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에 가려졌던 NH농협금융지주 인사가 윤곽을 드러냈다. 농협은행장을 비롯한 핵심 계열사 사장 후보가 확정됐다. 금융권 안팎의 예상대로 강호동 농협중앙회장 의중이 ‘강하게’ 작용했다. 강 회장 핵심 측근으로 분류되는 이들이 기존 CEO를 밀어내고 대거 이름을 올렸다. 농협중앙회 간섭이 지나치다는 여론이 강해지면서 다소 중립적인 인사를 추천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지만, 이변은 없었다.

수장단 면면 살펴보니…
姜 복심, 영남이 대세, 호남은 0
농협금융지주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는 2024년 12월 20일 최고경영자 후보 추천 절차를 완료했다. 이번 인사를 통해 농협은행, 농협생명, 농협손해보험, 농협캐피탈, 농협저축은행 등 총 5개 회사 경영진이 교체됐다. 인사 키워드는 ‘강심’ ‘영남’이다. 강호동 회장 최측근과 영남 출신 인사가 강세를 이뤘다. 새롭게 내정된 CEO 5명 중 3명이 경상도 출신이었고, 호남 출신은 없었다. ‘올드맨’이 대거 전진 배치된 점도 눈에 띈다. 다른 금융지주가 젊은 피를 수혈하며 세대교체에 박차를 가하는 것과 달리, 중앙회 출신 1960년대생이 주류를 차지했다. 경영 일선에 물러났던 이까지 대거 불러들이며 최근 인사 트렌드에 역행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핵심 계열사인 농협은행장은 강 회장의 복심으로 꼽히는 강태영 농협캐피탈 부사장이 최종 후보로 선정됐다. 강 부사장은 강호동 회장과 동향인 경남 출신이고 중앙회를 거친 인사다. 때문에, 인선 전부터 은행장 유력 후보 중 하나로 이름을 올렸다.
강 부사장은 영업력과 기획력을 두루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강점을 보이는 분야는 디지털 전환(DT)이다. 농협은행 디지털전략부, 농협은행 DT부문 부문장, 농협금융지주 디지털금융부문 부사장 등 DT 관련 직무를 꾸준히 도맡아왔다. 현재 농협은행은 디지털 전환 속도가 타 은행에 비해 느리다. 일례로 시중은행 다수는 은행, 자산관리, 주식 등 서비스를 한군데에 모은 ‘슈퍼앱’으로 서비스를 전환했지만, 농협은행은 아직 통합 플랫폼을 내놓지 못한 상태다. 뒤처지는 디지털 역량 강화를 위해 DT 업무에 정통한 강 부사장을 낙점한 것으로 보인다. 내부통제 강화 역시 숙제다. 농협은행은 2024년 5대 은행 중 금융사고 규모가 가장 컸다. 금융감독원을 비롯한 금융당국이 강한 쇄신을 요구하고 있어 대책 수립이 시급하다. 강 부사장은 ‘내부통제 강화’를 1순위로 두고 다양한 대책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농협생명 대표는 박병희 농협생명 부사장이 맡는다. 농협중앙회에 입사해 농협은행 대구영업본부장을 거친, 중앙회·영남 인사다. 농협생명 주력 판매 채널인 농축협 채널의 실적 상승을 끌어낸 점을 높이 평가받았다. 농협생명 출범 이후 내부 인사가 대표이사로 선임된 첫 사례다.
농협손해보험은 송춘수 전 농협손해보험 부사장이 대표이사 최종 후보로 뽑혔다. 2022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으나 이번에 경영 복귀를 눈앞에 뒀다. 농협중앙회 입사 후 보험 업무를 중점적으로 맡은 ‘보험맨’이다. 과거 농협 계열 보험사들은 대표이사로 보험 업무 경험이 전무한 인사를 배치해 종종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를 의식해 보험 업무 경력이 풍부한 송 부사장을 전면 배치한 것으로 풀이된다.
임추위는 NH농협캐피탈 대표에는 장종환 현 농협중앙회 상무를, NH저축은행 대표로는 김장섭 전 농협생명 부사장을 각각 추천했다. 장종환 상무는 농협금융지주 홍보부장, 농협은행 금융소비자보호부문장을 거친 홍보·마케팅 전문가다. 장 상무에게는 농협캐피탈 실적 확대라는 과제가 주어졌다. 농협캐피탈은 2024년 순이익이 감소하는 등 성장이 정체된 상태다.
김장섭 전 부사장은 NH저축은행 부활이라는 중책을 수행하게 됐다. NH저축은행은 최근 몇 년간 연체율 급증과 PF 대출 부실로 적자 행진을 이어갔다. 2024년 흑자전환에 성공했지만, 여전히 전망이 좋지 않다.

NH금융지주 회장은 안갯속
내부 인사 승진 유력하지만…
주요 계열사 차기 수장은 확정됐지만, 컨트롤타워 격인 농협금융지주 회장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통상 농협금융은 금융지주 회장을 먼저 추천한 뒤 계열사 대표를 뽑는다. 계열사 수장이 먼저 확정된 것은 다소 이례적인 상황이다.
가장 큰 이유는 ‘정국 불안’이다. 금융지주 회장에는 주로 관료 출신 인사가 기용됐는데, 탄핵 정국으로 접어들면서 외부 출신 후보들이 영입 제안을 거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석준 회장이 1년 연임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왔지만,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는 평이다. 농협금융지주 회장이 연임한 사례가 드물고, 이석준 회장이 NH투자증권 대표 인사를 두고 강호동 중앙회장과 갈등을 벌인 전력이 있어서다. 금융지주 장악력을 높이려는 강 회장이 껄끄러운 이 회장의 연임을 지켜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현재 가장 유력한 안은 내부 승진이다.
탄핵 정국 속 ‘강심’ 인사
강호동 마이웨이 언제까지…
한편, 농협금융지주 내부에서는 차기 수장 인사를 두고 강호동 중앙회장 간섭이 지나치다는 불만이 상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농협중앙회는 2012년 ‘신경분리(신용 사업과 경제 사업 분리)’라는 원칙으로 금융 사업과 농업 경제 사업을 분리했다.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금융 사업은 전문가에게 맡기자는 의도였다. 그러나 개편이 무색하게, 금융지주를 향한 중앙회의 간섭은 사라지지 않았다. 농협중앙회가 금융지주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 탓이다. 농협중앙회장이 바뀔 때마다 금융지주 인사와 정책은 요동쳤다. 중앙회의 지나친 경영 간섭은 농협금융이 다른 금융사보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주요 원인으로 뽑히곤 했다.
특히, 강호동 회장은 부임 직후부터 NH투자증권 인사에 간섭하고, 사외이사를 축소하는 등 노골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해 강한 반발을 사는 모양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농협은 신용·경제 사업이 구분됐지만 리스크가 명확히 구분돼 있는지에 대해 고민할 지점이 있다”고 언급할 정도로 당국 불만도 상당하다.
고조되던 강 회장을 향한 내부 불만은 최근 불거진 성과급 조정 논란과 측근 인사 배치를 기점으로 폭발했다. 농협중앙회는 2024년 사상 최대 수준 실적을 올린 계열사들에 ‘성과급 50% 축소, 인사 인원 30% 축소’ 등 감도 높은 비용 감축안을 통보했다. 직원 성과급은 꺾이는 와중에 강 회장 연봉은 인상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분노가 쏟아졌다. NH농협 노조는 “회장 등 고위 임직원의 비위행위를 제보할 경우 최대 2000만원의 포상금을 지급하겠다”고 밝히며 전면전을 선포했다. 익명의 내부 관계자는 “NH금융은 어수선한 인사와 중앙회의 비용 감축 요구로 현재 혼돈에 빠져 있다. 내부 직원 사기가 상당히 떨어진 상태”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다만, 내부 반발이나 금융당국의 개입이 강 회장의 ‘마이웨이’를 꺾기는 힘들 것이라는 게 금융가 진단이다. 강 회장이 여론을 강하게 의식하는 인물이 아닌 데다, 탄핵 정국으로 금융당국의 힘이 떨어진 탓이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금융권 일각에서 강 회장이 반발 여론을 의식해 중립적인 인사를 기용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지만, 들어맞지 않았다. (강 회장은) 주관이 뚜렷해 쉽게 뜻을 꺾지 않는 인물인 것으로 안다. 금융당국은 애초에 비(非)금융회사인 중앙회를 제어할 명분이 없다. 탄핵 정국으로 그나마 견제할 힘도 떨어져 중앙회의 영향력 행사를 막긴 어려울 것”이라고 귀띔했다.
[반진욱 기자 ban.jinuk@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91호 (2025.01.01~2025.01.07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