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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칼럼

‘화폐의 탈국가化’ ‘프라이버시 존중’ 어디로 [편집장 레터]

김소연 기자
입력 : 
2024-11-24 2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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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의 탈국가化’ ‘프라이버시 존중’ 어디로 [편집장 레터]“중앙정부가 발행하는 화폐로 인한 금융 불안과 주기적인 시장 붕괴에 따른 피해를 왜 개인이 떠안아야 하는가?”

비트코인 창시자로 알려진 사토시 나카모토가 비트코인을 선보이며 한 얘기입니다. 사토시는 단지 한 나라의 화폐에 불과한 달러의 신용경색이 전 세계 경제를 얼어붙게 만들고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고통의 늪으로 빠져드는 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했죠.

‘블랙먼데이’로 불리는 2008년 9월 15일 월요일. 그날 자정즈음 미국 4위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가 미국 뉴욕 남부지방법원에 파산 신청을 했죠. 같은 날, 월가 최대 증권사였던 메릴린치는 BoA에 팔렸습니다. 그렇게 글로벌 금융위기가 시작됩니다.

그로부터 한 달 뒤인 2008년 10월 31일,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이름으로 수백 명의 암호학 전문가와 금융, IT 전문가에게 한 통의 e메일이 도착합니다. A4용지 9장 분량 첨부문서가 ‘비트코인 백서’였는데요. 백서에는 비트코인이 통화 금융 세력의 패권적 횡포이자 금융자본주의의 본질적 문제인 ‘신뢰 부족, 빈부 격차, 금권 정치, 인플레이션, 통화 교란으로 인한 금융위기’ 등에 맞서 싸우는 세계 화폐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 담겨 있었다네요. ‘기존의 금융기관을 통하지 않고’ ‘직접’ ‘온라인을 통해’ ‘결제를 가능하게 하는’ ‘P2P 전자화폐 시스템을 고안하였다’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비트코인을 ‘무정부주의 화폐’라고도 부릅니다.

이처럼 암호화폐는 탄생부터 심오한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위의 얘기는 ‘화폐의 탈국가화’고 또 다른 철학은 ‘개인의 프라이버시 존중’이죠. ‘사이퍼펑크(cypherpunk)’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cypher’와 ‘저항(punk)’의 합성어로 ‘사회적, 정치적 변화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암호 기술 및 이와 유사한 방법을 활용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사이퍼펑크는 커뮤니케이션 자유와 정보 평등을 통해 해방의 도구가 될 것으로 여겨진 인터넷이 오히려 전체주의의 도구가 돼버림으로써 인류 문명을 위협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합니다. 실제 인터넷 시대가 되면서 개인이 어딜 방문하고 무엇을 사고 어떻게 돈거래를 하는지가 모두 노출되기 시작했으니까요. 이를 두고 사람들은 “진정한 조지 오웰의 ‘1984’ 세상이 도래했다”고 냉소적으로도 표현합니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금전 거래 내역’ 역시 매우 보호해야 할 프라이버시로 간주했고 개인의 거래 정보를 기업과 국가가 확인할 수 없게 하는 암호화폐 개발에 열중했다고 알려졌습니다.

요즘 여러모로 헷갈립니다. 아무도 비트코인이 세상에 왜 나왔는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에는 일절 관심이 없습니다. ‘양극화로 신음하는 이 시대에 마지막 돈 벌 기회’ 정도로 여겨지는 비트코인 열풍에 어떻게 올라탈 것인가만 모두의 관심사죠. 심지어 국내 가상화폐 거래 금액이 코스피와 코스닥 주식 시장 전체 거래 대금을 훌쩍 뛰어넘는 이례적인 현상까지 빚어지는 와중입니다. 그래서 찾아는 봤습니다. ‘넥스트 비트코인’이 무엇인지. 씁쓸함은 맘속에만 가둬두고 솔라나와 리플과 온갖 밈 코인을 사러 가야 하려나요(p.26~38).

[김소연 편집장 kim.soye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6호 (2024.11.27~2024.12.0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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