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부전-94[오리저널-19]디트로이트 피스톤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의 일등공신, 바로 러스트 벨트입니다. 녹슨 지역을 뜻하는 러스트 벨트는 미 동북부에 길게 자리 잡은 전통적 제조업 지구입니다. 노동자가 많아 전통적인 민주당 텃밭이던 이 곳은 산업의 쇠퇴로 많은 사람들이 떠나며 슬럼화됐습니다. 또한 도널드 트럼프는 지난 2016년 민주당 텃밭인 이곳을 공략해 대선 승리를 거머쥐었습니다.
그리고 2024년 2번째 대통령 당선을 거머쥔 트럼프는 다시 한번 러스트 벨트서 승리했습니다. 그리고 러스트 벨트를 대표하는 산업인 자동차 생산의 핵심 도시 디트로이트는 한때 포드, GM, 크라이슬러와 같은 대형 자동차 기업들이 번성해 ‘모터 시티’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번화했던 곳입니다.
하지만 2008년 금융 위기로 GM과 크라이슬러가 파산 위기를 맞으며 자연스레 디트로이트 경제도 크게 나빠졌는데요. 2013년 디트로이트는 미국 도시 역사상 처음으로 파산을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만약 디트로이트에 농구팀이 있다면, 어떤 이름이 어울릴까요? ‘머슬카즈(Muscle Cars)?’ ‘모터스(Motors)?’ 아니면 ‘엔진스(Engines)?’

현재 디트로이트의 농구팀 이름은 그보다 더 상징적이고 강렬합니다. 바로 피스톤스(Pistons)입니다. 이 팀의 이름을 듣는 순간 쉴 새 없이 움직이며 힘을 내는 엔진, 강철로 만들어진 강력한 기계, 그리고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산업이 상상되시죠. 하지만 반전이 있습니다. 사실 농구팀 피스톤스는 디트로이트와 무관한 도시에서 지어진 팀명이란 것입니다.

1941년 인디애나주 포트웨인. 사업가 프레드 졸너는 엔진 실린더 안에서 왕복 운동하는 부품인 피스톤을 제조하는 ‘졸너 피스톤 컴퍼니’를 운영하는 사업가였습니다. 평소 농구에 관심이 많던 그는 그간 번 돈으로 농구팀을 만들기로 결심합니다. 졸너는 자신의 사업과 연결되면서 강인한 이미지를 가진 팀명을 원했습니다. 피스톤은 자동차 뿐 아니라 각종 기계의 핵심 부품으로 끊임없이 움직이는 힘을 만들어주는 기계입니다. 이러한 피스톤은 쉴틈없이 움직이고 슛을 쏘는 농구선수의 이미지와 잘 어울렸고 졸너는 자기 회사 이름을 아예 팀 이름으로 쓰기로 결심합니다. 그렇게 탄생한 농구팀이 바로 ‘포트웨인 졸너 피스톤스(Fort Wayne Zollner Pistons)’입니다. 피스톤스는 엔진 피스톤을 형상화한 깡통 로봇을 로고로 썼습니다.

당시 피스톤스는 NBL(NBL, National Basketball League)에 참가키로 결정했습니다. 1940년대는 전국 곳곳에서 농구리그가 창설되던 시기였습니다. 창단직후 피스톤스는 1944년과 1945년 연속 우승을 차지하며 승승장구를 이어갔습니다. 이후NBL은 BAA(BAA, Basketball Association of America)를 거쳐 1949년 전미농구협회NBA(NBA, National Basketball Association)로 통합됐고 포트웨인은 NBA의 창립 멤버로 합류합니다.
1950년대 중반이 되자, 포트웨인은 프로 스포츠팀을 유지하기엔 너무 작은 시장으로 머물렀습니다. 졸너는 더 큰 무대로 나아가길 원했고, 마침내 1957년 미시간주의 디트로이트로 팀을 이전했습니다.

디트로이트는 당시 세계적인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였습니다. 포드, 크라이슬러, 제너럴 모터스(GM)와 같은 자동차 회사들이 본사를 두고 있었습니다. 팀이 새롭게 자리 잡기에 완벽한 도시였습니다. 게다가 자동차의 핵심 부품인 피스톤은 모터시티 디트로이트에 딱 맞는 이름이었습니다. 굳이 이름을 바꿀 이유가 없었습니다. 포트웨인 시절에는 창립자의 사업과 연결돼 있었다면, 이제는 디트로이트라는 도시의 정체성과 맞아떨어지게 된 것입니다.
피스톤스의 전성기는 1980년대 다시 찾아옵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NBA에서 가장 거칠고 강력한 플레이 스타일을 가진 팀으로 평가받았는데요.

이 시기를 대표하는 디트로이트의 별명이 바로 ‘배드 보이즈(Bad Boys)’였습니다. 아이재아 토마스(Isiah Thomas), 빌 레임비어(Bill Laimbeer), 데니스 로드맨(Dennis Rodman), 릭 마혼(Rick Mahorn) 등이 주축이 된 이 팀은 거친 수비와 몸싸움을 앞세워 상대를 압박하는 플레이 스타일로 유명했습니다.
당시 NBA는 매직 존슨(Magic Johnson)과 래리 버드(Larry Bird) 같은 스타들이 주도하는 화려한 농구가 중심이었지만, 피스톤스는 정반대의 방식으로 성공을 거뒀습니다. 피스톤스는 상대를 철저히 괴롭히고, 거친 몸싸움을 서슴지 않으며 승리를 쟁취했습니다.
1989년과 1990년, 피스톤스는 2년 연속 NBA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이는 NBA 시작 후 팀 역사상 처음으로 이룬 쾌거였습니다. 배드 보이즈 시절의 피스톤스는 ‘강철 같은 정신력’과 ‘멈추지 않는 기계’를 연상시키며, 피스톤스라는 이름이 가진 의미를 더욱 강화했습니다.
오늘날 디트로이트 피스톤스는 예전만큼 강력한 팀은 아니지만, 여전히 그 이름이 가진 의미는 변함이 없습니다.
피스톤스라는 이름은 단순한 팀명이 아니라, 디트로이트라는 도시의 산업적 배경과 하드노즈(거친 스타일) 농구 철학을 모두 담고 있는 상징이입니다.

그리고 바닥을 기던 디트로이트의 팀 성적 역시 최근 좋습니다. 끊임없이 움직이며 강한 힘을 내는 피스톤처럼, 피스톤스도 다시 한 번 강력한 팀으로 돌아올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