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벨로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원래 직업이다. 우리말로는 ‘부동산 개발업자’다. 단순히 건물을 지어 파는 사람으로 볼 수도 있지만 좀 다른 시각으로 볼 수도 있다.
디벨로퍼는 꿈꾸는 직업이다. 허허벌판의 땅 위에 건물을 짓고 도시를 만드는 꿈을 꾼다. 그 꿈을 그린 청사진으로 투자자와 인허가기관을 설득한다. 그리고 공간을 만든다. 비현실적 꿈일수록 결과는 짜릿하다. 사막에 초고층을 세우거나 폐허가 된 철도역에 백화점을 짓는 식이다. 한마디로 무에서 유를 만드는 직업이다.
트럼프 정부엔 디벨로퍼들이 많다. 며칠 전 미 중동특사인 스티브 위트코프가 러시아에 3년여 억류돼 있던 자국민을 석방시켰다. 언론은 일제히 외교에 문외한인 위트코프를 극찬했다. 개인 비행기를 보내 인질을 태워왔다거나 디벨로퍼 시절 협상술을 러시아에 적용했다는 해설이 붙었다. 이스라엘-하마스 휴전도 그가 이뤄냈다.
트럼프 정부 1기 때 백악관 선임고문을 맡았던 트럼프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도 디벨로퍼다. 27세로 최연소 백악관 대변인이 된 캐럴라인 레빗의 남편 역시 유명한 디벨로퍼인 니콜라스 리키오다. 흥미롭다. 트럼프의 생각은 뭘까.
디벨로퍼들은 특유의 목표 지향적인 일 처리와 효율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생리가 있다.
그 특징들은 ▲상상력을 동원한 사업 구상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 정도로 목표 지향성 ▲모 아니면 도의 승부를 감수하는 위험 선호(risk taking) ▲규제를 극복해 뉴노멀(New normal)을 만드는 역량 등이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하마스 휴전 담판에서 위트코프는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게 직접 전화해 협박 같은 압박을 했다. 관료라면 못할 일이다.
한국에선 건설업자와 디벨로퍼를 혼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건설업은 서비스업(건설용역)이고 디벨로퍼는 투자업에 가깝다. 오히려 디벨로퍼는 ‘IT 개발자’와 비슷하다. 인터넷 운영체제를 개발한 빌 게이츠나, 스페이스X를 개발한 일론 머스크처럼 창의적인 측면이 있다. ‘시간은 돈’인 것도 비슷하다. 트럼프가 머스크와 죽이 맞는 건 이런 동류의식 아닐까.
디벨로퍼를 칭찬하자는 건 아니다. 부정적 측면도 많다. 무모한 도전이나 지나친 목표 지향성으로 욕도 많이 먹는다. 단지 하고 싶은 말은 트럼프, 머스크의 시선은 규제를 넘어서 ‘미래’와 ‘꿈’에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속도감 있게.
한국을 돌아보자. 계엄을 선포했던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권영세 국민의힘 대표도 모두 법조인 출신이다. 홍준표, 오세훈, 한동훈, 원희룡 등 다른 리더들도 법조인 일색이다.
법조인은 기본적으로 평생 옳으냐 그르냐를 다투는 사람이다. 국가 지도자가 옳고 그름을 따져야 할 시기도 있다. 그러나 문재인·윤석열 정부를 지나며 과거를 캐고 따지며 원고와 피고, 혹 검사와 변호인처럼 편 갈라 싸움만 반복했다. 그러는 동안 꿈과 비전으로 전후 세대가 쌓아 올린 국부는 점멸하고 있다.
2030의 분노가 이해 간다. 부강했던 대한민국이 편 가르기와 이념 전쟁에 좀먹어 간다. 청년들의 미래만 암울해진다. 직업으로 사람을 판단하자는 말까진 아니다. 단지 이제 한국의 리더는 ‘꿈꾸는 사람’ 아니 ‘꿈꿔본 사람’이 나와야 한다.
사실 미국도 말도 많고 탈도 많다. 그러나 다시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게 중요하다.
29건의 탄핵과 그에 맞선 계엄. ‘편’ 가름이 점입가경인 우리 단면이다. ‘꿈꾸는’ 리더가 안 보인다.

[주간국장 kim.seonkeol@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97호 (2025.02.19~2025.02.25일자) 기사입니다]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