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테크 인재영입 수단 H-1B 비자
트럼프 2기 들어 대폭 확대될 조짐
비자 개편땐 韓 공대생 이탈 가속
주식보상 등으로 인재 붙잡을 필요
트럼프 2기 들어 대폭 확대될 조짐
비자 개편땐 韓 공대생 이탈 가속
주식보상 등으로 인재 붙잡을 필요

최근 실리콘밸리 성공의 또 다른 비밀이 밝혀졌다. 바로 H-1B 비자다. 일론 머스크를 비롯해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내 테크업계 인사들이 다 같이 H-1B 비자 확대를 지지하고 나서면서 공공연하던 비밀이 이제는 '공식적인 사실'이 돼버렸다.
H-1B 비자는 과학·기술·공학·수학 등 고숙련 전문직 외국인에게 최대 6년간 체류를 허가하는 취업 비자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해외 엔지니어들을 채용하는 데 주로 쓰인다. 매년 8만5000개의 쿼터가 있고, 쿼터를 넘은 경우 추첨을 통해서 발급되기 때문에 비자를 얻기가 매우 어렵다.
반면 기업 입장에서는 우수한 엔지니어를 저렴한 비용으로 채용할 수 있다. 해고되면 바로 본국으로 돌아가야 하므로 고용주에게 막강한 힘이 주어진다.
그런데도 인도를 비롯해 개발도상국의 우수한 엔지니어들은 H-1B 비자를 얻기 위해 줄을 선다. 미국 기업에 취업해 영주권을 획득하면 미국에서 살 수 있고, 자녀를 미국에서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미 이민국에 따르면 지난해 H-1B 비자 중 약 3만개를 아마존·구글·메타 같은 빅테크 기업이 받아갔다. 실리콘밸리에서 토요일에도 일요일에도 출근해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H-1B 비자를 받은 외국인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유능한 사람들을 절박하게 일하도록 만들면서 이들을 상대적으로 싸게 고용할 수 있으니 기업에는 정말 좋은 비자다.
H-1B 비자를 과거에는 인도 정보기술(IT) 아웃소싱 기업들이 악용했다. 이들이 미국에 법인을 세우고 대규모로 비자를 신청해 저렴한 인도 프로그래머를 고용하는 데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는 트럼프 1기에 H-1B 비자 발급이 까다로워지게 하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H-1B에 대한 입장은 완전히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이제 H-1B 비자를 통해 IT 아웃소싱 기업들이 아니라 빅테크 기업들이 더 많은 혜택을 본다. 트럼프 행정부에 들어온 실리콘밸리 출신들은 이를 더 확대하려고 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지금 미국은 자국에서 반도체 등 첨단 제조업을 육성해야 한다. H-1B 비자를 통해 이 분야의 인재들을 끌어들일 필요가 있다. 실제로 미국 반도체 업계는 지난해 1월 반도체 인력을 채용하기 위한 특별 비자를 만들어 달라고 정부에 건의하기도 했다. 이들이 채용하려는 대상은 결국 한국·대만·일본의 우수한 엔지니어들이다. 이미 2023년 기준 H-1B 비자 발급자의 1%가 한국 국적자로, 전체에서 5위를 차지하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쿼터 제한을 확대하고 인도에 쏠린 구조를 개혁할 경우 우리나라 공대를 졸업한 우수 엔지니어들이 미국으로 대거 유출될 수 있다. 한국에서 의대 졸업생들과 비교해 상대적인 박탈감에 빠진 공대생들이 이미 실리콘밸리로 많이 넘어오고 있다. 이 상황이 더욱 가속화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엔지니어 유출을 막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실리콘밸리식 주식 보상 제도를 도입해 직원들에게 주식을 제공하거나 쉽게 창업하고 기업을 엑시트해서 엔지니어들이 '부자'가 되는 사례를 만들어줘야 한다. 망가진 지금의 한국 자본시장을 고치는 것이 급선무다.
[이덕주 실리콘밸리 특파원 mrdjlee@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