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지털 혁신은 업종을 막론하고 모든 기업에 필수 과제가 되었다. 하지만 많은 기업들, 특히 대규모 생산설비를 보유한 제조업계의 기업들은 그 방법론에 대해서는 여전히 난색을 표한다.
늘 그렇듯이 답은 선도기업들의 현장에서 찾을 수 있다. 제조업의 디지털 혁신 방향을 제시하고자 세계경제포럼(WEF)과 맥킨지는 2018년부터 공동으로 '글로벌 등대공장 네트워크(Global Lighthouse Network·GLN)'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현재까지 전 세계 189개의 등대공장이 지정되었는데 이 공장들은 비교적 단기간인 평균 10개월에서 20개월 사이에 디지털 전환을 실현했고, 투자 대비 2~3배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스마트 공장들의 성공 요인을 분석해보면 결국은 기술(T·Technology), 사업 성과(I·Impact), 그리고 사람(P·People), 이른바 '팁(TIP)'이라는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우선 스마트 공장의 핵심 기반은 무엇보다도 인공지능(AI)을 포함한 첨단 기술이다.
맥킨지 보고서에 따르면 등대공장에서 활용된 주요 기술 중 77%가 분석형 인공지능(Analytical AI), 9%가 생성형 인공지능(Gen AI)으로 나타났다. 제조업 현장에서는 몇 년 전만 해도 파일럿 수준에 머물렀던 인공지능이 이제 다수의 등대공장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내면서 업계의 패러다임 전환을 주도하고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을 활용한 증강현실(AR) 정비 시스템을 도입한 슈나이더일렉트릭의 중국 공장이 그 예다. AR 기술을 활용해 정비 작업자는 장비의 내부 구조를 시각적으로 파악하고, 정비 절차를 단계별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장비의 상태를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고장 가능성을 예측해 적시에 정비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이 시스템을 도입한 후 슈나이더일렉트릭은 평균 수리 시간(MTTR)을 33% 단축했고, 정비 효율을 대폭 개선했다.
기술이 확보되었다면 그다음에는 사업 성과를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 사업 성과가 담보되지 않는 디지털화는 조직 구성원으로 하여금 동력을 잃게 만든다. '잘못된 프로세스를 무작정 자동화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프로세스 개선 없이 기술만 도입할 경우에는 오히려 추가 비용과 자원 낭비를 초래할 수 있다.
등대공장으로 선정된 스마트 공장들은 기술 도입과 동시에 프로세스를 전면적으로 재설계함으로써 '프로세스 부채(Process Debt)'를 줄여왔다. 즉 제조공정에서 기능이 불완전하거나 비효율적인 프로세스를 도입했을 때 발생하는 생산성 저하와 비용 증가를 통제했다는 뜻이다.

코카콜라 싱가포르 공장은 다양한 제품군과 늘어나는 수요 관리를 최적화하기 위해 머신러닝 기반 수요 예측 시스템, 로봇 자동화, 고급 스케줄링 알고리즘을 도입했다. 이를 통해 생산량 28% 증가, 노동 생산성 70% 향상, 품절률 80% 감소, 정시 배송률 31% 개선, 간접 탄소 배출량(Scope 2) 34% 감축의 성과를 거두었다. 기술을 활용해 생산성과 운영 효율성을 극대화하며 다양한 성과를 창출한 대표적인 혁신 사례로 평가된다.
또한 지멘스는 '자산화(Assetization)' 전략을 통해 디지털 기술을 표준화하고 전문지식 유무와 상관없이 누구나 쉽게 재사용할 수 있도록 전체 생산 프로세스를 최적화했다. 이를 통해 축적된 디지털 솔루션을 다양한 생산 현장에 적용하고 시장 변화에 빠르게 대응해 운영 효율성을 높일 수 있었다.
기술과 성과가 확보되었다면 이를 완성시키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공정을 담당하는 사람의 안전은 물론 기술 숙지와 프로세스 이해 등 다양한 요소들이 보장되어야 디지털 전환이 현실화될 수 있다.
실제로 75% 이상의 등대공장이 작업자의 안전, 기술 개발, 업무 효율성 향상, 경험 개선 등 다섯 가지 핵심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디지털 솔루션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인도의 타이어 제조업체인 씨아트(CEAT)는 가상현실(VR)을 활용한 개인 맞춤형 학습 프로그램을 도입해 작업자들의 역량을 강화하고 설비 효율성을 16% 향상시켰다. 또 작업자들에게 피드백을 수집해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신속히 해결하고 프로세스를 지속적으로 개선했다.
중국 저장성 산먼시에 위치한 원전은 로봇에 이미지 분석 알고리즘을 적용해 발전소 점검을 자동화했다. 이를 통해 작업자의 방사능 노출 위험을 최소화하고, 점검의 정확도를 높였다. 이외에도 비상 대응 시나리오를 모방한 디지털 트윈을 활용하여 기존에 5년 이상 소요되던 작업자 교육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고, 작업자 실수에 따른 문제를 88% 감소시켰다.
등대공장이 강조하는 것은 단순한 기술 도입이 아니다. 핵심은 기술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고, 사업 성과를 극대화하며, 사람을 중심에 둔 혁신을 실현하는 전략이다.
포스코가 2018년 국내 첫 등대공장으로 이름을 올린 것을 시작으로 국내 5개 업체의 6개 공장이 등대공장으로 인정받으며 국내 제조업도 디지털 전환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2025년에는 단 한 곳의 국내 공장도 등대공장으로 선정되지 못했다. 이는 국내 제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보다 적극적인 혁신과 변화가 필요함을 시사한다.
한국 제조업이 스마트 공장의 새로운 도약을 준비해야 할 때다. 산업 간 경계를 넘어 다양한 성공 사례를 학습하고 이를 국내 환경에 맞게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균형 잡힌 TIP 전략을 통해 한국 제조업이 글로벌 무대에서 지속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혁신이 진화를 낳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