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 위상 높이기 적극 행보
韓은 탄핵 여파에 완전 소외
글로벌 경쟁 도태될까 우려

마하티르 모하맛 말레이시아 총리는 2003년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의 스타였다. 그는 개막 연설에서 “일방적인 힘의 논리로 적을 박멸하려는 미국의 강경책은 실패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9·11 테러의 충격 속에 이라크 압박에 나선 세계 최강국 미국을 향해 일침을 가한 것이다. 슈퍼파워에 맞서는 제3세계 옹호자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면서 마하티르는 24년 장기 집권의 동력을 얻었다. 2017년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8년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다보스포럼에 등장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올해도 아시아 정상들이 대거 모습을 드러냈다. 태국의 역대 최연소 총리이자 탁신 전 총리의 딸인 패통탄 친나왓을 비롯해 베트남, 말레이시아, 방글라데시 수장들이 다보스를 찾아 글로벌 위상 높이기에 열을 올렸다. 공교롭게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과 개막 시기가 겹쳐 서방국 빅샷들의 참여가 주춤했지만 새로운 스타를 꿈꾸는 아시아 리더들이 다보스의 빈자리를 채운 셈이다.
이곳에 도착한 포럼 참석자들은 한결같이 두 가지에 놀랐다. 하나는 예상보다 따뜻한 날씨. 두터운 겨울옷을 껴입고 온 사람들은 외투를 벗고 거리를 활보했다. 눈이 오지 않아서 주변 스키장을 찾는 손님들도 줄었다고 한다. 한 기업인은 “날씨가 이렇게 따뜻한 게 마냥 좋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기후변화를 실감한 탓이다. 또 하나는 엄격한 도로 통제. 행사 반대 시위대에 대한 검문이 강화돼 취리히에서 차로 2시간이면 도착했던 게 4시간 가까이 걸렸다. 이로 인해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하는 참석자들이 속출했다.
포럼의 명성이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도 받지만 글로벌 기업들의 참여는 여전했다. 다보스 최대 번화가인 프롬나드 거리는 20일(현지시간) 포럼 개막과 함께 넘치는 인파로 북적였다. 빅테크 기업과 컨설팅사를 비롯한 다국적 기업들의 홍보관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살인적인 물가와 불편한 교통을 감수하면서도 스위스 휴양지 다보스를 찾는 이유는 ‘기회 발굴의 장’이기 때문이다. 행사장을 찾은 모 대기업 대표는 “4박 5일 체류 중 30개에 달하는 비즈니스 미팅을 잡아 놨다”며 “해외 출장 3~4번을 다녀온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한국 정부는 올해 철저히 소외됐다.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 사태의 여파로 중앙정부 인사들이 모두 불참할 뻔했다가 정인교 통상교섭본부장의 참석으로 간신히 명맥을 유지했다. 추락한 한국의 현실을 보는 것 같아 씁쓸했다.
다보스를 방문한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세계 지도자들과 한국 지도자들의 고민이 너무나 동떨어져 놀랐다면서 정말 큰일이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미래를 향해 내달려도 부족할 판에 ‘우물 안 개구리’ 식의 집안싸움에 빠져 역주행하고 있다는 얘기다. 누가 잘못했는지를 가리는 것도 필요하겠으나, 생존 기로에 선 한국엔 미래를 챙기는 대승적 행보가 절실하다.
우리는 바깥으로 눈을 돌려 세상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새로운 시대정신은 무엇인지, 어떤 기회와 위기 요인이 있는지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그게 스몰 오픈 이코노미 한국의 숙명이다.
다보스포럼은 미래 성장과 번영의 대안을 찾는 논의로 뜨겁다. 포럼 창시자인 클라우드 슈바프 회장은 올해 ‘지능화 시대를 향한 협력’을 강조하면서 노익장을 과시했다. 이번에 인공지능(AI)의 일상화를 선언한 것이다.
그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화두를 2016년에 제시하면서 이목을 끌었다. 당시 웬만한 한국의 지식인들이 이 책을 옆구리에 끼고 다녔다. 한국은 이렇게 트렌드를 쫓아가는 데 빠른 나라였다. 이런 한국이 탄핵 사태와 함께 멈춰 섰다. 숨가쁜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국가는 금세 도태되고 만다. 한국의 지도자들이 자꾸 해외로 눈을 돌려 미래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