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를 쌓는 것은 힘들지만, 유지하는 것은 더 어렵다. 가장 험난한 것은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다.”
이 말은 사고 발생 후 기업이 사과할 때 인용된다. 기업 평판은 실수나 사고 그 자체보다는 대처 방식에서 갈리는 경우가 많다. 실수와 사고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지만, 사과는 아무나 잘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사과야말로 화로 악화시킬지, 복으로 반전시킬지를 가르는 극적인 모멘트다. 불편하더라도 적극적으로 사과해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사과엔 비용이 들지만, 회피보다는 저렴하기 때문”이다. CEO가 조직 대표로서 사과의 자리에 전면 나서게 되는데, CEO 사과의 성패를 가르는 결정적 요인은 무엇일까?

Q. 좋은 사과의 원칙이 있을까. 좋은 사과와 나쁜 사과의 결정적 차이는 무엇인가. 실수는 이미 벌어졌고, 큰 과오인데 ‘잘한 사과’라는 게 가능하기나 할까.
A. 김 코치: 진정성 있는 사과는 조직의 신뢰를 회복하고 브랜드 이미지를 전환시키는 전화위복의 강력한 소통 도구다. 반대로, 서툰 사과는 실수를 악화시킨다. 좋은 사과는 과거 실수를 바꿀 순 없지만 미래의 신뢰를 재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지듯’ 오히려 신뢰가 단단해진 사과 사례도 있다. 미국 대형 소매 업체 타겟은 2013년 데이터 유출 사건이 발생했을 때 CEO가 직접 피해 규모를 공개해 투명성을 보여주고 CNBC 인터뷰와 뉴욕타임스 광고를 통해 사건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했다. 또 고객 보호 조치로 1년간 무료로 신용 모니터링과 신원정보 도용 방지 서비스를 제공해 고객의 불안을 해소코자 노력했다. 사이버 보안 교육에 500만달러 투자를 약속해 재발 방지 의지를 보여주고, 홈페이지에 관련 정보를 지속적으로 올려 고객과 소통을 유지함으로써 신뢰를 회복할 수 있었다. 좋은 사과를 위해 필요한 세 가지 핵심 요소는 다음과 같다. 좋은 사과의 3요소는 A-C-E다.
Aim(대상): 명확한 주체와 대상으로서 ‘누가 누구에게 사과하는지’가 분명해야 한다.
Compassion(공감과 연민): 피해를 입은 사람의 입장에서 충분히 공감하고 연민을 표현해야 한다.
Execution(실행): 구체적인 문제 해결 방안과 문제 해결을 위한 실질적인 대책이 포함되어야 한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이 분명히 전달될 때 비로소 에이스급 사과라 할 수 있다. 시시비비를 가리는 논리적 해명, 감정적인 반발, 입에 발린 수사학이 아닌, 상처받은 마음을 보듬고 신뢰를 회복하는 도구로서의 사과가 진정성이 있다.
Q. 사과를 잘하기 위해 언어뿐 아니라 여러 가지가 종합적으로 필요함을 알겠다. 말 외에 고려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A. 김 코치: 진심 어린 사과는 단순히 말로만 전해지지 않는다. 말투, 표정, 태도, 심지어 옷차림까지 비언어적 요소들이 모두 어우러져야 비로소 진정성이 전달된다. 예를 들어, 아무리 잘 짜인 사과문을 발표했더라도 직후에 환한 웃음으로 회식을 즐기는 모습이 공개된다면 사과의 진정성은 크게 흔들릴 수 있다.
UC버클리 하스 경영대학원의 리앤 텐 브링크와 런던 경영대학원 가브리엘 S. 애덤스 교수는 사과 영상 29개를 분석한 연구에서 흥미로운 결과를 발견했다. 사과할 때 밝은 표정을 많이 지은 리더일수록 고객의 수용 의지는 낮아졌고, 회사 주가도 하락했다. 반면 슬픈 표정으로 진지하게 사과한 경우가 가장 효과가 좋았다. 결국 사과의 성공 여부는 진정성에 달려 있다. 사고 후 의상에서 회사 로고 제복, 캐주얼, 정장 등 사안에 따라 미묘한 조절이 필요하다. 즉 사과는 단순한 말이 아닌 말과 행동, 표정이 일치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Q. 아직 진상이 규명되지 않아 사태를 더 두고 봐야 하는 상태에서 대처는 어떻게 하나. 여론은 들끓는데 사과를 안 할 수도, 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
A. 김 코치: 사과는 내가 잘못을 했기 때문에 하는 것이지, 상대가 화를 냈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다. 특히 기업의 위기 상황에서는 사과 시기와 방식이 신중해야 한다. 법적 책임과 윤리적 책임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과를 해야 할 때 하지 않는 것’만큼이나 ‘하지 않아야 할 때 했을 때’도 기업 평판과 주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중요한 것은 사실관계가 명확해진 후에 사과해야 진정성이 있다는 점이다. 이때 유용한 것이 ‘홀딩 멘트(Holding Ment)’다. 효과적인 홀딩 멘트는 세 가지 요소를 포함한다.
첫째, 확인된 사실만 인정하기. 성급한 대응을 자제하고 확인된 사실만 말한다. 둘째, 현재 조사 진행 중임을 알리기. 문제 원인 파악 등을 위한 조사가 진행 중임을 설명하며 고객 보호를 최우선으로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셋째, 해결 의지 표현하기. 법적 책임을 인정하거나 섣부른 사과를 하지 않으면서도 문제 해결 의지와 책임감을 강력히 전달한다. 예를 들어 리콜 사태로 불만이 폭주하는데 아직 원인을 모른다면 이렇게 홀딩 멘트를 할 수 있다.
“현재 저희 제품과 관련하여 문제가 발생했다는 보고를 접수하였으며, 철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전문가들과 협력하여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신속하고 투명한 조치를 약속드립니다. 고객의 안전과 신뢰는 저희의 최우선 가치입니다. 상황이 명확히 확인되는 대로 추가 안내를 드리겠으며, 고객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선을 하겠습니다. 문의 사항이 있으시면 ‘고객센터 연락처 ○○○’으로 연락주시면 성실히 안내드리겠습니다.”
이후 실제로 관련 사안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대책을 진행해야 함은 물론이다. 홀딩 멘트를 잘 활용하면 신속과 신중의 사과 딜레마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잡는 데 도움이 된다.
Q. 내부 직원에 대한 사과와 외부 고객에 대한 사과는 어떻게 달라야 하나.
A. 김 코치: 사과의 기본 ACE 원칙은 같다. 잘못을 인정하고, 상대방의 감정에 공감하며, 책임을 수용하고 사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다. 단 내부 직원에게 사과할 때와 외부 고객에게 사과할 때는 목적과 표현 방식, 소통 채널에서 차이가 있다.
외부 고객에게는 공식적이고 전략적인 사과가 필요하다. 브랜드 이미지와 신뢰 회복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기 때문이다. 이때는 감정적인 표현을 자제하고, 문제 해결 의지를 분명히 하면서도 법적 책임을 신중하게 표현해야 한다. 공신력 있는 채널을 통해 투명하고 일관성 있게 소통하는 것이 신뢰를 회복하는 열쇠다.
반면 내부 직원에게는 진솔하고 따뜻한 사과가 효과적이다. 회사가 처한 상황을 솔직히 공유하며 공감대를 형성하고, “~~한 어려운 상황이 있었다”는 고백으로 결속을 다져야 한다. 브랜드 위기는 내부에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내부 사과는 개별적이고 비공식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사과를 계기로 직원 의견을 듣고 참여를 유도해 조직 문화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궁극적으로 외부 사과가 브랜드 신뢰 회복이 목표라면, 내부 사과는 리더십 신뢰 회복, 결속 강화가 목적이다. 같은 잘못이라도 접근 방식이 달라야 하는 이유다.

[김성회 CEO리더십연구소장 코칭경영원 코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01호 (2025.03.19~2025.03.2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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