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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가는 삼성 M&A 시계

배준희 기자
입력 : 
2025-05-20 2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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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단위 거래 8년 만…다음 타깃은 로봇?

최근 수년간 멈춰 있던 삼성전자 인수합병(M&A) 시계가 다시 돌아가고 있다. 미국 마시모(Masimo) 오디오사업부에 이어 유럽 최대 공조기기 업체 플랙트그룹도 품에 안는다. 두 건의 거래에 쓸 돈은 3조원에 육박한다. 삼성전자의 조(兆) 단위 인수합병은 지난 2017년 80억달러(약 9조3000억원)에 인수한 전장·오디오 기업 하만 이후 8년 만이다.

다만 시선은 엇갈린다. 이번 거래는 삼성의 여러 사업부 가운데 주변부(Periphery) 역량 강화를 위한 것으로 반도체 등 핵심 사업부가 속한 중심부 역량과는 거리가 멀다. 연결 기준 삼성의 현금 규모나 사업 단위에 비춰 빅딜보단 ‘미들딜(플랙트그룹)’이나 ‘스몰딜(마시모)’에 가깝단 평가가 나온 이유다. 시장과 재계 일각에선 삼성 M&A가 기술 초격차 확보라는 전략적 일관성 아래 통합적 시각에서 추진되기보다 사업부별 기회주의적 인수(Opportunistic Acquisition)로 흘러가는 행태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삼성전자가 8년 만에 조 단위 M&A를 단행한다. 삼성전자는 지난 5월 14일 영국계 사모펀드 트라이튼(Triton)이 보유한 독일 공조 전문기업 플랙트 지분 100%를 약 15억유로(약 2조4000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플랙트는 100년 넘는 업력을 보유한 프리미엄 공조 시스템 기업이다. 극한 환경에서도 최소 에너지로 쾌적한 공기 질을 구현하는 기술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공조 사업은 지구 온난화, 친환경에너지 규제 등으로 글로벌 수요가 늘고 있다. 글로벌마켓인사이트에 따르면, 2024년 3016억달러(약 420조원)인 냉난방 공조 시장은 2034년 5454억달러(약 760조원)로 커질 전망이다. 특히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부문은 연평균 18%의 높은 성장률이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자회사 하만을 통해 미국 의료기술 기업 마시모 산하 오디오 브랜드도 인수한다. 최근 삼성은 하만이 마시모의 오디오 사업 부문을 넘겨받는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마시모는 2022년 Bowers & Wilkins(B&W), 데논(Denon), 마란츠(Marantz), 폴크오디오(Polk Audio) 등을 보유한 사운드유나이티드(Sound United)를 인수하며 오디오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의료기술 본업 경영 악화로 매각에 나섰다. 삼성은 이 기회를 노려 글로벌 하이엔드 오디오 브랜드를 상대적으로 싼 가격에 확보했다는 평가다. B&W는 뱅앤올룹슨(B&O)에 견줄 프리미엄 브랜드로, 대표 제품 ‘노틸러스’는 1억5000만원에 이를 만큼 가격전가력을 갖췄단 평가다.

삼성이 이 매물에 주목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분석된다.

첫째, 성장성 있는 시장이다. 시장조사 업체 IDC에 따르면, 일반 소비자용 오디오 시장은 2024년 608억달러(약 84조3000억원)에서 2029년 700억달러(약 97조900억원)로 15% 이상 커진다. 자동차용 오디오 시장도 꾸준한 성장이 기대된다. S&P500글로벌에 따르면, 전장용 카 오디오 시장은 지난해 90억3600만달러(약 12조5000억원)에서 2029년 94억4600만달러(약 13조1000억원)로 확대된다. 둘째, 하만의 높은 수익성이다. 2023년 하만 영업이익은 1조3000억원으로, 삼성 TV·가전 부문(1조7000억원)과 견줄 수준이다. 매출은 4분의 1에 불과하지만 수익성은 유사하다. 하만의 성장세가 이어질 경우 연내 역전될 수 있단 전망도 나온다. 셋째, 기존 제품·사업과 시너지다. 이번 인수로 확보한 오디오 기술은 삼성 스마트폰·TV·가전의 사운드 품질을 업그레이드하는 데 쓰일 수 있다. 삼성은 향후 전장 시장 지배력 확대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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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기업 줄줄이 인수

핵심 기술 M&A는 드물어

이번 M&A를 두고 아쉽다는 시선도 존재한다. 모처럼 전해진 M&A 소식에도 시장 반응은 미지근했단 평가가 많다.

무엇보다 공조와 오디오 사업은 삼성 정체성을 규정하는 핵심 기술과 연관성이 낮다. 삼성의 핵심 기술 경쟁력은 메모리·시스템 반도체-파운드리-모바일 제조에 집중돼 있다. 공조나 오디오 사업 확대는 전략적 ‘보완재’ 성격이 짙으며 중심 사업과 연계성은 약하다는 평가다. DS부문(반도체) 부진으로 MX사업부(스마트폰) 공급망 이원화 전략이 사실상 무력화되는 등 ‘내우외환’ 위기를 반전시킬 카드로 보기는 어렵다.

삼성전자는 유독 M&A 성과는 미진하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2018년 하만 외에도 삼성은 루프페이(LoopPay), 스마트싱스(SmartThings), 비브랩스(Viv Labs) 등 강소기업을 인수했다. 하지만 이는 브로드컴이나 퀄컴처럼 전략적 M&A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고도화한 경쟁 기업과는 대비된다. 비교적 성공적인 M&A로 평가받는 하만 역시 삼성 사업 포트폴리오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는 힘들다.

전문가들은 삼성이 핵심 사업부 기술 경쟁력과 직결되는 인수합병에 다소 소극적인 이유를 몇 가지로 분석한다. 첫째, 내재화 기반 기술 철학이다. 삼성은 지금까지 D램, 낸드, 파운드리 등에서 내부 연구개발(R&D)·제조능력의 축적으로 성장을 일궜다. 외부 기술 도입은 대부분 기술 라이선싱이나 합작법인(JV) 형태에 그쳤다. 전직 삼성전자 DS부문 임원은 “삼성은 핵심 기술과 제조 역량을 조직 내부에서 개발하고 소유해야 경쟁 우위가 지속 가능하다고 믿는 경향이 강하다”라고 돌아봤다.

다만, 지금처럼 기술 변화가 불연속적인 환경에서는 내재화 기반 기술 개발과 M&A를 통한 전략적 내재화(Internalization Through Acquisition)를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게 효과적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자체 연구개발에 기댄 100% 내재화 전략만으론 환경 변화 대응력을 높이는 데 한계가 따른다는 것. 특히, 여러 사업부를 거느린 대기업 집단일수록 신생 카테고리에서 빚어지는 기술 변화를 빠른 속도로 수용하고 이를 축적해 완전히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역량이 뒤처진다는 평가다. HBM이 단적인 사례로 지목된다. 삼성은 D램 적층부터 패키징까지 내재화 전략으로 턴키 수주를 노렸으나 기술 개발 속도, 유연성, 협업능력에 밀려 TSMC-SK하이닉스 진영에 뼈아픈 패배를 당했다.

M&A로 축적된 경험이 드물다 보니 인수후통합(PMI·Post-Merger Integration), 조직문화 융합, 인재 통합 등에서 취약하단 평가도 삼성 안팎에선 나온다. AI 석학 승현준 프린스턴대 교수를 비롯해 삼성전자가 의욕적으로 영입했던 외부 인재가 조직에 착근(着根)되지 못하고 줄줄이 이탈한 것도 외부 자원 수용 역량이 구조적으로 약하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익명을 원한 IT업종 애널리스트는 “하만 인수 이후 삼성전자는 JBL, AKG 등 브랜드를 제품군에 일부 통합했지만, 실질적으론 화학적 융합보단 브랜드 병존 수준에 그친 인상이 짙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제약 요인에도 불구하고 M&A를 통한 핵심 역량 고도화는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관건은 로봇·차세대 반도체 등 핵심 사업 부문 후속 M&A다. 산업계와 시장에서는 후속 인수 대상으로 로봇 기업을 꼽는다. 삼성은 지난 2023년 말 대표이사 직속 미래사업기획단 신설에 이어 최근 미래로봇추진단을 뒀고 DX부문 소속 신사업 태스크포스(TF)를 신사업팀으로 격상시켰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2월 로봇 전문기업 레인보우로보틱스 기존 지분(14.7%)을 35%로 늘려 최대주주 지위를 확보한 뒤 자회사로 편입해 로봇 개발에 힘을 쏟는다. 반도체 분야는 M&A 제약 요인이 많아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것으로 시장은 보고 있다. 주요 국가에서 반도체를 전략 산업으로 지정해 사실상 해외 M&A를 막고 있다. 그동안 영국 반도체 설계기업 Arm과 차량용 반도체 기업 인피니온, NXP 등이 인수 후보로 거론됐지만 감감무소식이다.

고태봉 iM증권 리서치본부장은 “AI 데이터센터 발열 제어는 생산성 관리와 직결되는 핵심 기술”이라며 “팹리스 등 반도체 밸류체인에서 대형 거래는 각국 정부 견제가 심해 녹록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10호 (2025.05.21~2025.05.2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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