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대학 동기들과 의대 증원 얘기를 하던 중, 한 친구가 졸업 후 30여 년 만에 몰랐던 과거를 털어놨다. 서울 모 대학 의대에 붙었지만 등록을 포기하고 재수해서 지금의 문과 전공을 택했다는 것이다. 주변 반응은 싸늘했다. "세상 보는 눈이 그렇게 없냐" "무슨 고매한 뜻이 있었길래"라며 농담조의 말들이 나왔다.
1990년대만 해도 의대 갈 실력자들이 공대·자연대로 진학하고, 문과로 이적도 했다. 그러나 이들이 과거로 돌아간다면 같은 선택을 할지 확신하긴 어렵다. 그때도 의사는 사회적 명망과 수입 면에서 최상위였다. TV 드라마에 가장 많이 나올 만큼 선망의 직업이었다. 최근 서울대 의대 교수들이 제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의사 면허는 특권"이라고 했는데, 과거에도 모르진 않았다. 다만 예전엔 의대 기피 사유로 "피 보는 게 겁나서"라는 순진한 답변도 통했다. 물론 지금은 '한가한 소리'나 '만용'으로 들릴 것이다.
의대 증원에 반발해 집단 휴학이 2년째 계속되고 있다. 정부는 이달 말까지 복귀하면 입학 정원을 기존 규모(3058명)로 되돌리겠다고 했지만 학생들은 꿈쩍도 않는다. 전직 의대 학장도 "학생들이 뭘 원하는지 더 이상 모른다"고 할 정도다.
보통 학생이라면 장기 결석으로 제적 등 불이익을 당할까 봐 걱정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의대생들은 휴학 대열에서 이탈하면 왕따가 돼서 향후 학교·병원에서 지내기 곤란해질까 두려움이 앞선다. 이를 동맹 휴학 같은 걸로 극복하려 한다.
지난 19일 의대를 둔 대학 총장들은 휴학계를 반려하고 학칙에 따른 엄정 조치 의사를 밝혔다. 교육부도 미복귀로 생긴 결원에는 학교 자율로 편입학 등을 허용키로 했다. 이날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은 "의사하기 싫으면 말라"며 "그들의 빈자리는 의사 역할을 잘해보겠다는 사람들로 채우면 된다"고 했다.
지금은 의대를 못 가 안달하고, 예전엔 안 가서 후회하는 사람도 많다. 의대생이 어렵게 꿰찬 자리가 등교 거부로 남에게 넘어간다면 억울하지 않나. 의대생도 다른 학생들처럼 공부가 먼저다.
[김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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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칼럼
[필동정담] 의대생의 빈자리
- 입력 :
- 2025-03-20 17:30:29
- 수정 :
- 2025-03-20 20:3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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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학생들의 입장이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의대생들의 집단 휴학이 2년째 지속되고 있다.
정부는 학생들이 복귀할 경우 입학 정원을 원래대로 되돌리겠다고 발표했지만, 의대생들은 동맹 휴학을 통해 집단 행동을 이어가고 있어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과거 의사의 직업적 가치와 현재의 상황을 비교하며, 의대생들이 처한 어려움을 재조명하는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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