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항공 참사의 사고 원인을 두고 온갖 추측이 쏟아지지만 탑승자 대부분이 죽은 ‘사망 원인’은 단 하나로 좁혀지는 분위기다. 바로 부실한 무안공항 관리다. 철새 도래지 한복판에 지어진 데다, 수요 예측 실패로 사용자 수는 턱없이 적었다. 비행기가 하루에 적게 뜨니 조류 퇴치반 운영을 비롯한 안전관리도 부실했다.
활주로 끝에 있으면 안 될 구조물(콘크리트 둔덕)을 짓기도 했다. 제주항공 비행기는 나름 성공적인 동체착륙으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지만, 콘크리트 구조물에 강하게 부딪히면서 탑승자 대다수가 사망하고 말았다.
비단, 무안공항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방공항 대다수가 안전·경제성이 아닌 정치 논리를 앞세워 지어졌다. 이용자는 적고 부실은 심각하다. 막대한 적자는 부실한 안전관리로 이어진다. 당장 이전이 필요한 공항은 정치 논리에 막혀 이전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한다. 언제 어디서 참사가 재발할지 모른다. 항공업계 종사자들과 전문가들은 ‘공항 이기주의’를 탈피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제주항공 참사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받는 것이 ‘부실한 무안공항’이다.
2007년 개항한 무안공항은 설립 초기부터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철새 도래지 한복판인 위치, 부실한 경제성 등 부정적인 요소가 많았다. 그러나 표를 받는 데 급급했던 정치권은 ‘호남 관문’이 필요하다는 논리하에 무안공항 건설을 밀어붙였다.
실제로 2004년 감사원은 보고서를 내고 무안공항은 경제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당시 감사원은 “편익/비용(B/C) 분석 항목으로 계상할 수 없는 비용 항목을 계상해 타당성을 검토했다”며 무안공항이 억지로 지어졌음을 지적했다. 제대로 경제적 타당성 검토를 하면 B/C값이 0.49로 나와야 했다. 통상적으로 B/C값이 1 아래면, 경제성이 없다고 판단, 경제적 타당성 검토를 통과할 수 없다. 그러나 정치권에 떠밀린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는 편익·비용을 왜곡시켜 B/C값을 1.499로 만들었다.
많은 이의 경고대로 무안공항 성적은 처참했다.
설계 당시 연간 990만명이 이용할 것이라 예측했지만, 실제 이용객은 1년에 25만명 수준이었다. 2024년도 연간 이용객은 34만명에 그쳤다. 연간 적자만 253억원을 기록하는 부실 공항으로 전락했다. 2009년 감사원은 다시 한번 이용 실태를 지적하며, ‘광주공항과 통합해 경제성을 올려야 한다’고 권고했다.
2번의 권고에도, 별다른 개선 없이 무안공항은 운영됐다. 이후 지속적으로 쌓인 적자는 공항 안전 역량 약화로 이어졌다. 철새 도래지 한복판이라 버드 스트라이크 위험이 높은데도, 조류 퇴치반은 4명에 불과했다. 김포(23명), 제주(20명), 김해(16명) 등 대형 공항 대비 현저히 적은 수준이다. 비용 절감을 이유로 부서지기 쉬운 구조물이 아닌 콘크리트 구조물을 활주로 끝에 세웠다. 결국 조류와의 충돌로 엔진 이상이 생긴 비행기가 활주로 끝 콘크리트 구조물을 피하지 못하면서 폭발, 탑승객 대다수가 사망하는 참극이 발생했다.
콘크리트 둔덕을 활주로 근처에 세우는 것은 현행법상 위법이다. 활주로 근처에는 비행기가 ‘오버런(활주로를 넘어 벗어나는 것)’하는 것을 대비해 부서지기 쉬운 구조물로 만들어야 한다. 국토교통부는 무안공항의 로컬라이저가 ‘종단안전구역’ 밖에 위치해 있어 규정을 어기지 않았다고 설명해왔다. 하지만 2022년 시행된 규정에 따르면 “정밀접근 활주로의 종단안전구역은 방위각시설(로컬라이저)까지 연장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당초 문제없다던 국토부는 이례적으로 보도자료까지 내리는 등 말 바꾸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항공당국 무관심 속 있어선 안 될 구조물을 발견조차 못한 것이다. 사용객이 많아 꼼꼼히 살피는 공항이었다면, 진작에 해결됐을 가능성이 높다.
다른 지방공항의 부실도 심각하다. 국내 지방공항 다수가 안전과 경제성보다는 ‘지역 논리’를 앞세워 건설됐다. 15개 공항 중 11개가 적자다. 적자 공항 상당수는 안전관리가 미진하다는 지적이다.
여수공항과 포항경주공항은 무안공항과 마찬가지로 활주로 끝에 콘크리트 구조물이 버티고 있다. 양양공항은 2012년 도입한 구형 조류 퇴치 장비를 사용 중이다. 청주공항 역시 대부분 10년 이상 된 구형 장비에 의존 중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정부 차원에서 지방공항 운영 실태를 전반적으로 점검할 것으로 보인다. 2024년 2월 감사원이 공항 운영 실태를 조사했는데,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더 면밀한 감사를 진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안전 문제로 이전이나 확장 공사가 필요하지만 정치 논리에 막혀 개선하지 못하는 곳도 있다. 바로 김해공항이다. 김해공항은 기상 요건에 따라, 활주로 근처에서 비행기를 180도 회전, 곡선을 그리며 착륙하는 ‘서클링 착륙’을 진행한다. 문제는 공항 뒤편에 신어산과 돗대산이라는 큰 산이 있다는 것. 서클링 착륙을 잘못하다가는 산에 부딪혀 비행기가 폭발할 위험이 생긴다. 워낙 착륙 난도가 높아 김해공항은 과거 착륙이 어렵기로 악명이 높았던 카이탁 홍콩국제공항에 빗대어 ‘김해탁’이라고 불린다.
실제로 중국 항공사는 김해공항에 착륙할 경우 생명 수당을 지급하고, 일본 항공사는 한동안 기장 승급 시험을 치르는 코스로 활용할 정도였다. 2002년에는 중국국제항공사 소속 비행기가 서클링 착륙에 실패, 166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 사건 이후 김해공항 이전 논의가 나왔지만 동남권 신공항 갈등으로 비화하면서, 제대로 된 진도를 내지 못했다. 안정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확장하자는 결론이 지어졌지만, 다시 지역 반대로 가덕도 이전이 결정됐다. 예산 문제로 가덕도공항 건설은 지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치 논리와 지역 우선주의가 개입되는 공항 입지 선정 방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진서 한국교통연구원 연구위원은 “공항 개발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는 경우 갈등은 점점 심각해지고 사업은 지체되거나 취소되는 결과를 초래한다”며 “건설 계획 초기부터 의견 수렴 방식과 기간을 명확히 제시하고, 빠르게 사회적 합의를 형성하도록 하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경민·정다운·반진욱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92호 (2025.01.08~2025.01.14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