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극도로 침체된 지방 건설 경기를 활성화하기 위한 대책을 내놨다. 악성 재고로 남아 부동산 시장 골칫거리로 전락한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를 직접 사들이기로 했다. 지방 건설 경기 침체가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자 내놓은 ‘긴급 처방’이지만 벌써부터 논란이 거세다. 매입 규모가 기대만큼 크지 않은 데다 ‘언 발에 오줌 누기’식 대책이라 근본적인 해법이 되긴 어렵다는 지적이 적잖다.

정부, 미분양 대책 내놔
LH, 미분양 아파트 3000가구 매입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정부서울청사에서 민생경제점검회의를 열고 지역 건설 경기 보완 방안을 내놨다.
핵심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지방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 3000가구를 직접 사들이기로 한 대목이다.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는 말 그대로 준공 이후에도 팔리지 않아 ‘악성 미분양’으로 분류된다.
LH는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를 분양가보다 낮게 사들인 뒤 분양전환형 공공임대주택인 ‘든든전세’로 공급할 계획이다. 든든전세 세입자는 인근 시세의 90% 수준 보증금을 내고 살다 6년 뒤 원하면 분양받을 수 있다. 매입 재원은 기존 매입임대주택 관련 예산 3000억원을 활용한다.
LH는 앞서 2008~2010년에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지방 미분양이 심각해지자 지방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 7058가구를 매입했다. 당시에는 분양가의 70% 수준으로 매입했는데 이번에는 매입 가격이 어떻게 정해질지 건설 업계 이목이 쏠린다.
LH가 15년 만에 ‘미분양 구원투수’로 나선 것은 정부 개입 없이는 도저히 미분양 문제를 해소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전국 미분양 아파트는 7만173가구로 2012년 말(7만4835가구) 이후 12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 중 전국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은 2만1480가구(지난해 12월 기준)로 2만가구를 훌쩍 넘어섰다. 2013년 11월(2만1751가구) 이후 11년 만에 최대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최근 신동아건설, 삼부토건, 안강건설뿐 아니라 대저건설, 신태양건설, 제일건설 등 지방 주요 건설사들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등 찬바람이 불고 있다. 이뿐 아니다. 정부는 민간자금 유입을 촉진하기 위해 2020년 8월 폐지된 ‘매입형 등록임대 아파트’ 제도를 다시 꺼내들었다. 정부는 현재 비아파트에만 허용된 매입형 등록임대를 전용 85㎡ 이하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에 다시 도입한다. 미분양 아파트를 매입해 임대사업자로 등록한 뒤 의무임대기간인 10년을 채우면 종합부동산세 합산 배제, 양도소득세 중과 배제 등 각종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지방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을 구입할 경우 자금 부담을 낮추기 위해 디딤돌대출 금리를 0.2%포인트 인하하기로 한 점도 눈길을 끈다. 다만 이번 대책에 여당이 요구한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완화 방안은 포함되지 않았다. 정부는 오는 4~5월 중 DSR 완화 여부를 다시 논의하겠다며 여지를 남겼다.
지방 미분양 주택을 매입·운영하는 기업구조조정(CR)리츠도 올 상반기 출시한다. CR리츠는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아 미분양 아파트를 임대로 운영하다, 부동산 경기가 회복되면 매각해 수익을 내는 투자 회사다. 정부가 2014년 이후 10년 만인 지난해 3월 다시 부활시켰다.
건설 일감을 늘리기 위해 총사업비 4조3000억원 규모인 부산, 대전, 경기도 안산 등의 철도 지하화 사업도 속도를 낸다. 올해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의 70%인 12조5000억원을 상반기에 집행하기로 한 점도 눈길을 끈다. 도로 예산 2조5000억원(연간 총액 4조2000억원)과 철도 예산 2조1000억원(총 4조1000억원)이 1분기에 집행된다.
자금난을 겪는 건설사 지원 방안도 내놨다. 채권시장안정펀드, 회사채 매입 등 시장 안정 프로그램을 통해 건설사에 최대 5조원의 유동성을 지원한다. 건설사가 준공 기한을 넘기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장의 채무를 떠안는 ‘책임준공’ 부담을 완화해주는 방안도 조만간 내놓을 예정이다. 책임준공이란 PF 대출을 일으킬 때 신용이 약한 영세 시행사를 대신해 시공사가 기한 내 준공할 것을 보증하는 제도다. 하루라도 기한을 지키지 못하면 시공사가 PF 대출 전액을 인수해야 해, 과도한 부담을 떠안는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이번 정부 대책은 부동산 시장 침체 국면에서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까. 일단 건설 업계 반응은 미지근하다. 악성 미분양 아파트 3000가구 매입은 지역 건설사에 잠시 숨통을 열어줄 것이라면서도 지방 부동산 수요를 적극적으로 촉진할 방안은 포함되지 않아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평가다. 곪을 대로 곪은 지방 미분양 문제를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우려다.
우선 이번 대책 핵심인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 3000가구 매입은 지역 건설사의 자금난 해소와 일감 확보에 초점을 맞췄다. 악성 미분양이 쌓여 자금 흐름이 막힌 건설사에 유동성을 지원하는 것이 골자다.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 물량의 무려 80%인 1만7000여가구가 지방에 집중된 상황에서 LH가 일부라도 매입해준다면 자금난 해소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다.
다만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찮다. LH가 매입하는 물량 3000가구는 전체 지방 준공 후 미분양의 17% 수준에 그친다. 넘쳐나는 지방 악성 미분양 주택 물량에 비해 올해 LH가 매입할 물량이 적어 효과가 제한적일 것이란 진단이다.
정부 민생경제점검회의에 참석했던 정원주 주택건설협회 회장(대우건설 회장)은 “지방 준공 후 미분양이 급증하고 있고 지역 건설사 경영난으로 하도급 업체의 연쇄 부도가 우려되는데 3000가구 매입으로는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며 “매입 물량을 내년까지 2만가구로 늘리고 DSR 규제 완화, 미분양 취득 시 취득세 중과 배제 등 특단의 수요 활성화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LH가 매입 물량을 늘린다고 해도 시행사 입장에서는 미분양 아파트를 기존 분양가보다 저렴하게 내놓을수록 매입 확률이 높아지는 ‘역경매’ 방식이라는 점도 부담이다. 자금난에 시달리는 시행사로서는 미분양이 쌓여 금융 비용이 급증하는 것보다야 헐값에 처분해서라도 유동성을 확보하는 것이 유리하기는 하다. 하지만, 이미 기존 가격을 온전히 치르고 집을 분양받은 소유자 반발을 잠재울 방안이 마땅치 않다.
충남 아산에서 1500여가구 규모 아파트 단지를 짓고 있는 A시행사 대표 정 모 씨는 “(LH 매입 지원은) 시행사와 건설사 모두가 합의해야 하는 사안이고, 입주자 반발도 거세 결정이 쉽지는 않다”며 “재정적으로 유동성 확보가 시급한 업체들만 응할 것”이라고 전했다. 정 씨는 이어 “준공 전이더라도 분양률이 현저히 저조하면 계약금·중도금·잔금이 걷히지 않아 공사비 납입이 어려운데 LH 매입안은 준공 후 미분양 주택에만 초점이 맞춰져 아쉽다”고 덧붙였다.

미분양 대책 효과 낼까
LH 매입 규모 미미…지방 인프라 개선 절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국토부가 선보인 CR리츠도 부동산 경기 침체 상황을 고려하면 기대만큼의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아 미분양 아파트를 임대로 운영하다 부동산 경기가 회복되면 매각해 수익을 낸다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우려다.
고준석 연세대 경영대 상남경영원 교수는 “CR리츠가 급증하는 미분양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며 “리츠가 미분양 아파트를 매입해 이윤을 남겨야 투자자가 모일 텐데 지금은 사들여도 시세차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CR리츠가 다시 도입된 지 1년이 다 돼가지만 아직 눈에 띄는 성과는 드러나지 않고 있다. 국토부에 따르면 현재 영업 등록을 신청한 CR리츠는 전남, 광양 2곳뿐이다. 그나마도 아직 등록이 완료되지 않았다. 지난해 9월과 10월 각각 KB부동산신탁과 JB자산운용이 각각 497가구와 500여가구를 매입하기로 했으나 미분양 사업장을 보유한 사업자와 매입 가격을 두고 협상이 완료되지 않아 등록이 미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CR리츠가 악성 미분양 주택을 사들이면 취득세 중과 배제와 종합부동산세 합산 배제 혜택 등을 제공하지만, 매입가를 협의하는 것이 쉽지 않다. 추가 인센티브 없이는 지방에서 수익을 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진단했다.
무엇보다 이번 미분양 대책은 수요 진작책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가장 많았다. 지방 악성 미분양을 해소하려면 그 지역에 거주하는 실수요자와 다주택자가 참여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들을 유인할 만한 금융·세제 지원 확대 같은 수요 진작책이 눈에 띄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개인이 지방 악성 미분양을 구입할 경우 디딤돌대출에 우대금리를 적용하는 방안도 제시됐지만, 주택 구입 수요를 자극할 만한 수요 진작책으로선 부족하다는 평가다. 지금은 지방 미분양 주택을 매입하려는 수요 자체가 부족한 만큼, 취득세와 양도세 등 각종 세금을 적극 완화해 수요자를 직접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나마 정부가 오는 7월 시행될 3단계 스트레스 DSR을 지방에 한해 차등 적용한다는 내용을 머지않아 발표하기로 한 점은 주목을 끈다. 하지만 이 역시 미분양 해소에 큰 도움이 될지 미지수다. 지방 부유층이 서울 원정 투자에 나서는 상황에서, 서울 대신 지방 부동산 투자 수요가 몰릴 수 있도록 보다 파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다.
양지영 신한투자증권 자산관리컨설팅부 팀장은 “지방은 비교적 주택가액이 높지 않아 대출 한도보다 금리가 상대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다”며 “DSR 규제 완화는 지방 주택 수요를 확대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양도세 5년 감면, 취득세 감면 등의 세제 혜택이나 명문 대학, 대형 병원 확보 같은 지방 생활 인프라 개선 등 실수요자가 생각하는 그 이상의 카드를 내놔야 비로소 시장이 반응할 것”이라고 덧붙인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 의견도 같은 맥락이다.
아파트 등록임대 부활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매입형 등록임대를 전용 85㎡ 이하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에 다시 도입하지만 법 개정이 필요해 국회에서 거대 야당의 협조를 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정부는 2023년 당시에도 아파트 등록임대 부활을 추진했으나 법 개정까지 이어지진 않았다.
[김경민 기자 kim.kyungmin@mk.co.kr, 정다운 기자 jeong.dawo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99호 (2025.03.05~2025.03.1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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