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리고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0.8%로 하향 조정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는 29일 통화정책방향 회의를 열고 금통위원 전원 일치 의견으로 기준금리를 현재 연 2.75%에서 연 2.5%로 0.25%포인트 내리기로 결정했다. 한은은 지난해 8월까지 13차례 연속 최장 기간 기준금리를 동결(연 3.5%)하다 10월부터 통화정책 방향을 완화(금리인하) 기조로 전환했다. 지난해 10·11월 두 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내렸고 올 들어서는 지난 2월에 이어 두 번째 인하다. 직전인 지난 4월 금통위에선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날 통화정책방향문에서 “가계대출 증가세와 외환시장 변동성 확대에 대한 경계감이 여전하지만 물가 안정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성장률이 크게 낮아질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기준금리를 추가 인하해 경기 하방압력을 완화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밝혔다. 내수 부진 완화 속도가 더딘 데다 수출 둔화 폭이 확대될 것으로 예측돼 금리 인하가 불가피하다는 게 금통위 판단이다.
금리 인하에 따른 물가 자극이나 가계대출 증가, 그에 따른 부동산 시장 과열에 대한 우려도 크지 않다고 판단한 모양새다. 일단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한은 목표에 근접한 2%대 초중반에서 움직이며 비교적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가계부채는 다시 상승세이나 오는 7월 3단계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시행과 금융당국 가계대출 관리 강화 등으로 어느 정도 억제될 수 있다고 봤다.
한은은 이날 발표한 수정경제전망에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0.8%로 하향 조정했다. 기존 전망치 1.5%(2월)에서 거의 반토막 났다. 최근 30년간 우리 경제가 1% 미만 성장했던 때는 1998년(-5.1%), 2009년(0.8%), 2020년(-0.7%) 등 세 번이었다. 모두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 글로벌 금융 위기, 코로나 팬데믹 같은 외부 요인이 크게 작용했던 시기다. 지난해 12월 비상 계엄 사태 이후 국내 정치 불안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발(發) 관세 불안 여파가 있었지만 0%대 성장 전망은 이례적이다.
이 총재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올해 0.8% 성장한다고 할 때 내수가 0.8%포인트를 다 기여하고, 순수출 기여도는 0%로 가정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내년에는 순수출 기여도가 -0.3%포인트로 나빠질 것”이라며 “내수 기여도는 1.9%포인트 정도로 가정하는데 어떻게 될지 두고 봐야 한다”고 부연했다.
이처럼 성장률 전망에서 수출이 사실상 성장 기여를 하지 못하거나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향후 수출 흐름이 경기 최대 변수가 될 전망이다. 미국의 상호관세 조치가 일단 7월 초까지 유예됐지만 무역협상 전개 상황에 따라 관세가 더 오를 경우 수출 부진이 심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이달 1~20일 수출액은 320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2.4% 줄었다. 특히 대미 수출이 14.6% 감소하고 품목별로는 자동차 수출이 6.3% 줄어드는 등 미국 관세 부과 조치 영향이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이 총재는 또한 “성장률을 0.7%포인트 낮추게 된 배경을 부문별로 살펴보면 건설의 영향이 가장 컸다”며 “건설경기 침체 심화로 감소 폭이 예상보다 커지면서 성장률 전망치를 0.4%포인트 정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한국 경제는 지난해 2분기 마이너스 성장(-0.2%) 이후 3분기(0.1%)와 4분기(0.1%), 올해 1분기(-0.2%)까지 역(逆)성장하며 회복력을 잃었다. 이 역시 1997년 외환 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2020년 코로나 팬데믹 때도 없었던 일이다.
이날 수정 경제전망에서 한은은 2026년 경제 성장률도 기존 전망(1.8%)에서 0.2%포인트 내려잡은 1.6%로 발표했다. 경제성장률이 2년 연속 1% 안팎에 머무는 것은 관련 통계가 작성된 1953년 이후 처음이다.
시장에서는 한은이 연내 1~3차례 가량 추가 금리 인하를 단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오는 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현 수준에서 동결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고, 가계 부채 폭증 우려도 추가 인하 발목을 잡고 있다. 또한 통화정책만으로 당장 경제가 살아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새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안 편성이나 규제 완화를 통해 경제 살리기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