg)
헌법재판소가 1988년 급하게 출범했을 때 청사도 없이 정동빌딩 2개 층을 빌려 더부살이를 했다. 을지로를 거쳐 지금의 재동 청사로 옮긴 것은 1993년이다. 조선시대 제중원이 있던 터다. 갑신정변에 가담했다 가문 전체가 도륙당한 홍영식의 집을 압류해 그곳에 병원을 세웠다. 고종은 낯선 서양식 병원에 ‘중생을 구제하는 집’이라는 뜻이 담긴 이름을 붙였다. 140년이 흘러 그 자리에는 다른 이유로 중생들이 몰려들고 있다.
민주 공화정의 마지막 병원 격인 헌재는 차일피일 치료를 미루며 비판을 자초했다. 의사마다 진단이 다른 것인지, 아니면 다른 눈치를 보는 것인지 도통 알 길이 없었다. 국민의 인내심이 임계점을 넘어선 뒤에야 헌재는 마침내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을 4일 선고한다고 밝혔다. 국회가 탄핵소추를 한 지 111일, 변론을 끝낸 뒤 38일 만의 선고다. 치료가 늦어지면서 내상은 더욱 깊어졌다. 그날 이후의 세상이 어떻게 전개될지 희망과 두려움이 교차한다.
우리가 독일을 벤치마크해 아시아 최초로 도입한 헌법재판소는 본래 국민 기본권을 국가권력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제도다. 헌재는 1987년 헌법 개정 때 권력 통제의 최후 기관 역할도 떠맡았다. 헌법소원, 권한쟁의, 위헌법률, 탄핵, 정당해산 등 5가지를 심판하는 임무는 독일과 같다.
헌재가 출범 후 올해 2월까지 접수한 5만2816건의 사건 중 헌법소원이 98%를 차지한다. 탄핵 사건은 16건, 그것도 윤석열 정부 출범 뒤로만 13건이다. 전체 사건에서 탄핵이 차지하는 비중은 1만분의 3에 그친다.
기본권 강화에 큰 역할을 해온 헌재지만 탄핵심판에 이르면 정치 외풍을 뚫어낼 충분한 경험을 축적하지 못했다. 헌법재판이란 숙명적으로 사법과 정치를 가르는 담장 위에서 이뤄진다. 계엄과 탄핵으로 더 커진 정치적 압력 속에 8인의 재판관은 좌고우면했다. 변론은 예상보다 짧게, 심리는 너무 길게 하는 기이한 행태를 낳았다.
심판이 지연된 데는 정치적 고려가 일부 작용한 것으로 추정한다. 윤 대통령에 대한 법원의 구속 취소와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선거법 2심이 그랬다. 압력밥솥의 김을 빼려는 헌재의 판단은 옳았을까. 심리 과정의 기밀을 유지하려고 재판관들이 애를 쓴 것은 맞다. 여야 어느 정치인도 확실한 소스를 가지고 결과를 예단하진 못한다. 하지만 선고가 지연되며 온갖 뜬소문이 상처를 헤집고 말았다. 헌재 심판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더 이상 ‘블랙박스’일 수 없게 됐다. 심판이 지연된 이유에 대해 사후적으로 헌재가 설명할 의무가 있다고 본다.
차제에 헌재의 구조적 문제를 짚어보고 대안을 모색할 필요도 있다. 헌재의 원형인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한 번도 탄핵으로 대통령이나 장관을 파면한 경험이 없다. 내각제 국가 독일에서 총리는 이른바 ‘건설적 불신임’에 의해 정치적 책임만 진다. 독일의 대통령에 대해선 두 차례 탄핵 시도가 있었으나 모두 자진 사임했다. 다수 국가에서 선출 권력은 선출 권력이 해임한다. 지금 상태 그대로 탄핵심판 기능을 헌재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한지 사회적 성찰이 필요하다.
제도를 유지한다면 재판관의 정파성을 최대한 배제해야 한다. 독일 의회는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모든 재판관을 임명한다. 애초부터 특정 정당의 입맛 대로 선임할 수 없는 구조다. 임기는 우리의 2배인 12년이며 중도에 해임되지 않는다. 16명의 재판관을 두 개의 상임 재판부로 나눠 업무를 분담한다.
모든 국가기관이 그러하듯 헌법재판소도 무오류의 존재일 수는 없다. 다만 그들에게 최후의 권력 통제자 역할을 믿고 맡기려면 개헌 과정을 거쳐 제도를 더 완전하게 만들어가야 한다.

신헌철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