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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칼럼

[충무로에서] 불 꺼지는 연구소

이재철 기자
입력 : 
2025-02-10 17:22:01
수정 : 
2025-02-10 20:5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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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설립된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는 한미 협력의 결과물이었으며, 한국 경제의 도약에 기여한 핵심 기관으로 자리잡았다.

현재 미국의 국제개발처(USAID) 폐지 논의는 한국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이에 기업들은 유연한 규제 적용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정치권은 이러한 심각한 경제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한국의 혁신 기업들이 해외로 이주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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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태동한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는 한미 합작의 성과물이었다.

해방과 전쟁 후 폐허가 된 한국을 재건하기 위해서는 물적 인프라와 함께 '사람'이 다시 서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고 미국의 지원으로 KIST가 발족했다. KIST가 과학 인재 배출의 중심에 서면서 기업들은 반도체·자동차·조선·철강·통신 등 고부가가치 산업에 도전할 수 있었고, 한국 경제는 세계가 경악할 속도로 지금의 자리에 섰다.

공교롭게도 KIST를 비롯해 한국 경제 도약에 도움을 준 미 국제개발처(USAID)가 도널드 트럼프 집권 2기에서 존폐 위기에 내몰렸다. 상생과 협력이 아닌, 승자 독식을 선호하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폐업 1호 부처로 지목된 것이다.

돈 없고 힘없는 약소국에 성장의 발판이 됐던 USAID의 폐지 위기에서 아련함과 동시에 그 유산이 깃든 한국 경제가 글로벌 혁신 경쟁에서 벼랑 끝에 몰리고 있음을 절감하게 된다.

단적으로 기술 혁신의 심장부였던 KIST는 그 당당한 이름만큼이나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소'라는 별명이 붙는다. 여기에 녹아든 피·땀·눈물의 서사는 성공을 위해 달려온 한국 경제의 여정과 맞닿아 있다.

USAID의 폐지 논의는 그간 미국이 보여온 최소한의 이타주의 영향력조차 포기할 것임을 가리킨다. 이 거친 움직임을 볼 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라는 호혜의 산물도 언제든지 백악관 휴지통에 버려질 수 있다.

급변하는 교역 환경에서 한국 경제가 살길은 다른 나라 상품으로 대체될 수 없는 격차를 갖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업들은 유연한 규제 적용을 절규하고 있다.

그런데 정치권은 작금의 비상 경제 상황을 심각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단적으로 최근 딥시크발 인공지능(AI) 혁신 쇼크가 터지자 거대 야당 대표가 뒤늦게 주 52시간 근무제 적용에 유연한 입장을 내비쳤다.

이후 당내 논의에서 당 대표가 말한 방향성은 없던 일이 됐다. 올바른 답이 보임에도 규제 완화로 기업에 특혜를 줄 수 없다는 진보 정치의 멘탈리티가 확인되는 장면이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의 반기업 진보주의 정서에 염증이 난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대거 트럼프 편에 섰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강직 규제에 지친 태극마크 기업들은 향후 한국의 정치 지형까지 계산하며 미국행을 검토할 것이다.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소'를 특혜로 보는 정치가 기득권을 쥔 나라에서는 딥시크, 엔비디아 같은 혁신 기업조차 폐업을 택할 것이다.

[이재철 글로벌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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