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장사-28] 음식의 맛이나 인테리어, 메뉴는 흉내낼 수 있지만 역사는 모방할 수 없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추억을 품고 있는, 수십 년 역사의 맛집은 지역 사회에서도 귀한 존재다. 30년, 40년, 50년 역사를 가진 맛집들은 창업자의 고령화로 2세경영이 큰 과제인데 전통과 역사를 가진 맛집은 대를 이어서 경영할 수 있기 때문에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이기도 하다.
부산에 있는 삼송초밥은 60년 역사를 가진 맛집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초밥집이다. 부산 사람들은 물론이고 부산을 찾는 외지인들도 꼭 방문해야 할 곳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그런데 삼송초밥의 외동아들은 식당일이 싫어서 도망 다녔다.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수출 상품을 만드는 제조업을 크게 하고 싶었던 그 아들에게 식당 일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삼송초밥은 올해 올해 일흔일곱살인 오남순 여사와 40대 초반인 아들 주강재 사장이 함께 운영하고 있다. 식당일이 싫어서 도망다니던 주강재 사장이 지금은 사명감을 갖고 삼송초밥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마음을 바꾸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스무 살 때 유럽 여행을 했던 주강재 사장은 한국의 국제 지위가 너무 낮다는 것을 느꼈다. 그때부터 그의 꿈은 수출 강국을 만드는 제조업 사장이었다. 성공을 하려면 무조건 미국의 좋은 대학으로 유학을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유학 준비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미국의 좋은 대학으로 유학가려면 한국에서 대기업을 다닌 경력이 도움이 된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말만 듣고 대기업에 입사 원서를 내고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중 우연히 식당 술자리에서 가락시장과 관련된 사업을 하는 사람을 만나 친구가 된다. 그 사람은 국비를 지원받아서 가락시장 상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영어사업을 동업하자고 제안했고, 영어강사를 한 적도 있고 미국 유학을 생각하던 주 사장에게 영어교육 사업은 솔깃했다.

본인이 저축한 돈에 대출까지 받아서 동업자에게 돈을 건넸는데 그때부터 동업자와 연락이 되지 않았다. 사기를 당한 것이었다. 이미 회사를 그만둔 상황이었고 가족과도 잘 연락하지 않던 시기였다. 혼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변호사와 협조해 백방으로 뛰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지칠 대로 지친 그에게 어머니의 전화가 왔다. 세상은 자꾸 변하고 있는데 어머니의 나이는 들어가고 혼자 식당을 운영하기 힘드니 내려와서 도와달라는 요청이었다. 몸도 마음도 지친 상태라 저항할 힘도 없었다. 부산으로 내려온 그는 오래된 식당의 수리와 수선을 비롯해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했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서울에서 대기업 다닐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적은 월급을 받고 일을 했다.
삼송초밥은 4층짜리 자가 건물의 2층과 3층을 사용하는데 100평이 조금 넘는 규모다. 어머니가 사업을 시작할 때는 임대였지만 삼송초밥을 운영하면서 번 돈으로 매장이 있는 건물을 매입했다.
삼송초밥이 있는 곳은 부산 남포동이다. 과거에는 인근에 부산 시청, 검찰청, 법원, 병원, 대학 등이 가까이 있는 핵심 요지였으나 상권의 변화로 경영 환경은 날이 다르게 달라졌다.
식당에서 일을 시작했지만 주강재 사장에게 어머니의 식당은 언제 문을 닫아도 이상할 게 없었다. 전혀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식당에서 일을 하고 손님들을 맞이하면서 그의 마음에 변화가 생겼다.
오랜 단골들이 삼송초밥을 보석처럼 귀하게 여기는 모습을 봤다. 멀리서도 추억의 맛을 찾아 일부러 삼송초밥을 찾았다. 그 고객들은 주강재 사장이 어머니 곁으로 돌아온 것을 보고 자신의 아들이 돌아온 것처럼 반갑게 맞아 주며 어머니를 도와 가업을 잘 이으라고 격려해줬다.

자신이 그렇게 도망치고 싶어 했던 식당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사명감이 싹트기 시작했다. 1년이 지나면서 마음을 굳힌 주강재 사장은 본격적으로 조리와 경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에게는 훌륭한 스승이 있었다. 베테랑 일식 주방장 100명도 거뜬히 당해낼 수 있는 어머니가 있었고 매장에는 최고의 실력을 가진 일식 조리사들이 있었다. 노력한 덕분에 대학에서 일식조리 강의를 할 정도가 됐다.

현장에서 배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외부 교육에도 지속적으로 참여해 같은 일을 하는 젊은 사장들과 교류하기 시작했다. 오래된 식당에는 다시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SNS 계정도 운영하고 온라인에서도 존재감을 만들기 시작했다. 중소벤처기업부의 백년가게로 인증을 받고 맛집 인증도 받았다.
가장 많이 고민했던 부분은 전통의 유지와 변화를 균형을 어떻게 가져가느냐 였다. 주강재 사장은 철저하게 전통을 유지하되 고객층의 변화를 반영해 아주 조금씩 미세한 조정을 하는 것으로 방향을 정했다.
전통을 고수하는 것 중에 하나가 후토마키다. 후토마키는 조리사들이 없애고 싶어하는 1순위 메뉴다. 하지만 삼송초밥은 전통방식 그대로 조리를 한다. 요즘은 화려한 비주얼과 미디어의 영향으로 후토마키가 다시 관심을 받고 있는데 50년대 60년대의 후토마키는 놀이김밥으로 여겨지며 아주 특별한 날에만 즐길 수 있는 귀한 음식었다. 삼송초밥의 후토마키에 들어가는 계란말이는 100겹이나 된다. 계란말이 하나를 만드는 데 15분 이상 걸린다. 김초밥에 들어가는 생선 가루인 오보로는 가격이 싼 대구로 만드는 경우가 많지만 삼송초밥은 자연산 광어로 만든다. 삼송초밥의 오보로는 일본인들이 와서 수출해 달라고 사정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입안에서 버터처럼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장어초밥의 소스는 60년 된 씨간장으로 만든다. 왕에게 진상하던 음식인 호시모노라는 복어육포도 삼송초밥에서 만날 수 있다.
삼송 초밥의 텐동은 튀김에서 폭신한 눈 밟는 소리가 난다는 칭찬을 받는다. 알탕도 냉동 대구알을 사용하지 않고 그날 잡은 생선의 알과 내장으로 끓여 식감이 다르다. 생선은 무조건 크고 가장 신선한 것을 사용한다. 밥을 지을 때는 최상급 생 다시마를 넣는다. 엄선된 쌀을 사용하고 온도와 습도에 따라 밥물의 양을 달리한다. 이렇게 핵심 메뉴들은 전통을 그대로 지키고 있다. 하지만 세대가 바뀌는 만큼 고객과의 소통이나 서비스는 새로운 세대에게 맞추려고 노력하고 있다.
삼송초밥의 대표 메뉴는 5만원이다. 오마카세로 즐길 수 있는 10만원대 메뉴도 있다. 1인분 5만원은 20년 30년 전에는 귀한 자리를 위한 접대비 수준이었다. 그런데 요즘 20, 30대들은 미식탐험을 즐기고 특별한 경험을 위해서는 돈을 아끼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 평소에는 편의점 라면과 삼각김밥을 즐기지만 필요할 때는 과감하게 외식비를 지출하는 옴니보어 성향이 특징이다.

이런 트렌드를 입고 젊은 층을 대상으로도 마케팅을 시작했다. 좌식을 입식으로 바꾸고 입식 룸을 만들었다. 하지만 아기를 동반한 가족 고객을 위해 다다미 방도 남겼다. 일식은 원래도 위생이 매우 중요하지만 요즘 사람들이 청결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각별히 더 신경을 쓴다. 그래서 가장 많이 듣는 말 중에 하나가 60년 된 식당이 왜 이렇게 깨끗하냐는 칭찬이다.
주강재 사장은 20대에 가졌던 꿈을 60년 된 식당에서 다시 꾸고 있다. 삼송초밥은 유럽과 일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데 특히 일본인들로부터 너무 맛있다며 식품 제조를 해서 식자재를 수출해달라는 의뢰가 많다. 그래서 요즘은 푸드테크와 식품 제조업을 공부하고 있다. 60년 동안 이어온 삼송초밥이 추구하는 원칙과 가치를 살리는 성장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100년, 200년 된 노포가 많은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의 100년 가게들은 대부분 50년 안팎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늘 전통과 변화의 경계선에서 고민한다. 무엇을 지키고 어떤 것을 변화시킬 것인가?
가장 큰 고민은 새로운 세대들을 어떻게 유입시킬 것인가다. 하지만 주강재 사장의 생각처럼 지나치게 젊은층에게 맞춰서 핵심에 변화를 주면 역사가 사라질 수 있다. 전통의 가치는 돈으로 살 수도 없고 숙성된 장맛과 같은 것이다. 핵심적인 가치를 크게 부각시키고 소통은 젊게 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경희 부자비즈 대표 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