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수요 줄며 정제마진 뚝
올들어 2분기 연속 실적 악화
값싼 중국산 제품 쏟아지자
고수익 석유화학도 직격탄
사업 다각화로 생존 안간힘
전기차 맞춤형 냉매제 개발
수소·바이오연료 연구 집중
올들어 2분기 연속 실적 악화
값싼 중국산 제품 쏟아지자
고수익 석유화학도 직격탄
사업 다각화로 생존 안간힘
전기차 맞춤형 냉매제 개발
수소·바이오연료 연구 집중

정유회사들의 주된 수익 구조인 정제 마진은 정제된 각종 연료와 석유화학 제품 가격에서 생산비용을 뺀 금액이다. 글로벌 경기가 좋아서 유가가 높으면 석유 제품 수요 증가로 원유정제시설 가동률이 상승해 일반적으로 마진이 좋다. 하지만 경기가 나쁘면 전 세계적으로 지역 내 설비 신증설 보류와 수요 침체가 이어지면서 정제 마진이 낮은 수준을 보인다. 오래전에는 정제 마진이 상당히 좋았으나, 근래에는 정제 마진이 예전 같지 않다. 이 때문에 지난 10여 년간 국내 모든 정유사들은 엄청난 비용을 써 가면서 기존 '잔사유 탈황시설'을 선제적으로 첨단화하고 값싼 가격에 판매되던 중질유 비율을 대폭 줄이면서 '정유 고도화'에 주력해왔다.
그러나 정유 사업만으로는 근본적인 업황 타개가 어렵다고 판단했던 정유기업들은 그동안 비정유 사업인 석유화학 사업으로도 영역을 확대해왔다. 과거에는 정유 기업이 석유화학 기업에 나프타를 공급하고, 이 나프타를 기반으로 석유화학 기업이 기초 유분(에틸렌, 프로필렌, 부타디엔, BTX)을 생산했다면, 지금은 정유 기업도 기초 유분을 생산해 PE, PP와 같은 범용 플라스틱을 직접 생산하는 방향으로 다각화해 온 것이다. 정유의 수익률은 보통 1~5%인데, 석유화학의 수익률은 5~15%이니 당연한 '탈석유' 흐름이었다. 이미 4대 정유 기업 모두 매출의 약 10% 이상은 석유화학 제품에서 나오고 있으며, 수조 원을 더 투입해 석유화학 시설 투자를 계속 늘리면서 고부가가치의 석유화학 제품 비율을 높여서 수익성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펼쳐왔다. 하지만 최근 중국이 석유화학 제품군을 기준으로, 순수입국에서 순수출국으로 입장이 바뀌면서 해외 시장에서는 이미 값싼 중국 석유화학 제품이 범람하고 있다. 그동안 연료유 대비 석유화학 제품 비율을 늘려왔던 정유업계 입장에서는 큰 타격일 수밖에 없다.
한편 국제에너지기구의 2024년 '석유 보고서'에 따르면 비정제 제품(NGL, 바이오 연료 등)에 대한 수요가 크게 증가하면서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구조적인 변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에너지 전환의 가속화와 전기차 확대, 탄소중립 정책이 세계 각국으로 확산되면서 석유 제품 수요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내 정유 기업들도 전통적인 정제 연료(가솔린, 디젤) 수요 감소와 맞물려 시장 장기 불황에 대비해 '비정유' 부문 포트폴리오를 재편해야 하는 도전 과제에 직면하게 됐다. 정유(그리고 석유화학 진출)만으로는 살아남기 힘들다고 본 국내 정유업체들의 절박한 변신은 이미 시작됐고 진행 중이다.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의 자회사인 에쓰오일은 9조2580억원을 투입한 '샤힌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국내 첫 '정유석유화학 통합공장'('꿈의 설비'로 불리는 'COTC')을 2023년 1월 착수해 현재 건설 중이다. 2026년 완공 예정이며 '산업의 쌀'로 불리는 폴리에틸렌의 원료인 에틸렌을 연 180만t 생산하게 된다. 에쓰오일은 석유화학 제품의 생산 비율을 기존 12%에서 25%로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전기차 및 수소차용 윤활유 기술 개발을 통해 친환경 자동차 시장에도 적극 대응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이산화탄소를 일산화탄소로 전환하는 기술을 실증하는 데 성공했으며, 전기차에 필요한 냉난방 겸용 냉매제도 개발 중이다. 이는 전기차 시장 성장에 맞춘 중요한 전략적 다각화다. 2조7000억원을 투자해 '여수의 MFC(혼합유분크래커 기반 올레핀 생산시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석유화학에 진출한 GS칼텍스는 데이터센터와 전기차 배터리 냉각에 사용되는 액침냉각유와 같은 신제품을 통해 열 관리 시장을 공략하고 있으며, 바이오 연료 및 바이오항공유(SAF) 관련 연구에도 집중해 지속가능한 연료 시장 선점을 추진하고 있다. 자회사인 현대케미칼에 3조원 이상을 투자하며 'HPC(Heavy Feed Petrochemical Complex·중질유석유화학설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HD현대오일뱅크는 블루수소와 암모니아 크래킹 촉매 기술을 통해 수소 연료 관련 연구를 강화하고 있으며, 폐플라스틱을 화학적으로 재활용해 연료로 사용하는 그리고 '도시유전'으로도 불리는 '열분해유'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우리나라는 정유 제품 수출 세계 5위의 글로벌 석유 강대국이며, 정유 산업은 에너지 안보와 국가 경제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국가기간산업이다. 지난 분기 국내 정유 4사가 동시에 대규모 적자를 낸 건 매우 이례적이라 필자는 걱정이 앞서며 최근 대한석유협회장의 모 언론 인터뷰 내용을 독자들에게 소개하며 본 글을 마친다. "국내 정유업계는 지난 17년간 평균 1.8%의 낮은 영업이익률에도 32조원을 투자해 세계 5위 정제 능력을 확보했으며, 그 결과 2023년 우리나라의 휘발유·경유 가격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3개국 중 최저가를 기록했다. 이렇게 열심히 산업경쟁력을 키워왔고 국민경제에도 기여하고 있으니 탄소중립 시대를 지나고 있는 정유업체의 사업 다각화에도 정책적 지원과 관심이 꼭 필요하다."
