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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칼럼

[박용범칼럼] 디지털자산, 규제는 축복?

박용범 기자
입력 : 
2025-02-12 17:2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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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 거래소 CEO는 최근 금융당국과의 규제가 강압적이며 투자자 및 사업자에게 괴롭다고 전했다.

그러나 '똑똑한 규제'가 필요하며, 과거의 잣대로 혁신에 대한 규제를 진행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가상자산 현물 ETF 거래가 금지되어 있어 투자자들이 해외로 이민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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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성장하는 가상자산 시장
정부·당국 규제 필요하지만
시대 변화에 맞게 적용해야
韓투자자 '코인이민' 급증
이젠 똑똑한 규제로 바꿔야
사진설명
"여의도(금융감독원)에만 불려 가면 괴롭습니다. 무조건 숨을 못 쉬게 만들려고만 하니까요."

사석에서 만난 한 가상화폐 거래소 최고경영자(CEO)가 한숨을 내쉬며 한 말이다.

최근 가상자산 투자 저변이 급속도로 확산하자 금융당국의 경계감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규제를 반길 투자자나 사업자는 없다. 하지만 강압·억압·통제가 아닌 '똑똑한 규제'는 시장을 양성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법·제도가 변화와 혁신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시장에서는 더 그렇다. 디지털 자산 시장이 대표적이다. 이 시장은 질풍노도의 시기에 있다. 투자자들과 사업자들에게 규제는 당장은 괴롭고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더 수준 높은 자율이 보장되는 시장으로 가기 위한 과정이다.

규제를 떠올리면 뇌리에 남아 있는 조언이 있다. 3년 전 미국 오스틴에서 열린 가상자산 콘퍼런스인 '컨센서스'에서 만난 댄 슐먼 당시 페이팔 CEO의 말이다. 그는 "규제가 심해지는 것은 '축복'(blessings)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슐먼은 "지금까지 사람들은 가상화폐를 (주식처럼) 트레이딩의 대상으로 여겨왔지만 점점 유틸리티(효용성)와 연결돼가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건전한 생태계로 발전하는 '성장통'이라고 본 것이다.

디지털 자산은 늘 실체가 없다는 비판에 직면한다. 하지만 시나브로 우리 생활 속에 스며들고 있다. '백트(Bakkt)' 앱에서 비트코인을 스타벅스 등에서 사용 가능한 디지털화폐로 바꿔주는 것이 대표적이다. 복잡한 신용카드 결제 메커니즘과 결제 주체 간 수익 배분 기준 등을 다 이해하는 사람은 드물다. 이런 것을 몰라도 편리성 때문에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것처럼 가상화폐도 생활 속에 보이지 않는 인프라가 되고 있다.

정부와 당국은 본능적으로 프로크루스테스식 정책을 펼치기 마련이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프로크루스테스는 자기 집에 온 손님을 침대에 눕히고 키가 침대보다 크면 다리나 머리를 자르고, 작으면 사지를 잡아 늘여서 죽였다. 새로운 투자·결제 수단이 되고 있는 디지털 자산 시장에서 투자자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제에는 충분히 동의한다. 다만 정부와 당국이 잣대로 내세우는 '프로크루스테스 침대'의 크기에는 탄력성이 있어야 한다. 혁신의 노력에까지 과거의 잣대로만 규제의 칼날을 들이댈 수 없다.

물론 실체가 없는 밈코인을 양산하거나 시세조종·투자사기 시도 등에 대해선 더 작은 침대를 들이대고 면밀하게 감시해야 한다. 하지만 시가총액이 2조달러를 넘나드는 비트코인을 사기라는 색안경을 끼고 볼 시대는 지났다.

해야 할 일을 방치하는 '부작위' 규제는 더 비겁하다. 가상자산 투자 법인 계좌를 열어주지 않아 투자 기회를 봉쇄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미 제도권에 편입된 자산에 대한 투자는 시장에 맡겨야 한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이 출시한 비트코인 현물 ETF(IBIT)에는 1년 새 1500억달러가 넘는 투자금이 몰렸다. 블랙록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비트코인을 갖고 있는 기업인 스트레티지(MSTR) 지분율을 5%까지 끌어올렸다. 일본판 스트레티지로 불리는 메타플래닛은 연말까지 비트코인 1만개를 비축하겠다고 나섰다.

국내에선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가상자산 현물 ETF 거래를 막아놓은 탓에 투자자들은 연쇄 '코인 이민'에 나서고 있다. '똑똑한' 규제는 필요하다. 하지만 숨통을 끊어놓는 규제는 스스로를 파괴시킨다. 프로크루스테스는 테세우스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당하고 죽었음을 상기해야 할 때다.

[박용범 증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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