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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칼럼

탄핵 심판이 재판관 성향과 무관하다는 그 거짓말 참말인가?[노원명 에세이]

노원명 기자
입력 : 
2025-02-02 10:08:21

뉴스 요약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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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의 문형배 권한대행은 탄핵 심판이 재판관 개인의 성향에 좌우되지 않는다고 강조하며, 헌재가 민감한 정치적 사안에 대한 판단을 객관적으로 수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헌재의 결정은 보수와 진보 성향의 재판관들 간의 대립이 드러나고, 이는 법적 판단이 아닌 정치적 성향이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에 대해 헌재가 결정을 내리는 현재의 시스템은 민주주의 원칙에 부합하지 않으며, 탄핵 심판을 헌재 대신 의회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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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정 내부
헌법재판정 내부

“탄핵 심판은 재판관 개인 성향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정치 성향을 놓고 논란이 이는 가운데 헌재가 내놓은 공식 답변이다. 천재현 헌재 공보관은 지난 31일 “대통령 탄핵 심판 심리 대상은 피청구인(윤 대통령)의 행위가 헌법이나 법률에 위배되는지와 그 위반 정도가 중대한지 여부”라며 “이에 대한 판단은 헌법과 법률을 객관적으로 적용해 이뤄지는 것이지 재판관 개인 성향에 의해 좌우되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헌법과 법률의 객관적 적용! 그 말을 믿고 싶지만 믿을 수 없다.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심판 결론은 4대4로 갈렸다. 그 심판의 쟁점은 방통위의 ‘재적위원’을 현재 시점에 적(籍)을 둔 위원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방통위 법규에 규정된 위원의 정원수로 볼 것인지에 대한 해석이었다. 또 그 해석이 방통위원장을 탄핵할 만큼 중대한 사안인지가 중요했다.

재적위원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내 나름의 판단기준이 있지만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어떤 결론을 내리든 법적, 규범적, 언어적 사고의 결과물이면 된다. ‘재적위원’을 정의하는데 정치관, 세계관이 개입할 여지는 없어 보인다. 그런데 보수·중도 성향 재판관 4명은 ‘현재 시점에 적을 둔 위원’이라고 봤고 진보 성향 재판관 4명은 ‘방통위원 정원’으로 보았다. 또한 보수·중도 성향에 속한 한 재판관은 ‘설령 해석이 잘못됐다한들 방통위원장을 파면할 정도의 사안이 못 된다’는 보충의견을 낸 반면 진보 성향 4명은 “국민의 신임을 박탈해야 할 정도로 중대하다”고 썼다. 보라. 헌법과 법률을 객관적으로 적용하면 이런 결과가 나온다. 당·파·성!!!

재작년 3월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 과정에 대한 권한쟁의 심판이 5(기각)대 4(인용)로 기각됐다. 검수완박법 처리를 위해 민형배 의원이 더불어민주당을 ‘위장 탈당’한 것을 두고 보수 성향 재판관 4명은 “다수결 원칙을 규정한 헌법 49조를 위반했다”고 봤다. 진보성향 4명은 “합법하다”고 했다. 진보성향의 나머지 한 재판관은 위장 탈당으로 인한 국회의 권한 침해를 인정하면서도 “국회의 기능을 형해화할 정도에 이르지 않았다”며 기각 편에 섰다. 헌법재판관이 참고하는 것은 법률인가. 철학인가. 정치인가.

헌법재판소의 문제는 사법의 가면을 쓰고 정치를 한다는 데 있다. 대통령과 국회, 사법부가 각 3인씩 행사하는 재판관 지명권은 헌법재판관의 정치 성향을 규정하고 그들은 이 꼬리표가 지시하는 방향대로 판결한다. 나는 오래전부터 헌법재판관을 헌재에 파견된 제 정파의 ‘대표선수’, 법복을 입은 정치인으로 생각해 왔다. 그중에는 대법관이 될만한 자질의 인물도 있지만 ‘정파성’ 때문에 선택된 인물이 더 많다. 정파가 헌재에 파견할 선수를 선발할 때 재판관으로서의 자질이 중요하겠는가. 정파적 선명성이 중요하겠는가.

헌재가 최상위 정치행위자로 기능하는 현상을 정치학자들은 ‘정치의 사법화’ ‘제왕적 사법부’ 등으로 개념 짓는다. 이 나라 대통령의 운명이 노무현, 박근혜에 이어 윤석열 대통령까지 벌써 세 번째 헌재에 맡겨졌다. 당장 헌재가 처리해야 할 공직자 탄핵심판만 9건이다. 정치로 해결해야 할 일이 죄다 헌재로 가고 있다. 그 헌재는 ‘헌법과 법률을 객관적으로(혹은 주관적으로) 적용한’ 정치를 하고 있다.

이런 현상의 폐해는 첫째 정치를 영원히 미성년 혹은 한정치산에 머물게 하는 것이다. 정당은 자기들끼리 치고받다가 헌재로 쪼르르 달려가서 일러바치는 아이들처럼 행동한다. 둘째 ‘정치의 사법화’는 필연적으로 ‘사법의 정치화’를 부른다. 헌재 권력이 비대해지는 것에 반비례해 왜소해지는 것은 사법부의 권위다. 최상위 법인 헌법재판이 당파성에 따라 결론난다면 나머지 법의 심판이 그러지 말라는 보장이 어디 있는가. 한때 법원 판결은 시비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작동하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은 어림도 없는 소리다. 사법의 권위가 없기 때문이다. 정치가 사법에 의존할수록, 그래서 사법이 정치의 가르마를 타면 탈수록 권위는 없어진다. 그래서 저질의 정치는 반드시 저질의 사법을 낳는다.

헌재가 탄핵심판권을 갖는 것은 민주주의 원칙에도 반한다. 도대체 헌법재판관이 뭐라고 그들에게 국가 운명을 신탁하는가. 그들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다. 선출된 권력을 비선출 권력이 심판하는 것은 모순이고 적어도 민주주의는 아니다. 세 번째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어떤 결론이 나든 ‘헌재가 뭔데’라는 여론이 비등할 것이다. 행사하는 권력에 비해 그를 지탱하는 정당성이 너무 왜소하다. 그런 자각이 이번 탄핵심판에 이르러 일기 시작했다.

미국은 하원이 통과시킨 탄핵소추안을 상원에서 심판한다. 47대에 이르는 대통령제 역사에서 상원에서 탄핵당한 대통령이 단 한명도 없었다는 사실은 미국의 정치 수준을 보여준다. 볼 장 다 보기 전에, 정치 공간 안에서 해결하는 능력이 있다. 역대 대통령중 상원 탄핵에 가장 근접했던 인물은 닉슨이다. 그는 ‘상원 통과가 유력하다’는 원내 대표의 말을 듣고 자진하야를 택했다.

우리도 탄핵 심판을 헌재에 맡길 것이 아니라 의회로 갖고 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정치는 어른스러워지고 사법부는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그게 되려면 상원 의회가 필요하고 개헌을 해야 한다. 이때 상원을 미국처럼 정당 기초로 가져갈지, 다른 대안이 있을지는 숙고의 대상이다. 한국식 정당정치에 염증이 난 나머지 선출된 현인들로 로마식 원로원을 꾸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보지만 현실적으로는 정당 기초가 맞을 것이다. 어떻게 설계하든 상원이 하원보다 덜 분열적이고 어른스러우면 지금보다는 낫다. 그 상원이 내리는 탄핵심판 결론은 헌재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권위를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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