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탄·반탄으로 두 쪽난 나라
부모·자식마저 등 돌리게해
헌재 선고 다가올수록 긴장
정치인의 언어 갈수록 칼날
리더라면 갈등 먼저 보듬길
부모·자식마저 등 돌리게해
헌재 선고 다가올수록 긴장
정치인의 언어 갈수록 칼날
리더라면 갈등 먼저 보듬길

지난 100여 일의 시간을 다시 떠올려봅니다. 계엄 첫날 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대다수의 국민들은 점차 찬탄·반탄으로 쪼개지면서 지금 대한민국은 큰 혼란과 갈등에 빠져 있습니다. 주변에는 가족들마저 찬탄·반탄으로 갈라졌다며 마음고생하는 집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연 속에 나라 걱정이란 마음만은 같았습니다.
밖에서 '애국청년'으로 불리는 아이가 어느 날 부모에게 '아픈 손가락'으로 다가왔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자신이 미처 몰랐던 자식을 이해해보겠다며 소위 말하는 '극우 유튜버 방송'을 보겠다는 부모들도 있었습니다.
어느 집은 추운 날에도 반탄 집회에 나가는 부모님을 걱정하며 말리자, 자식에게 "꼴보기 싫다"며 역정을 내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정치적 성향이 다른 남녀가 헤어짐을 선택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왔습니다. "어차피 여혐일 텐데" 또는 "역시 개딸이구나" 등 가슴을 후벼파는 말에 이별을 택한 거죠.
이렇게 가족·연인마저 갈등으로 내몬 상황은 "동무는 어느 쪽으로 가겠소"라고 묻는 최인훈의 소설 '광장'과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정치인들의 언어는 날이 갈수록 갈등을 부추겼습니다. 그들이 입이 닳도록 쓰던 '국민'이라는 중립의 단어는 어느 순간 정치적 함의를 품은 '지지자'라는 단어로 대체되기 시작했습니다. 최근에는 "몸조심하라"는 거친 언사도 나옵니다.
민주주의에서도 오류는 피할 수 없어 보입니다. 민주주의 자체의 제도적 한계도 있겠지만, 때론 잘못된 여론이 오류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2003년 3월 20일 시작된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대표적입니다. 2001년 9·11테러 직후 미국에서는 이라크 침공에 대한 찬반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부시 행정부는 사담 후세인이 대량살상무기(WMD)를 개발하고 있기 때문에 전쟁은 불가피하다고 봤습니다. 미국인들은 전쟁에 압도적으로 찬성했고, 전쟁 결의안 역시 다수결로 의회를 통과했습니다.
하지만 10년 넘게 전쟁을 치렀건만 이라크에선 WMD가 발견되지 않았고, 미국인들은 이라크 침공 자체가 잘못된 가정을 근거로 결정됐다는 반성이 일었습니다.
불행히도 실제로 두 명의 이라크 망명자가 후세인이 WMD를 보유하고 있다는 거짓 주장을 한 게 전쟁을 촉발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사망하거나 다친 사람만 해도 20만명에 육박하는 이 허무한 전쟁의 희생자는 모두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들이었습니다.
조만간 내려질 헌법재판소 결정에 누군가는 분노할 것이며, 누군가는 환호할 것입니다. 하지만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은 이날 벌어질지 모르는 사고에 대한 우려 그리고 이미 찢어질 대로 찢어진 대한민국의 앞날에 대한 걱정이 더 큽니다.
적처럼 마주하고 거리에 선 사람들을 다독이기 위해선 어떤 결정이 나오든 승복이 가장 중요할 것입니다.
내 뜻과 다르다고 해서 반대편에 있는 이들을, 또는 국가기관을 공격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후진국의 행보였을 뿐입니다.
지금 필요한 건 포퓰리스트가 아닌 지도자이고, 지지자가 아닌 국민 모두를 포용하는 언어입니다.
거리에 있는 이들은 소중한 나의 부모, 자식 그리고 국민입니다. 그 누구도 다치지 않길, 아프지 않길.
[이윤재 오피니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