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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칼럼

그게 우리 실력이다 [김선걸 칼럼]

김선걸 기자
입력 : 
2025-03-02 21:00:00
수정 : 
2025-03-04 17:2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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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을 1.9%에서 1.5%로 대폭 낮췄다.

1%대 성장도 충격이었는데 전망치가 가파르게 하락하고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뼈 있는 한마디를 했다. “그게 우리 실력이다.”

핵심은 이 대목이다. “가장 뼈아픈 부분은 지난 10년간 새 산업이 도입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새 산업을 도입하려면 창조적 파괴가 필요하고 누군가는 고통을 받아야 하는데 그 사회적인 갈등을 감내하기 어려워 피하다보니 새 산업이 하나도 도입되지 않았다.”

미국을 보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식 때 가족 바로 뒷줄에 일론 머스크, 제프 베이조스, 마크 저커버그 등 기업인들을 세웠다. 이들은 20세 안팎에 창업해 세계 최고의 부를 이룬 4060 창업자들이다.

한국에 비슷한 상황을 가정해보자. 누가 앞줄에 설까.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 회장, 최태원 SK 회장, 구광모 LG 회장 정도일 것이다. 2대인 최 회장 외엔 모두 창업자의 손자인 3세대, 구 회장은 증손자인 4세대 경영자들이다.

기업의 오너십은 국가의 뼈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의 역사가 오래된 미국은 200년 가까이 경영권을 행사하는 가문이 많다.

자동차 기업 포드는 지난 1903년 헨리 포드가 창업해 122년이 됐는데, 4세대인 빌 포드가 최고경영자(CEO)를 거쳐 회장을 맡고 있다. 유통 공룡 월마트는 창업자 샘 월튼의 아들에서 손자세대로, 화장품 기업 에스티로더 역시 손자가 경영하고 있다. 농업 기업 카길은 1865년 창업해 160년간 카길 가문이 지키고 있고, 언론사 뉴욕타임스(NYT)도 5대째 설즈버거 가문이 경영한다.

이처럼 제조업, 농업, 유통, 미디어에서 뿌리 깊은 나무처럼 ‘패밀리 비지니스’가 받쳐주는 동안, 실리콘밸리의 청년들은 테슬라, 구글, 아마존, 메타 등을 창업해 폭발적인 성장으로 전통 기업보다 더 커졌다. 전통 산업과 성장 산업 양 날개로 미국이 비상한 것이다.

한국도 삼성, 현대, LG처럼 ‘전통 산업’은 나름 버텼다. 그러나 20년 전 10대 수출 품목 중 8개가 아직 그대로다. 새싹을 키우지 못했다.

이 총재의 ‘뼈아픈 부분’이란 한쪽 날개인 ‘신생 산업’을 10년간 고사시킨 것이다. 세계 최고였던 원자력 산업은 문재인 정권의 느닷없는 ‘탈원전’으로 퇴행했다. 택시 업계 눈치를 보느라 ‘타다’ 같은 모빌리티 서비스가 막혔고, ‘52시간제’로 인해 수출 1위 반도체 산업 경쟁력이 밀린다. 송전선을 깔 때마다 주민 반대에 부딪혀 데이터센터마저도 짓기 힘들다.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가 구치소를 들락거리는 모습을 본다. 개별 기업인의 혐의를 거론하고 싶진 않다. 그러나 2018년 머스크가 테슬라 주식 관련 증권사기 혐의를 받았지만 2000만달러 벌금으로 종결된 것과 비교된다. 한국엔 아직도 성리학적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위계가 있다. 정치, 사법 영역 사람들이 화풀이하듯 기업인을 감옥에 보낸다.

한국은 6·25 전쟁 이후 전후세대의 피땀 어린 노력과 열정으로 최말단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했다. 그 수혜를 이른바 586세대가 향유했다. 그런데 정작 586은 기득권 노조, 샴페인 좌파로 돌변해 자녀세대 2030의 먹거리조차 뺏고 있다. 한국은 규제 때문에 ‘빅테크’ 같은 기업을 성장시키기 힘든 나라다.

최근 2030이 깨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의 생존이 달린 일이다. 이 총재 말대로 ‘그게 우리 실력’이라고 치자. 그러나 ‘2030의 실력’은 달라지게 해줘야 한다. 그게 기성세대의 의무 아닌가.

사진설명

[주간국장 kim.seonkeol@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99호 (2025.03.05~2025.03.1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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