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대통령에 의해 저질러진 비상계엄 선포는 국내적으로는 정치적인 측면이 강하게 부각되는 충격적 사건이지만, 대외적으로는 국가 신인도와 직결되는 사안이다.
국가 신인도의 사전적인 의미는 ‘한 국가의 정치, 경제, 사회 등의 다양한 분야를 종합적으로 평가해, 그 국가에 대한 대외 신뢰도를 나타내는 지표’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때문에 우리나라 국제적 신뢰도가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인 투자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런 심각성을 정치권이 인식한다면, 합심해서 우리나라 대외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전력을 다해야 정상이다.
그런데 탄핵 위기에 빠진 대통령부터 제도를 이용하려고만 할 뿐,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은 없는 것 같다.
대통령은 법률가 출신이다. 법 덕분에 여태 먹고 살았다. 그런 인물이 사상 초유의 사태를 일으키고도 현재까지 탄핵 관련 서류 수령을 안 하고 있으니, 법률가 출신 대통령은 과연 제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의심이 든다. 윤 대통령은 12월 7일 사과문에서 자신의 거취를 포함한 일체를 당에 일임하겠다고 말했지만, 불과 5일 후 담화에서는 “끝까지 싸우겠다”고 말을 바꿨다. 또 “저는 이번 계엄 선포와 관련해 법적, 정치적 책임 문제를 회피하지 않겠다”고 말했는데, 지금은 탄핵 심리 관련 서류를 수령조차 안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대통령을 최소한이나마 신뢰하기란 불가능하다.
이제는 ‘탄핵 심판’과 ‘수사’의 순서도 정하려는 모양이다. 윤석열 대통령 수사 변호인단·탄핵 심판 대리인단 구성에 관여하는 석동현 변호사는 12월 23일 “대통령은 수사보다 탄핵 심판 절차가 우선돼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게 진짜 대통령의 생각이라면, 정말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 법 앞에서는 누구든 평등해야 한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대통령이면 제도적 절차도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결국 이런 식으로 대통령이 제도를 ‘이용’하려 든다는 인식을 줄 경우, 국제사회가 우리나라를 신뢰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요사이 윤 대통령 행동을 보면, 자신이 대한민국을 위해 있는 것인지 대한민국이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헷갈린다. 민주당이라도 중심을 잡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다.
민주당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하려 하고 있다. 처음에는 12월 24일 발의해 26일 국회에 보고하고 27일에 표결에 들어가겠다고 했지만, 이 시한을 늦췄다.
민주당이 한덕수 권한대행 탄핵을 언급하는 ‘실제적’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헌법재판관 임명을 주저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른바 쌍특검에 대한 거부권 행사 가능성이다.
‘표면적 탄핵 사유’로는, 한 권한대행이 계엄 선포를 막지 못했거나 묵시적 동조했다는 차원에서 일종의 ‘공범’이라는 점을 들고 있다. 이런 ‘표면적 이유’로 탄핵을 추진한다면, 애초부터 그가 권한대행이 되는 것을 막아야 했다는 논리적 부정합이 발생한다. 또한, 계엄 사태에 그의 역할에 대해 수사 중이라는 점에서 아직은 ‘팩트’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탄핵을 추진한다는 논리도 성립한다. 이 때문에 그런 이유로 탄핵을 강행하면, 이것 역시 다양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우리나라는 더욱 불안한 상태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한덕수 권한대행은 주미대사 출신이다. 미국에 나름의 인맥도 충분히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도 한덕수 권한대행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렇기에, 국익을 위해서라면 한 권한대행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故 아베 전 총리 부인이 트럼프와 식사를 했고, 캐나다 수상도 트럼프에게 달려갔으며,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트럼프 당선인을 초대해 노트르담 성당의 복원을 함께 축하했다. 우리나라 사람 중 트럼프 당선인을 만난 사람은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유일하다. 상황이 이렇다면, 민주당은 탄핵을 말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덕수 권한대행 같은 미국통을 트럼프와 만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필자 역시 내란 특검법이나 김건희 특검법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일단 급한 불은 꺼야 한다. 국제사회가 더 이상 우리를 불안한 눈으로 보지 않게 만들고,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와의 관계를 하루빨리 우리에게 유리하도록 정립하는 방도를 찾은 후 특검법을 말해도 늦지 않다.
여기서 현재 민주당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민주당은 현재 특검법보다는 헌법재판관 임명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만일 한덕수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을 임명하기만 한다면, 민주당도 물러설 것으로 본다. 어쨌든 민주당이라도 좀 이성적인 모습을 보여줬으면 한다. 여당이 공당의 구실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한동훈 전 대표를 몰아내더니, 결국 권영세 의원을 신임 비대위원장으로 선택했다. 권영세 의원은 훌륭한 능력과 성품을 가진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친윤이라는 딱지를 달고 있다. 이런 상황은 국민의힘에 그다지 유리하지 않다. 헌법재판소에서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결정이라도 나오는 날에는, 친윤은 ‘폐족’으로 몰릴 것이 분명하다. 국민의힘 투톱이 모두 친윤이니, 상황은 더욱 안 좋아질 것이다. 국민의힘이 지금 해야 할 일은 최대한 몸을 숙이며 여론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단합 먼저’를 외치고 있으니, 국민의힘은 ‘영남 자민련’으로 전락하는 길을 걷고 있는 것 같다.
지금 국제사회에 긍정적인 인상을 주는 존재는 바로 대한민국 국민이다. 외국에서는 우리나라를 매우 특이하게 바라본다. 8년 동안 두 번 대통령을 탄핵했기 때문이 아니라, 비상계엄이라는 OECD 국가 초유의 상황에 직면해도, 시민들이 거리에서 계엄 해제를 요구하고 탄핵을 요구해도, 단 한 건의 약탈이나 방화가 없다는 점을 매우 신기하게 바라본다.
또한, 일부 정치인도 제도에 대한 신뢰의 불씨를 살렸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된 직후 “이제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다”라며 “국민 여러분께서는 안심하시기 바란다”라고 말함으로써, 대다수의 국민이 평생 잊지 못할 ‘감동의 장면’을 우리 가슴속에 남겼다. 한동훈 국민의힘 전 대표 역시 정치인 중에 가장 빠르게 “국민과 함께 잘못된 계엄 선포를 반드시 막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겠다”며 “비상계엄을 막아낼 테니 국민께선 안심해주길 바란다”고 언급했다. 우원식 의장과 한동훈 전 대표의 이런 언행은, 위기의 상황에서도 제도를 지키겠다는 의지, 그리고 제도는 그 어떤 순간에서도 존중돼야 함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진짜 ‘국민들의 힘’과 일부 정치인들의 빠른 판단과 용기 있는 행동이 파탄에 빠진 대한민국을 지켜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91호 (2025.01.01~2025.01.07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