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업계 10년 이상을 전문기자로 뛰고 있는 기자에게 심사권을 준다면 무조건 '한국'에 한 표를 던지겠다. 팔이 안으로 굽어서가 아니다. 문학계에 한강이라는 존재가 있다면, K여행가에는 영원한 극강의 테마, 불로 투어가 있다. 누구나 꿈꾸는 이 불로 코스가 이미 한국에는 촘촘히 짜여 있다. 늙지 않는 여행이라는데, 그야말로 '노벨 여행상'감 아닌가.
넘버원 핫스폿은 청와대 산책로인 소정원 입구의 '불로문(不老門)'이다. 여행고수들만 아는 이 핫스폿은 수많은 해외 정상들을 홀렸다. 미국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한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의 부인 멜라니아 여사도 '불로문'에 푹 빠졌던 정상 중 한 명이다. 2017년 방한 때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가 산책을 하면서 "이 문 아래를 지나게 되면 영원히 늙지 않는다"고 귀띔하자, 멜리니아 여사가 "그렇다면 꼭 지나가야겠다"며 여러 번 오갔다는 후문이다.
청와대로 이어지는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안에도 불로문이 있다. 외국인들이 워낙 열광하다 보니 주의사항이 붙어 있다. '절대 만지지 말라'는 것. 시설물을 해칠까봐 서울시에서 붙여놓은 경고문이다. 사실 불로문 원조는 창덕궁이다. 후원 연경당으로 들어가는 길에 세워져 있다. 가로 약 2.5m에 통돌 하나를 'П'자 모양으로 깎아 만든 문이다. 상단에 한자 전서체로 '불로문'이라 쓰여 있다. 스토리도 흥미롭다. 16세기 말 조선 숙종 때로 돌아가보자. 예종(20세), 인종(31세), 명종(34세), 현종(34세) 등 이전 왕들이 젊은 나이에 요절을 하면서 조선 왕실은 비상이 걸린다.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아 이 문을 세운 것이다.
아예 동네 전체를 '불로 투어' 메카로 미는 곳도 있다. 강원도 양구라는 지역이다. 양구는 묘하게 '한반도의 배꼽'에 위치하고 있다. 인체의 배꼽은 단전과 연결된다. 기(氣)가 모인다. 이곳 휘몰이 조형물은, 기의 움직임을 상징한다. 한반도의 중심이니, 그 기의 강도야 말할 필요가 없을 터. 이 일대 트레킹 코스에 '10년 장생길'이라는 수식어까지 붙어 있을 정도다.
백제의 역사를 품은 충남 부여에는 천년 역사의 사찰 고란사 '불로 약수'가 유명하다. 한 번 마시면 3년이 젊어진다는 영생의 약수다. 이 약수를 마시기 위해 고란사를 찾는 이가 연간 70만명에 달할 정도니 참으로 불로 투어에 대한 열망, 뜨겁다.
허무맹랑한 얘기라고? 아니다. 최근에는 여행만으로도 노화를 늦출 수 있다는 연구 결과까지 나왔다. 호주 에디스카원대 연구진이 '관광연구저널'을 통해 밝힌 결과인데, 핵심은 이렇다. 여행을 통해 접하는 새로운 환경은 스트레스 반응을 자극하고 대사 속도를 높인다는 것.
이참에 노벨위원회 관계자 분들께 고한다. 노벨상을 패러디한 이그노벨상까지 있는 마당에 이제는 식상해진 평화, 경제, 문학, 물리, 화학상 말고 새롭게 여행상을 만드는 건 어떠실지. 이번에는 영생을 보장(?)하는 K여행의 진가를 제대로 보게 되실 테니까.
[신익수 여행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