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공직사회 짓누르는
비효율·무기력·무능 더 심각
관료주의 셀프개혁 되겠나
최근 도널드 트럼프의 장녀 이방카 트럼프가 엑스에 올린 사진 한 장이 눈길을 잡았다. 일론 머스크 정부효율부(DOGE) 수장이 관공서 바닥에서 성조기가 그려진 이불을 덮고 쪽잠을 자는 모습이었다. 이방카는 이런 글을 덧붙였다.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남자가 정부가 당신을 강탈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워싱턴DC 건물 바닥에서 잠자고 있다.”
머스크는 과거에도 공장의 소파, 책상 아래에서 수면을 취하는 것이 종종 목격되곤 했다. 하지만 공공의 이익을 위해 억만장자가 이런 열정을 보이는 것은 이례적임이 틀림없다. 물론 스타 사업가의 정치권 등판에 대해 냉소적인 시선도 있다. 특유의 괴짜 기질로 국정 전반에 참견하는 게 정신 사납다는 반응도 있다. 민간과 공공의 특성 차이를 무시한 행동이란 비판도 나온다. 전기톱을 치켜들고 ‘관료주의 혁파’를 부르짖는 것에서 보듯, 그의 방식이 급진적이긴 하다. 그러나 기업 구조조정이든 정부 개혁이든 목표는 명확했다. 능력 있는 인재만 남겨 효율을 극대화하겠다는 것.
![전기톱 치켜든 머스크 [게티이미지/AFP=연합뉴스]](https://pimg.mk.co.kr/news/cms/202502/25/news-p.v1.20250225.72d2f2cb3b48451ba9ffc9bcbb0c5e4d_P1.jpg)
지금 미국 공직사회는 지난 한달간 머스크가 일으킨 ‘칼바람’에 초긴장 상태다. 그는 방만한 연방정부의 운영 효율화와 예산 절감을 목표로 ‘불도저식 행보’를 보이고 있다. 국제개발처, 에너지부 등 정부 조직을 폐지·축소하고, 연방공무원 240만명 중 10만명을 해고했다. 일자리를 잃은 공무원들과 반대 진영에서는 월권 행사라는 비판도 만만찮게 나온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머스크의 칼질을 묵인하는 것은 관료사회의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실 공직사회 개혁은 한국이 더 시급하다. 조직의 비대화도 문제거니와 비효율과 무기력, 무능도 방치할 수 없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공무원 수는 IMF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특히 문재인 정부 5년간 15만명이 늘어나 2023년 말 117만명에 달했다. ‘청년 일자리 창출’ 명목 등으로 공무원을 늘린 탓이다. 인력이 늘었지만 서비스 개선을 체감하긴 힘들다. 오히려 숫자가 늘어난 만큼 규제와 행정 비용이 증가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10년간 근무하고 퇴사한 노한동 씨가 최근 출간한 책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에는 공직사회에 만연한 무기력과 비효율, 가짜노동 등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그는 “입만 열면 적극 행정을 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그저 ‘존버’를 잘한 순서대로 승진시킨다”며 “국민의 공복을 자처하지만 누구보다 권력자에게 약하고 국민에게 강하다”고 공직사회를 꼬집었다. 윗사람을 추켜세우는 행태, 예산을 절약하면 오히려 질책받는 구조, 연구용역과 위원회 등 책임 회피 메커니즘을 관료사회의 병폐로 꼽았다.
비상계엄 이후 ‘복지부동’ ‘무사안일’ 등 공직사회의 악습은 더 심각해지고 있다. 주요 정책은 개점휴업 상태이고, 최소한의 직무만 수행하며 손을 놓고 있는 형국이다. 사명감을 가졌던 똑똑한 공무원들은 회의를 느끼고 조직에서 이탈하고 있다.
탄핵 정국이 마무리되면 붕괴 직전의 공직사회를 대대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역대 정부마다 유연한 인사 시스템과 성과주의 도입 등을 외쳤지만 대부분 흐지부지됐다. 변화를 거부하는 공무원들의 저항에 부딪힌 탓이다. 관료주의 타파를 내부 관료에게 맡겨서는 성공하기 힘들다. 머스크식 개혁이 한국 공직사회에 필요한 이유다. 비효율과 무능에 가차 없이 칼을 들이댈 혁신적인 외부 인사 영입이 불가피하다. 공직사회는 늘 그랬듯 격렬히 반발할지 모른다. 하지만 미국도 정부 혁신에 나선 마당에 공직사회 수술을 더 이상 미룰 순 없다. ‘유능한 공무원’ 없이 ‘유능한 국가’도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심윤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