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2일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철강·알루미늄 25% 관세가 예정대로 발효되고, 트럼프 헛발질에 미국 경기 침체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미국 증시가 죽을 쑤는 등 글로벌 경제가 심상찮게 돌아가고 있지만 당장 눈앞의 홈플러스 문제가 더 커 보입니다. 게다가 홈플러스는 양파도 아니면서 까면 깔수록 새로운 사실들이 나오고 있어 그야말로 이슈의 블랙홀 수준입니다.
수많은 이슈 중 당장 일반인과 얽혀 있는 대표적인 이슈가 법정관리 신청 직전에 발행된 기업어음(CP)과 전자단기사채입니다. 홈플러스는 법정관리를 신청하기 약 열흘 전인 2월 25일까지 CP와 전단채를 팔았죠. 이 규모만 1880억원(3월 4일 기준)에 달합니다. 홈플러스 대주주 MBK는 줄곧 “2월 28일 신용평가사들이 기업어음(CP)과 단기사채 신용등급을 ‘A3’에서 ‘A3-’로 내리는 예상 밖의 상황이 벌어지면서 어쩔 수 없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고 주장해왔죠. 그러나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2월 25일 오후 4시경 신용평가사 한 곳의 실무 담당자로부터 신용등급이 한 등급 하락할 것 같다는 예비평정 결과를 전달받고 재심 신청 의사가 있는지 확인 요청을 받았다. 26일 오전 바로 재심의를 요청했고 2월 27일 오후 늦게 신용평가사로부터 신용등급이 한 등급 하락했다는 최종 결과를 통보받았다”고 입장을 바꿨습니다. 공교롭게도 25일이 겹칩니다. 그날까지 팔았고, 그날 상황을 알았다니까요.
피해를 본 개인 투자자들은 “상황이 이렇게 될 것을 뻔히 알았으면서도 MBK가 CP·전단채 발행을 강행했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습니다. 대주주가 사모펀드라 기존 오너 그룹과 달리 책임지려는 태도가 전혀 없는 것도 더욱 기함하게 만드는 요인이고요.
이런 유의 사안에서 ‘알았느냐, 몰랐느냐’는 아주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이 지점에서 동양그룹 스토리가 떠오릅니다.
2013년 현재현 당시 동양그룹 회장이 부도 위험성을 숨기고 동양증권을 통해 1조3000억원대 CP와 회사채를 발행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7년이 확정됐죠. 당시 검찰 조사의 핵심은 ‘현 회장이 이 사태를 이미 알고 있었는가’였습니다.
“어느 날 동양그룹에 대해 진단하고 회장한테 보고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분석을 해보니 예상보다 훨씬 상황이 심각했다. 특히 골프장을 운영하는 동양레저는 영업이익이 아닌 총수입으로도 채권 이자를 못 갚을 수준이었다. 동양레저는 바로 팔고 이후 동양증권이나 동양시멘트 중 하나를 팔아야 한다는 게 보고서의 결론이었다. 보고서를 본 회장은 역정을 냈다. 동양시멘트가 있는 삼척은 선대회장 묘소가 있을 정도로 그룹에 의미 있는 계열사고, 증권은 본인이 혼자 제대로 키워낸 유일한 회사인데 어떻게 매각하느냐가 골자였다. 보고서 존재가 알려지면 위험할 수 있어 모두 폐기했는데 나중에 회장실에서 보고서 카피본이 하나 나왔고 그게 유죄 입증의 결정적인 증거가 됐다.”
당시 보고서 작성에 관여했던 A씨의 전언입니다.
MBK는 알았을까요, 몰랐을까요. 스토리는 신기하게도 꼭 되풀이되더라고요(p.22~25).
[김소연 편집장 kim.soye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01호 (2025.03.19~2025.03.2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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